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집사(steward)와 집사(butler)
우리 모두 '집사'라는 존재를 알고 있다. 유럽에서 집안 내부의 일을 총괄하며 가장(家長)의 심복으로 일했던 직책. 그들은 지금도 존재하고, 근대와 근세, 중세에도 존재했다.
우리는 유럽 집안의 하인들이 어떤 전형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다. 부자나 귀족, 왕실에 이르기까지,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공유하는 가정의 형태는 중세부터 이어진 오랜 전통이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세바스짱, 아니 집사가 있었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Butler
Butler c. 1922, Bell telephone magazine, by American Telephone and Telegraph Company, CC BY-SA 4.0
크게 두 가지 직책이 동양식 단어인 '집사(執事)'로 번역된다. 스튜어드(steward)와 버틀러(butler), 둘 다 한 번쯤은 본 듯한 단어일 것이다. 왜 스튜어드와 버틀러라는 두 가지 단어가 똑같은 '집사'로 번역되게 됐을까? 그리고 그 이전에, 이 직책들이 대체 무엇이길래 중세부터 지금까지 이름이 전해질까?
이번 연재에서는 중세의 가족 구조와 함께 집사, 그리고 (역사책에서) 이상할 정도로 권력이 있어 보이는 마구간지기에 대해서 알아 보자.
1. 중세의 가족(family)과 가구(家口)
(1-1) 중세의 가족의 개념
중세 유럽에는 오늘날과 같은 뜻의 '가족'이란 단어가 없었다. 패밀리(family)라는 단어의 어원을 보면, 라틴어로 '하인(servant)'을 뜻하는 famlus가 후기 중세 영어 family로 바뀌는데, 뜻은 여전히 '가정의 하인들(the servants of a household)'이나 '귀족의 수행원(the retinue of a nobleman)'이란 의미였다.
중세 유럽에서 '가족(family)'이란 '한 집에서 같이 지내는 식구 전원'을 뜻하는 말이었으며, '식구'에는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하인들까지도 포함됐다. 중세의 가구는 단순한 '주인과 일꾼', '고용주와 피고용인' 관계 아니었다. 가장은 가구의 구성원 모두를 책임지고 부양했고, 적어도 초기에는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는 공동체 집단을 이뤘다.
이 연재에서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가족' 대신 '가구(家口, household)'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중국 드라마에 나오는 '가주와 식솔'과도 굉장히 흡사한 개념이다. '남'을 배제한, 오늘날과 같은 가족의 개념은 18세기가 되어야 나타나기 시작한다.

(1-2) 가사를 책임지던 관리자들
중세 봉건제 사회가 형성되면서, 프랑크 왕국 시절 한 지붕 아래에서 살던 가신과 전사들은 대부분 각자의 영지나 성(城)을 얻어 독립했다. 왕의 관료였던 '공작'이나 '백작'도 작위로 변해서 독립을 선언했다. 확대가족이 분열되면서 친척들도 떠났다.
새롭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왕이든 귀족이든 남아 있는 가구 구성원들을 기반으로 다시 세력을 키울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귀족들 사이에선 자신의 가정에서 일을 하는 하인 뿐만 아니라 그 관리자까지도 (농노와 같은) 예속민 중에서 뽑는 풍조가 퍼졌다.
지역과 지위에 따른 차이는 있었다. 예컨대 작은 귀족이나 성주들은 지역의 농노나 자유민을 뽑아서 책임자를 맡겼다. 그에 비해 왕이나 강한 영주의 가정의 가사 관리 책임자들은 일반적으로 귀족이었다.
영국에서는 예속민을 가구 구성원으로 뽑는 것에 전통적으로는 관대한 편이었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아니었고, 왕의 '집사' 자리에 대제후가 뽑히기도 했다. 신성로마제국은 예외적으로 황제가 농노를 꾸준히 뽑았는데, 이유는 대부분의 귀족들이 황제를 견제하는 정적(政敵)에 가까웠기에, 차라리 믿을 수 있는 (힘 없는) 예속민을 일종의 관료처럼 등용했던 것이었다.
2. 여행하는 가족과 수행원들
중세 귀족의 가구(家口)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지속적인 여행을 위해서 고안하고 설계된 구조였다는 것이었다.
