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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 도교의 역사
 

도교 연재에서 자세히 이야기하지 못한 도교의 역사입니다. 관심 있을 분들을 위해서 대략적인 흐름을 남깁니다.


1. 종교로서 체계화 되기 이전의 모습

도교는 고대부터 중국이 가지고 있던 다양한 요소가 합쳐진 종교이다. 종교 조직이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도교의 재료로 쓰일 요소들은 발생해 있었다.

역사에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건 춘추전국시대(기원전 8세기~기원전 3세기)인데, 제자백가의 하나였던 신선가(神仙家)와 음양오행 사상이 오늘날 방선도(方仙道)라고 불리는 신선이 되고자 하는 수행자들을 낳았다.

이들은 방사(方士)라고 불렸으며, 일찍부터 권력자의 옆에서 각종 방술을 행하고 불로장생의 약을 찾아서 중용되었다. 대표적으로 진시황 때의 서복(徐福)이나 삼국지에 등장하는 우길(于吉)이나 좌자(左慈) 같은 자들이 방사였다.

한(漢)나라 때에는 중국인의 시조라 여기는 황제(黄帝)와 도가의 대표자인 노자(老子)의 숭배가 합쳐지며 황로(黄老) 학파가 성행했다. 자연스럽게 방사들도 황로 사상에 감화됐다. 황제와 노자에 대한 숭배는 후대의 도교에서도 굉장히 뚜렷하게 나타난다.



2. 조직화된 교단의 첫 등장 : 태평도와 오두미도

방사들이 활동할 때는 뚜렷한 종교 교단이 없었다. 신선이 되려는 가르침도 비밀리에 전수되거나 일인전승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태평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도교라는 구체적인 종교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2세기 후한 말, 혜성처럼 두 교단이 등장했다. 바로 장각(張角)의 태평도(太平道)와 장도릉(張道陵)의 오두미도(五斗米道)이다.

태평도는 천하의 도(道)가 어지러워졌으니 자연스러움과 공평함을 바로 잡아 태평을 회복해야 한다는 기치 하에서 난을 일으켰다. 황색 두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태평도의 주신이었던 중황태일(中黃太一)의 이름에서 황(黃, 노랗다)을 따왔다고도 말해진다.

황건의 난은 내부의 배신으로 삐걱이다가 결국 진압되었고 태평도도 와해됐다. 이 사건으로 도교는 첫 등장부터 권력자들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도교는 중국의 민간 신앙 그 자체였고, 백성뿐 아니라 지도자들도 대부분 도교의 신자였다. 권력자들은 여전히 도교를 믿고 도사들과 친하게 지냈다. 예를 들어 삼국지의 조조, 유비, 손책도 도사를 존경하고 친하게 지낸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비슷한 시기에 장도릉이란 자가 오두미도(五斗米道)라는 교단을 창시했다. 교주를 천사(天師)라고 불렀는데, 훗날 천사도(天師道)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진다. 정교합일의 방침 하에 파촉지역에서 거대한 종교 왕국을 건설했지만, 3대 천사였던 장로는 결국 조조에게 항복했다.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장로를 진남장군에 봉했다고 한다.

천사도는 살아남은 첫 번째 도교 교단이 되어서 이후로도 성세를 이뤘다. 명문세가의 자제들에게 신앙의 뿌리를 내렸으며, 민간에도 의료 행위를 중심으로 널리 퍼졌으며,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아 있다.

천사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성씨로 교주의 명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계승 장문인은 반드시 장씨여야 하며, 장씨가 아닐 경우 성을 바꿔야 한다. 또한 육식, 결혼, 출산 모두 가능하며,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수행하는 것을 격려했다. 오늘날 도교 도사가 결혼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도교는 본래 음과 양의 조화와 도의 자연스러움을 중시했기에 결혼을 금지하지 않았다.



3. 도교 교단의 정립 : 5세기

천사도의 등장 이후 도교는 종교로서의 교리와 단체로서의 체계를 꾸준히 정비해나갔다. 비밀리에 수행하던 도사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여러 종파가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처음 이야기했던 중국의 신화, 민간신앙, 철학, 원시종교 등을 모조리 흡수하고 비교적 일관성있는 종교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그 시기가 대략 5세기 무렵이다.

4세기 초 천사도를 기반으로 한 상청파(上淸派)라는 종파가 파생됐다. 신선 계보가 정비되어, 본래 태상노군(노자)을 숭배하던 신앙에, 원시천왕, 태상대도군, 태미천제군 등이 편입됐다. 천사도의 부주비술을 계승했고 명상법과 호흡법을 더욱 중시했다. 남조 시대에는 모산종(茅山宗)으로 발전하며, 기존 도교 교리를 집대성했다.  

상청파와 모산종은 무협지에도 종종 등장한다. 보통 모산파(茅山派)라고 하며 부적이나 시체를 이용한 좌도방문에 치중한 분파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도교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도교 종파이다. 강남에선 영보파(靈寶派)가 등장하여 불교의 체계화된 시스템과 여러 사상을 흡수했다. 원시천존이 사후세계(지옥)까지도 구원을 해준다는 사상이 생기고, 불교의 인과응보와 삼세윤회 사상도 흡수했다.

