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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이버펑크 : 엣지러너 (CyberPunk : EdgeRunners)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이하 엣지러너)가 재밌다고 몇 년 전에 들었는데 최근에 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재미있었고, 정말 잘 만든 애니메이션입니다. 특히나 완성도만 볼 경우 단편을 제외한 역대 애니메이션 중 최고 레벨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 이 리뷰에는 직접적인 스포일러는 없지만, 이야기의 전체 흐름과 분위기를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사이버펑크(Cyberpunk)는 기계화 된 첨단 기술(Cyber)과 하류 생활(punk)의 합성어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리는 SF 하위 장르입니다. 컴퓨터와 기계 같은 기술이 인간 사회와 가치관, 삶, 육체, 정신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미래죠.


엣지러너의 배경은 기술과 자본에 지배 당한 세상입니다. 대다수의 인간은 몸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했으며, 거대 기업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죠.

기업 간의 싸움은 갱단의 대리 전쟁으로 이어지고요. 백주 대낮에 대로에서 총격전을 벌이고 그 싸움에 보통 사람이 휘말려 죽어나가는 것도, 돈이 없는 자는 구조조차 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도 일상인 사회입니다.

특히나 중심 배경이 되는 슬럼가에는 기술과 폭력과 성(性)으로 얼룩진 더러운 밑바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귀 뒤에 데이터 칩을 넣을 수 있는 장치가 이식되어 있고



몸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시대


주인공 '데이비드'는 다소 극단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서민 가정이 공감할 법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먹고 살기 어려운 가정 환경과 자식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무리해서 일하는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를 위해서 노력하는 자식이죠. 내 아이만큼은 엘리트 상류 사회로 보내고자 좋은 학교에 보내고, 자식은 어머니를 위해 개천의 용으로 거듭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무리해서 보낸 '상류층 학교'에서 슬럼가 하층민이 어떤 취급을 당할지는 뻔하죠. 데이비드는 어머니를 위해서 일상을 견디지만, '견디고 노력하면 되는' 수준의 평안한 삶은 계속 이어지지 못합니다.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인생이란 게 있다면 그건 정말 축복 받은 삶이겠죠.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이어지는 어느날, 데이비드는 '루시'를 만납니다.



엣지러너는 어느날 대단한 능력을 손에 넣은 데이비드가 소녀 루시와 만나,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야기이고, 사랑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동료를 만나고 헤어지고 희망을 품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이야기죠.



이 애니메이션이 정말 잘 만든 작품인 이유는, 사이버펑크라는 비현실적인 배경 안에서 우리 평범한 인간의 삶을 잘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비현실을 통해 현실을 묘사하는 것은 SF라는 장르의 중요한 존재 이유죠.

작품에 처음 빠져들게 된 장면도 그랬습니다. 주인공이 너무 힘들어서 허덕이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연속해서 불행이 들이닥치는 그 모습이... 너무 리얼했어요. 정도는 달라도 살면서 다들 한번쯤은 겪었을 그런 순간 말이죠.



엣지러너는 우리의 계획을 무시하고서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현실을 리얼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런 목적으로 이런 활동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라고 스포일러 없이 딱 잘라 말하기가 애매해요. 계획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그냥 꿈을 안은 채 시궁창 속에서 발버둥치는 이야기이거든요.

힘든 삶이 있었는데, 또 다시 힘든 일이 닥쳐서 너무 힘들고, 지쳐서 쓰려졌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금 닥쳐오는 현실 앞에서, 하지만 힘들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어찌든 살아 가는 게 삶이잖아요. 간혹 달콤한 순간도 있지만, 또 다시 닥쳐오는 반갑지 않은 현실들을 마주하는 것이 삶이고요.



엣지러너 속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 꿈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그저 꿈일 뿐, 현실에선 너무 멀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 안에 있어야 하니까요.

현실에게 선택과 삶을 강요 당하는 엣지러너 속의 인물들을 보면서, 그런 삶의 모습을 공감하고 또 공감 받는 느낌을 받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란 것이 이래서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스포일러 없이 몇 가지 키워드를 더 말씀드리자면, 사이버펑크와 갱단, 범죄, 전쟁, 초법적 거대 기업과 최신 기술 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휘말리죠. '엣지러너(EdgeRunner)'는 작품 속에서 용병 같은 존재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엣지러너(EdgeRunners)는 또한 경계(Edge) 위를 달리는 사람들(Runners)의 이야기입니다.

지나치게 노력하다가 삶이 파괴되기 직전의 경계,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꿈을 손에 넣을 것 같지만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 떠안은 것이 너무 많아서 발걸음을 뒤로 돌릴 수가 없는 그런 경계들 말이죠.