앞선 연재에서 중세의 권력자들은 영토 전체를 순방하며 관리했다고 말했다. 영국의 헨리 3세는 한 해에 80번을 이동했다고 한다. 이렇게 빈번한 이동과 정착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분업화와 조직화가 필연적으로 따라와야 한다. 특히 그 규모가 수십부터 수백, 수천 명에 이른다면 관리/지휘 책임자들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중세 가구의 구조를 보면 크게 관리부서와 음식부서, 그리고 생활용품을 관리하는 부서로 나뉘어 있다. 관리부서에는 가주(家主)의 바로 아래에서 가사 전체를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었으며, 각 부서는 다시 세분화 된 하위 부서와 중간 관리자, 하위 관리자, 실무원 등으로 나뉘었다. 왕이 수백 수천의 '가구 구성원'과 함께 이동하면 이들은 일사분란하게 역할을 해냈고, 목적지에서도 즉시 생활할 수 있는 상태을 만들어 냈다.
이런 구조에서 실무 관리자들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둘이 있었으니, 바로 스튜어드(steward)와 마샬(Marshal)이었다. 흔히 귀족 가문에선 '집사'와 '마구간지기'로 자주 번역되는 직책이다.
(2-1) 스튜어드(steward) : 실무와 관리의 책임자
스튜어드는 가구(household)를 뜻하는 stiȝ에 관리인(warden, keeper)을 뜻하는 weard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이다. '가구 관리인'. 중세 초부터 영주의 모든 재산과 하인을 총 감독하는 하인의 우두머리였다.
스튜어드의 권한은 굉장히 막강했는데, 영주의 업무를 일부 대행하고 영주 부재 시에 대신 성을 관리하는 총 관리자였다. 영지 내의 농민을 대상으로 농민 법정을 직접 열어서 판결을 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권한과 관련된 재판에서는 제후나 수도원장과 함께 배석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스튜어드를 포함한 이런 직책들은 원래 관직이 아니라 가구 안에서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왕의 가정이든 귀족의 가정이든 처음엔 명칭의 차이가 없었다.
13세기 영국 왕실의 Lord High Steward였던
레스터 백작 시몽 드 몽포르.
스튜어드(steward)는 번역될 때 '청지기'라고 자주 번역되는데, 이것은 조선시대에 관리나 양반의 옆에서 잡일과 시중을 들던 청(廳, 관청/대청 등의 청)직(直)이란 직위명을 빌린 것이다. 가령(家令)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며, 규모가 좀 작은 귀족 혹은 부유한 집의 스튜어드는 '집사', '집사장' 정도로 번역이 된다. 무협지의 개념으로는 총관이랄까.
왕실의 경우는 동양식 왕실 관료명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궁내부 장관'이나 '시종장' 같은 식으로 말이다. 이건 아마도 왕의 가사 관리인들이 사실상의 왕실 관료의 기능을 했기 때문에 번역가가 동양의 왕실과 비교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로 영국 왕실에서는 스튜어드가 그대로 관직으로 변해서 Lord High Steward 라는 직책까지 생겼는데, 교학사 신영한대사전에서는 '왕실집사장'이라고 번역되고, 일본의 위키피디아에서는 대가령(大家令)이라고 번역되면서 영국 국무대관(國務大官)의 1위 관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2-2) 마샬(marshal) : 여행과 치안의 책임자
중세 가구에는 스튜어드에 버금갈 권력을 쥐고 있는 직책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마샬(marshal)이었다. 말(horse)을 뜻하는 marha에 하인/군인(servant/soldier)을 뜻하는 skalk가 합쳐진 말이다. 놀랍게도 귀족이 아닌 자에게 군권을 준 것이다.
지난 연재에서 중세의 왕실이나 귀족들은 영지 순방을 다닌다고 했다. 이렇게 근거지를 이동할 때 총책임자 역할을 했던 자가 바로 마샬이다. 직책의 어원에 말(馬)이 들어가는 것처럼, 주요 임무는 말과 마구간의 총 관리였으며, 병력의 지휘관이기도 했다. 가문의 군사에 관련된 직책으로 대규모 집단의 이동 책임과 경호를 담당했으니, 그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중세에 말은 여행, 사냥, 전쟁 등에 사용되는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다.
왕실에선 다른 직책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함께 더 높은 명예로운 자리로 변했다. 영국의 경우 백작 마샬(Earl Marshal)이나 기사 마샬(Knight Marshal) 등 직위로 파생되면서 육군 장교나 치안을 담당하게 됐다. 오늘날 marshal이란 영어 단어는 육군의 5성급 장군인 '원수'라는 계급을 뜻하기도 하고, 치안과 재판 쪽으로 '보안관'을 뜻하기도 한다. 둘 다 중세 마샬의 업무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이 직책의 번역은 상당히 애매하다. '마구간지기' 정도로 번역될 때가 매우 많은데, 번역된 직책명만 보면 "중세의 마구간지기는 뭔가 힘이 강했던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마구간지기가 잘못된 번역이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겠으나, 실제로 마구간을 돌보는 실무자는 마샬의 밑에 따로 있었으니 미묘한 것 같다.