북위에서는 구겸지(寇謙之, 365-448)의 북천사도가 등장하며 기존 천사교의 부패를 개혁하고 유교의 윤리관과 예법을 크게 적용했다. 구겸지는 태무제(太武帝)의 신봉을 얻고서 도교를 처음으로 국교(國敎)로 만들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도교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고 불교를 금하기도 했다.

남쪽에서는 육수정(陸修靜, 406-477)이 도교 경전의 분류 및 정비를 진행했다. 육수정 역시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렇게 4~5세기를 거치며 도교 교단과 교리가 정비되고 어느 정도 통일되며, 기존의 중국의 사상, 철학, 전설, 신화, 종교 등을 집대성했다. 특히 먼저 체계가 잡혀 있던 불교의 시스템을 많이 가져왔는데, 불교측의 기록에서는 5세기 이전 도교에는 천존상이 없었는데 불교를 따라서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로 도교 교단의 토대가 정립되었지만, 이후 설명하는 전국의 도교들이 모두 하나의 큰 집합체로서 통일된 뿌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중국이 일단 워낙 크고 종파가 다양하기 때문이며, 도교에서는 도사가 천지신명에게 계시를 직접 받고서 새로운 경전이나 교리를 썼다고 하는 식의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이질적인 종파가 등장했어도,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말로 합리화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최소한의 인정은 받아야겠지만 말이다.




4. 도교 최대의 전성기 : 수나라와 당나라

수나라-당나라를 거치며 도교는 최대의 성세를 이룬다.

수나라 때에 중국에는 도참설(하늘의 계시와 예언에 대한 이야기)이 성행하는데, 권력자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예컨대 수문제 양견은 원래 박주 자사에 불과했을 때, 도교의 참요(讖謠, 예언과 관련된 민요)에 부응하기 위해서 예언을 따라 했다. 훗날 그가 황제가 되자 도교의 겁력(劫歷)을 따라서 개황(開皇)을 연호로 삼았다. 수나라는 이렇게 시작부터 도교와 함께 했다.

이후 관방의 지지를 얻으며 도교 조직이 완비되고 전파 범위도 광범위해졌다. 권력자들의 도교에 대한 경계심도 낮아지고, 도사들은 황제들과 가깝게 교류했다. 특히 종남산을 근거지로 한 도교 종파가 크게 성하여, 종남첩경(終南捷徑)이란 고사성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종남산을 가까이하면 출세할 수 있다는 뜻으로, 편법으로 출세함을 비꼬는 말이다. 무협지에 나오는 종남파(終南派)는 아마도 이 때의 성세를 기억하고 만들어진 가상의 도교 문파일 것이다. 수나라 시절 많은 도교 사원이 건립되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도교 조직 발전을 적극 지원했다.


당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도교와 가장 가까웠던 나라이다. 수나라 말에는 "노자가 세상을 구원하고 이씨가 왕이 된다"는 도참설이 유행했다. 훗날 당나라를 세울 이연(李淵)은 이 예언을 교묘히 이용했다. 결정적으로 이연이 군대를 일으킬 때 누관파(樓觀派)의 도사 기휘(558-630)가 누관대의 군량과 마초를 내어 이연의 군대에 합류했다. 기휘는 수나라에 반기를 든 것은 하늘의 뜻이라 말했다.

이연은 황제가 된 후 노자를 당 왕조의 조상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종성궁(宗聖宮)을 세워 조묘(祖廟)로 삼았다. 참고로 노자의 본명은 이이(李耳)라고 전해진다. 당고조 이연은 친히 누관에 와서 노자에게 제사를 올렸다. 또한 공식적으로 도교의 위상을 재고하여 선노후석조의 순서, 즉 중국에선 노자와 공자의 가르침이 먼저 시작되었고, 석가(부처)의 가르침은 나중에 일어났으니 마땅히 손님의 예를 존중해야 한다면서, 노자가 첫째이고 공자가 그 다음이며 석가는 말석이라 말했다.

이후 노자의 도덕경을 민가에 비치시키고 과거의 과목으로 넣었으며, 도교를 연구하는 기관인 숭현학(崇玄學)을 설치하여 도력(道曆)을 제정하기까지 했다. 당대(7-10세기)에 도교는 국가의 관리를 받으며 엄청난 규모의 성세를 이루었다.

한편 당나라 말에는 불로불사의 약을 연구하는 연단술(외단)의 부작용으로 인해 외단(外丹) 멀리하고 내단(內丹) 수련을 중시하는 풍조가 생겼다. 여기서 내단이라 함은 인체의 단전에 자연의 기를 모아서 구슬을 만드는 내공 수련을 이야기한다.