그 선을 넘으면 원래의 삶으로 돌아올 수 없거나 파멸하지만, 그 너머가 너무 달콤해서, 혹은 나만은 예외일 것 같아서, 짊어진 게 너무 많아서, 돌아가지 못할 이유가 있어서... 경계 위에서 내려올 수가 없죠.



그리고 그런 삶은, 결국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대로 됩니다. '현실적'이란 단어가 염세적이거나 비아냥조의 말로 쓰이는 이유이기도 하죠.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멈춰야 할 선을 항상 지킬 수 있는 사람도 없죠.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

잘못된 판단을 내렸고 상황이 나빠졌지만, 다들 그렇게 해야 했던 나름의 이유가 있고요. 잘한 사람도 잘못한 사람도 없달까, 모두가 다 잘못을 하고 살아가기에 어떤 한 사람을 비난하기도 어렵습니다. 엣지러너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이죠.



우리는 작품 속에 인간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그걸 읽습니다. 캐릭터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부분이 이야기가 되는 건데, 엣지러너는 그걸 굉장히 잘 해냈습니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안고서 위를 향해 바둥거리는 거리는 평범한 사람의 삶을, 경계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서 달려가는 사람의 희노애락을 디스토피아적인 SF 위에다가 공감할 수 있게 잘 그려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점을 몇 가지 더 이야기하면요.

하나는 인간의 목숨을 미화하지 않았다는 것. 수많은 이야기에서 인간의 목숨과 죽음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미화하지만, 실제 현실의 죽음은 허무하고 덧없죠.

다른 하나는 '나의 인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대개의 소년 만화에서 주변 동료들은 주인공에게 맹목적인 헌신과 변치않는 우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내가 힘들고 내가 절박할 때'에도 남에게 헌신과 충성을 보여주는 사람은 거의 없죠.

마지막으로 우리의 진심이 언제나 가까운 사람에게 이해 받을 수는 없다는 것, 모든 것을 다 전달할 수 없다는 것. 이런 것들이 이야기에 담겨 있는 게 너무 좋았고, 너무 공감됐고, 안타까웠습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단점을 하나 말하자면 후방주의입니다. 철저하게 성인 대상의 작품이니 미성년에겐 보여주지 마세요.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자녀들과 같이 보지 마세요.

뭐랄까. 막 성적인 의미로 자극적이게 야하다 이런 건 아닌데, 적나라합니다. 보면서 이거 혼자 봐서 정말 다행이고 주위에 누가 있었으면 꽤 불편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뭐 개인차는 있겠습니다만(?).

그리고 피범벅입니다. 여기서 그런 장면을 보여드리진 않았지만, 종종 피바다가 펼쳐지니 알고 보셔요. 사실 이런 부분들도 슬럼가 밑바닥 풍경을 잘 묘사하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분위기를 정말 잘 살렸어요. 다행히 장기 자랑을 하진 않습니다.


진짜 기억에 남는 단점을 하나 더 말하자면, 넷플릭스 한국어 자막이 진짜... 후. 일본어 음성으로 시청했는데, 전체적으로 성격이나 뉘앙스를 무시하고서 대충 편한 쪽으로 문장을 지어내더군요. 안 그럴 수 있는 부분들에서도요.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안 좋은) 자막이 옛날에 영화관에서 본 자토이치였는데, 이제 엣지러너로 바뀌었습니다.

(분노를 담아서 쓸데없는 부연 설명을 좀 더 하자면, 전체적인 면에서는 엣지러너가 더 별로고, 특정 부분의 오역을 부각할 경우 자토이치가 더 별로입니다.)



참고로 '사이버 펑크 : 엣지 러너'는 2020년에 발매된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속편으로, 게임 스토리가 시작되기 1년 전인 2076년의 사건을 다룹니다. 저도 게임을 안 해봤기 때문에 연관지어서 이야기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단지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시청에 문제는 없으며, 애니메이션 단독으로 훌륭한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마침 스팀 여름 할인이니 바로 사야겠습니다. 게임의 경우 발매 직후 온갖 문제로 희대의 망작이 되었다가, 엣지러너를 징검다리로 연명한 후, 확장팩이 나오면서 살아나서 지금은 명작 소리를 듣는 듯합니다.



영상, 연출, 이야기, 배경 음악 모두가 조화롭게 잘 맞았고요. 인물들은 살아 있었고, 이야기의 플롯 역시 긴장과 흥미가 끊기지 않게 고도로 계산되어 있었습니다. 취향은 탈지 모르겠지만 정말 대단한 완성도의 작품입니다.

20대라면 자극적인 액션과 캐릭터성과 사랑 이야기에 많이 끌릴 것 같고, 30대 이후라면 좀 더 현실을 공감하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4년 6월 기준으로 넷플릭스에 올라가 있으니 접근성도 좋습니다. 좋은 작품이고 추천합니다.


Animation| 2024-07-01 18:00:00 | [Commen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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