(2-3) 체임버린(chamberlain) : 침실 관리인이자 재무 담당자
챔버/체임버(chamber)는 공간이나 방을 뜻하는 말인데, 중세의 성에서는 보통 베드 챔버(Bed Chamber), 즉 침실을 말했다. 체임버린은 직역하자면 '침실의 하인'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일반적인 초기 성(城)의 구조에서 '침실'은 한 개 밖에 없었다.
그들은 가주의 침실을 관리하고, 밤에 침대 옆의 바닥에서 같이 자면서 자잘한 시중을 들었다. 왕이 잠을 잘 때 옆에 둘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 그야말로 믿을 수 있는 심복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날 사전에서 chamberlain은 '시종'이라는 뜻으로 나와 있다.
Grand Chamberlain이라고 하면 '시종장'이라고도 번역되기도 하며, 본인의 처신에 따라 왕의 곁에서 대단한 권력을 쥘 수도 있는 자리였다. 기본적으로 침실에서 시작해서 내부의 대소사를 관리했으며, 침실에 보관된 금고(chest) 관리를 위임받았고 재무에 관련된 일을 했다. 그렇기에 고위 귀족이나 고위 성직자가 아니면,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이 직책을 맡게 됐다. 나중엔 위엄의 표시로 왕의 침실 열쇠를 차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17세기의 체임버린이 열쇠를 차고 있다.
Lord Great Chamberlain, Lord Chamberlain 등의 파생 직책이 생겼으며, 왕실뿐 아니라 대성당이나 도시의 정부에도 같은 이름의 직책이 있어서, 런던 시의 재무책임자는 지금도 체임버린이라고 불린다.
(2-4) 기타 고위 책임자들
이런 중세의 가구 구성원들은 초기에는 제법 단순한 집단이었다. 하지만 12세기가 되면, 그리고 14세기가, 15세기가 되면, 귀족들이 한 곳에 정주하고 점점 부유해지면서, 귀족 가구 역시 더욱 복잡하고 거대한 집단으로 변해간다. 특히 왕실처럼 덩치가 큰 집단은 굉장히 세분화되고 다양한 책임자들이 생겨갔다.
위에서 다루지 않은 큼지막한 직책으로 챈슬러와 콘스터블이 있는데, 챈슬러는 왕실의 문서와 사법권을 다루던 직책이고, 콘스터블은 왕실 군대의 사령관으로서 마샬과 함께 군을 지휘했다. 그 외에도 나중에 생긴 보물고를 관리하는 워드로브 등이 있었지만 여기서는 짧게 생략하겠다.
오늘날까지도 영국 '왕실(영국 정부와 다르다)'의 고위 대신은 그 이름 만큼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Lord High Steward - Lord High Chancellor - Lord Great Chamberlain - Lord High Constable - Earl Marshal 로 이어지는 스튜어드, 챈슬러, 챔버린, 콘스터블, 마샬은 일찍부터 중세 왕실을 보조하던 직책이 지금까지 남은 것이다.
3. 버틀러 : 술과 음료의 관리자
인간이 살아갈 때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음식이다. 먹을 게 없으면 움직일 수도 싸울 수도 없다. 중세는 먹을 것이 풍부한 시대가 아니었고, 주방과 음식을 관리하는 직책은 매우 중요했다.
부엌이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라면, 저장고는 음식을 보관하는 곳이다. 버터리(Buttery)는 라틴어로 '병(bottle)'을 뜻하는 bota를 어원으로 한다. '병을 저장하는 곳'이란 뜻으로, 원래는 수도원에서 쓰던 명칭이 민간으로 퍼져서 '술 저장고'란 뜻이 되었다. 이 버터리를 관리하던 책임자가 '버틀러(Butler)'이다.
술은 매일 마실 뿐 아니라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중요 식품이었다. 버틀러 역시 원래는 '신뢰할 수 있는' 노예나 자유민 등 낮은 신분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버터리가 술만 아니라 다양한 식료품을 저장하는 창고가 되면서, 버틀러 역시 중간 관리자급의 하인이 되었다. 이후 점점 권한이 커져서 버틀러는 결국 식품 저장고 외에도 식당과 관련 부서들의 책임까지 맡게 된다.

중세가 끝나고 근세가 지나고서, 17~18세기 무렵에는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남의 집에서 일을 하지 않게 됐다. 그에 따라 버틀러(와 다른 책임자들)는 가장의 직계 가족을 제외한 최상급 관리자 직책이 된다.
