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백과사전에 대한 기록
2022년 11월 02일 · 오전 12시 00분
예전에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만 해도, 집에 백과사전이란 게 있었습니다. 국어사전이라거나, 영어사전이란 것도 있었죠. '책'으로요. 그 시절엔 동네마다 작은 도서관도 많아서 없는 책을 볼 일이 있으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 읽고 복사하는 것도 굉장히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학교 숙제 때문에 도서관에 친구들과 가는 일도 종종 있었죠. 요즘 조금씩 방의 물건들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계속 생각을 해 본 결과 백과사전을 아무래도 버려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과거에 한 번 버리잔 말이 나왔을 때 제가 사수해서 방에 모셔뒀던 것인데 말이죠.
한국교육문화사 원색세계대백과사전. 요즘은 이 정도로 거대한 책은 거의 보기 힘든 것 같네요. 이런 책이 32권 세트로 한 질의 백과사전이 됩니다. '질'이란 단위도 정말 오랜만에 써 보는군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식욕이 꽤 강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지금처럼 번역된 책이 많지도 않았고, 만화나 게임과 연관될 수 있는 자료는 더더욱 없었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인터넷 서점도 없었고 학생이라 돈도 없었죠. 그래서 제가 무슨 짓(?)을 했느냐 하면, 집에 있던 백과사전 서른두 권을 그냥 책 읽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저는 그냥 읽고 싶어서 읽었는데 이런 식으로 사전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단 말을 훗날 들었습니다. 백과사전을 ㄱ부터 ㅎ까지 읽으면서 관심이 있는 자료는 메모하거나 표시를 해 두었죠. 중학교 1학년 정도 때 일이었던 것 같아요. 흥미롭게도 이 때와 지금의 지식적 관심사는 제법 비슷합니다.
저 당시에 백과사전을 읽으면서 관심있는 페이지는 위쪽 귀퉁이를 접어서 표시했습니다. 이 페이지에서는 '마롱 글라세'라는 게 너무 맛있어 보였었죠. 당시에는 서양 디저트가 한국에 거의 들어오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물론 지금도 마롱 글라세를 아직 못 먹어봤습니다. 몇 년 안에 먹어 봐야겠네요.
아마 요즘의 어린 세대들은 대부분 백과사전을 직접 본 적이 없을 것 같습니다. 펼치면 아래처럼 빼곡한 글씨로 ㄱ부터 ㅎ까지 순서대로 수많은 것들에 대한 지식이 적혀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추억의 백과사전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백과사전을 '추억'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은 드무려나요?^^;
사실 이 글을 올리기 전엔 마음을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버리기가 싫어지네요. 가능하면 살려 보고 싶지만 어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버리든 버리지 않든, 이 글을 볼 때마다 백과사전을 추억하고 싶습니다. 아파트란 건 한 사람이 일생을 보내기에 그리 적절한 주거지가 아니란 생각이 늘 듭니다. 시대에 뒤쳐진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겐 주택에서 일생을 보내고 그 안에 평생의 물건들이 담겨 있는 모습이 참 이상적인 것 같아요. 안타깝네요.
이때는 물건에 '정가'라는 게 써 있던 시대였죠.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