5. 송원 교체기 : 전진도, 화산파, 정일교

이후 송나라까지 꾸준한 성세를 이루었는데, 송원교체기에 이르러서는 백성들은 몽골의 침입에 대한 위안을 얻기 위해 더욱 도문(道門)에 들어섰다. 도교에 입문하려는 백성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2세기 후반 북방에서는 왕중양의 전진도(全眞道)가 일어났다. 사회 혼란기에 출현한 전진도는 무엇보다도 구제활동을 중시하여, 남을 배려하고 세상을 구제하는 것을 수행의 기본으로 삼았다. 특히 구처기가 장문인이 된 후로 더욱 적극적이 됐는데, 그는 칭기즈 칸의 살육을 막기 위해 제자들과 북상하여 칸과 직접 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전진도는 불교 선종의 영향을 많이 받은 종파이다. 교리에 출가를 통한 엄격한 수행과 많은 금기가 존재한다. 출가한 도사는 세상과 단절되어서 술과 고기를 금해야 하며, 결혼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진도는 강북 지역에서 널리 퍼져서 북종(北宗)이라고 불리게 되는데, 이후에 북쪽 지역 도교는 결혼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에 비해서 강남 지역에서는 성세를 누린 (천사도의 후신인) 정일교(正一敎)가 남종(南宗)이라 불리었는데, 남쪽의 교파는 대체적으로 결혼에 관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진도에서 결혼을 완벽하게 금지한 것은 아니었다고도 한다. 대표적으로 여동빈도 결혼을 했고, 전진칠자 중에도 결혼 후 출가한 부부가 있다. 전진도의 영향인지 실제로 송나라 이후에는 결혼 후 도문으로 출가하는 패턴이 흔해졌다고 한다. 또한 전진교는 계율을 굉장히 중시했으며, 반대로 정일교는 꽤 느슨한 편이었다고 한다.

왕중양에게는 일곱제자가 있었는데 마단양, 담처단, 구처기, 유처현, 왕처일, 학대통, 손불이로 훗날 북칠진(北七眞)이라 불리우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우선파, 남무파, 수산파, 용문파, 유산파, 화산파, 청정파의 7개 지파를 만들었다. 무협지에 단골로 나오는 화산파(華山派)는 이렇게 시작됐다.


강남에서는 천사도의 후신인 정일교가 성했다. 천사도는 본래 북방에서 퍼졌으나, 후에 근거지를 남쪽으로 옮겨서 강서성 용호산에 자리잡았다. 이렇게 정일천사도(正一天師道) 용호정이 탄생했다. 남쪽의 정일도와 영보파, 상청파는 부적을 이용한 법술 등을 중시하던 부록파에 속했다. 그런 와중에 전진도가 창립될 무렵 남방에서도 내단 수련을 특화한 유파가 탄생하니 금단파 남종(南宗)이라 말한다. 후에 금단파 남종과 북방 전진도의 교리가 융합되며 발전한다.

한편 13세기 말 등장한 정명도(淨明道)는 정명충효도(淨明忠孝道)라고도 했는데, 충효를 몸가짐의 입문 공부로 삼고 충효가 두드러지는 신선을 이상적 모델로 설정하며 비교적 뚜렷한 윤리도덕의 색채를 띠었다. 이런 여러 교파의 출현은 서로의 교류로 이어졌고, 도교 교리는 더욱 다양해지고 풍부해졌다.

원나라 이후 전진교와 정일교는 북과 남을 대표하는 도교 최대의 문파로서 이름을 떨쳤다.



6. 도교의 몰락과 명대 이후의 도교

원나라 태종 10년(1238)에 어전에서 도교와 불교 사이에 교리 논쟁이 이루어졌다. 이 논쟁에서 도교가 패배한 이후 서서히 퇴보의 길을 걸었다. 도교 경전이 불태워지기도 했는데, 원나라 세조 지원 18년(1281)에 《도덕경》을 제외한 7천 8백 권에 달하는 《현도보장》 대부분이 소각되었다. 《현보도장》은 도교 경전 8만 여권을 집대성한 대규모 도경이었다.

명나라가 세워지자 명태조(明太祖, 1368∼1398)는 도교를 국가 차원에서 엄격하게 통제했다. 도교를 통제하는 기관을 세우고, 도사들에게 국가 자격증을 발급했다. 천사도 도사의 최고 칭호였던 천사(天師)가 천자의 권위를 침범한다며 사용을 폐지하고, 진인(眞人)으로 고쳐 쓰게도 했다.

통제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명태조(1368-1398 재위)는 직접 《도덕경》을 주해했으며, 영종 정통 9년(1444)에는 조서를 내려 도장 교정을 감독하게 했다. 1445년 도경이 완간되어 《정통도장》이라 명명했고, 이후 《만력속도장(萬曆續道藏)》까지 판각되어 인쇄됐다. 둘을 합쳐 모두 512함, 5485권, 12만 1589쪽이었다. 교단 지도자들을 고위 관직에 임명하여 이용하기도 했다.

청나라 때도 도교는 명맥을 유지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후 도교는 탄압을 받고서 중국에서 세력을 거의 잃어 버렸다.


2022-06-18 00:00:00 | [Comment(0)]




   ☆moo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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