단, 이때까지도 상류층 가정의 재산과 재정은 아직 스튜어드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19세기 초 산업혁명으로 부유한 중산층 가정이 급증하며 버틀러가 신흥 부유층 가정 책임자의 주류을 차지하게 됐다. 흔히 알고 있는 '집사복을 입고 집안의 하인을 총괄하는' 집사가 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스튜어드도 버틀러도 집사로 번역되고 있지만, 집사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선입견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버틀러를 이야기한다. 업무는 남자 하인을 총괄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스튜어드는 기존 상류층 가문에서 외부 재산이나 부동산 관리 등을 주로 맡았다. 시대와 함께 사라져 가며, 일부는 '부동산 업자'와 같은 새로운 직업으로 재탄생한다.
결국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집사'의 역할은 본래 스튜어드로부터 나왔지만, 영화나 만화로 접한 검은 연미복을 입은 '집사'의 모습은 19~20세기의 버틀러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4. 기타 여러 부서들
중세 가구의 구조를 보면 업무 관리와 군사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전체가 음식과 관련된 부서인데, 대규모 이동을 빈번하게 할 때 '보급'의 임무까지도 맡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음료를 관리하던 버터리 이외에도 중세 가구에는 각 업무별로 여러 부서와 중간 책임자들이 존재했다.
예컨대 식품을 구매하는 부서나 고기와 기름을 관리하는 부서, 향신료를 관리하는 부서, 물을 관리하는 부서, 도축, 세탁과 설거지, 천 종류나 양초를 관리하는 부서 등등 다양한 부서와 책임자들이 있었다. 왕실 가구처럼 규모가 큰 경우는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고, 가구의 규모가 작아질 수록 한 부서에서 여러 가지 일을 통합해서 맡았다.
참고로 이번 연재에서는 실무자인 '하인'들을 위주로 설명을 했으나, 가장 다음의 두 번째 책임자는 그 부인이었다는 것은 잊지 말자. 단지 부인은 실무를 아래까지 세세하게 챙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의 '실무의 이인자'가 스튜어드란 이야기였다.
5. 마치며...
봉건사회가 생겨나는 9~10세기의 모습은 참으로 흥미롭다. 영지를 가진 신하와는 오히려 거리가 멀어졌다. 반대로 집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신하와 하인은 더욱 거리가 가까워졌다. 왜냐하면 화폐로 봉급을 줄 수 없는 경제 구조 아래에서, 이들은 부양자와 피부양자의 관계로 강하게 결속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지로 독립하는 신하들을 떠나보내고서, 중세의 귀족들은 예속민을 가정 내 실무자로 뽑았다. 그들은 주인의 위세를 등에 업고서 사실상의 귀족 행세를 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막대한 부를 모았다. 훗날 신분 상승에 성공한 자들은 공식적으로 귀족의 자리를 얻거나, 기사와 결혼해서 기사 신분의 가문을 세웠다. 실패한 자들도 부유한 농민이나 지역의 유력가가 되었다.
왕들은 귀족을 실무자로 뽑았고, 그들은 궁정의 높은 직책으로 발전했다. 신성로마제국은 예외적으로 황제가 특히 예속민 출신을 관료처럼 많이 뽑았다. 이들은 후에 미니스테리알레(ministeriales)라는 신분층을 이루면서 하급 귀족 사회에 끼어들었다.
이런 중세의 가구는 빈번한 이동에 특화된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실무의 총 책임자로는 스튜어드가, 여행의 총 책임자로는 마샬이 있었다.
중세의 가구는 이처럼 영주 가족과 가신, 하인들이 함께 생활하는 집단 공동체였다. 하지만 11세기 무렵 귀족들은 친족을 다시 중요시하게 됐고, 12세기가 되면 신분이나 프라이버시 같은 개념이 떠오르면서 본래 함께 생활하던 주인과 가사 노동자들의 공간은 분리되어 갔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가구 공동체 개념은 변해가면서도 18세기까지는 유지되었다.
※ 내용 수정에 관해서 : 중세 확대 가족의 해체와 혈족을 다시 중시하게 된 시기에 대해서, 제가 1세기만큼의 시간을 혼동해서 잘못 적었었고 현재 수정했습니다. 중세의 전통 확대 가족 집단이 해체된 시기는 9~10세기이며, 혈족 집단을 다시 중시하기 시작한 시기는 11세기부터입니다. 이 내용은 마지막 '마치며' 부분에 들어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건 귀족 가족에 한정됩니다.
▶[중세의 가구 : 시녀와 메이드 (1)]로 이어집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Butler
Butler c. 1922, Bell telephone magazine, by American Telephone and Telegraph Company, CC BY-SA 4.0
13세기 영국 왕실의 Lord High Steward였던
레스터 백작 시몽 드 몽포르.
중세에 말은 여행, 사냥, 전쟁 등에 사용되는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다.
17세기의 체임버린이 열쇠를 차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