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상자

reply by 아이어스 in 정상인

한국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우리 술이 사라지고 희석식 소주가 대중화되면서 정상적인 술 문화가 사라진듯 한데, 그 때문에 술을 왜 먹는지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

인간이 왜 술-알코올 음료-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지만, 어떤 학자들은 과일 속에 있는 알코올 때문이라고 해. 잘 숙성된 과일은 몇% 정도의 알코올을 함유하는데, 이 알코올의 향은 곤충 등이 숙성된 과일의 냄새를 찾는데 가장 강력한 지표가 되거든. 이런 특성이 진화를 거쳐서도 알코올을 찾게 하지 않았을까...란 추측이야. 인간 말고 원숭이도 술을 담가먹는 경우도 있고.

그건 그렇다치고, 술을 왜 먹을까. 내 생각에는 맛있기 때문이야. 술 맛을 잘 알기 때문에 맛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음료로서 술은 실제로 맛있어. 단지 한국은 (맛없는) 소주가 주류라 이걸 사람들이 잘 모르지.

술을 얼마나 마셔봤는지는 모르지만. 만일 술을 맛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면 참 안타까운 일인 것 같아.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작품 중 하나가 술이라고 생각하거든.

술에 경험이 별로 없다면 죠니워커나 글렌피딕 같은 위스키 계열은 초심자에겐 너무 독한 술이야. 더군다나 위스키는 미각보단 후각으로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그냥 무턱대고 마시려하면 실망하게 될 거야.

혹시라도 술이 왜 맛있는지 알고 싶다면 우선은 입이 행복한 맛있는 술을 찾아봐. 특히 단맛이 나는 좋은 술은 맛있다고 느끼기 쉽지. 술 맛을 잘 아는 사람에게 배우는 게 제일 좋은데 쩝.

와인의 경우 맛과 향이 풍부하고 음식과 함께 먹으며 상승효과가 나서 맛을 아는 데에 가장 좋은 술인데. 안타깝게도 와인은 먹는 타이밍이 따로 있어. 시중에 파는 와인이 먹기 좋은 상태로 정확히 숙성된 게 아니거든. 그래서 와인은 잘 아는 사람에게 배우지 않으면 먹기 힘들단 단점이 있다. 나만 해도 처음에 혼자 그냥 따먹고서 맛 없다고 다 뱉고 버렸지. 혼자 탐구할 땐 오히려 레스토랑에서 식사와 함께 값 싼 하우스 와인 한 잔이 나은 선택일 수도 있는데, 어떤 와인이 어떤 상태로 나올지는 순전히 레스토랑의 실력에 맡겨야하니 약간 도박이야;_;

칵테일 중에서 달고 알코올 냄새가 덜 나는 것을 우선적으로 찾아보는 것도 좋아. 맛있는 칵테일은 일반적인 음료와 매우 흡사해서 먹기 편하지.

맥주는 구하긴 쉬운데 오히려 술 맛을 모를 땐 맛으로만 먹긴 좀 애매한 게 많아서 흠. 최근에 친구랑 먹은 크로넨버그 1664 블랑(Kronenbourg 1664 BLANC)이라는 프랑스 맥주도 참 맛있었는데 이런 것도 싫어하려나? 사람마다 알코올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니 옆에서 보지 않는 한 뭐라고 하기 힘들다.

그냥 술 전반에 걸친 팁을 한 가지 이야기 하자면, 술은 특히 향이 굉장히 중요한 음료야. 향이 좋은 술은 입에 반쯤 머금고서 숨을 코로 한 번 보내서 음미하는 것이 맛보다 중요할 수도 있어. 무엇보다 음식으로서 술이 가지는 경쟁력 중 하나인데 술만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향이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시도할 의지가 없거나 혹은 여전히 본인이 술이 맛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자기한텐 술이 맛이 없는 거야.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술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거지. 그냥 취향 문제인 것. 단지 술은 사람마다 취향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찾지 못한 거라면 아쉽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은 술에 살짝 취하는 게 기분 좋아서 마신다고도 하는데,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아. (물론 저런 기분이 들 수 있는 것은 맞지만) 그보다는 역시 술 자체가 맛있는 음료라서 마시는 거야. 난 결코 술 먹고서 취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알코올로 기분이 좋아지는 걸 원하지도 않아. 단지 술만으로 느낄 수 있는 맛과 향이 좋다:)

2014/09/02(Tue) 03: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