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가구 : 시녀와 메이드 (1)
2022년 11월 26일 · 오전 12시 00분
0. 들어가며... 집사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번엔 메이드 이야기를 해 보겠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중세에 '우리가 떠올리는' 메이드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매우 당연한 이야기인데, 애초에 중세에는 하녀의 '유니폼'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하녀는 있을 수 있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메이드의 정체성'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번 연재에선 메이드라는 주제와 함께, 하인이란 신분이 아니면서도 남의 가정에서 일했던 자들에 대해서 정리해 보겠다. 1. 하인과 시종 지난 연재에서 중세의 가구와 가사 책임자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일반 귀족 가정에서 그들은 기본적으로 농민 출신의 '하인'들이었고, 왕가라 하더라도 청소나 빨래와 같은 허드렛일을 하는 실무자들은 당연히 귀족이 아닌 '하인(下人, servant)'이었다. 귀족 집안의 규모에 따라서 그런 하인들은 적게는 수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 왕가라면 그 이상의 엄청난 숫자가 있었다. 그런데 귀족들도 남의 집에서 일하며 시중을 들었다. 주로 왕족 곁의 귀족 출신 측근들을 '시종(侍從)'과 '시녀(侍女)'라고 번역한다. 시(侍)는 '모시다/받들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인데, 관청(寺)에서 높은 분을 모시는 사람(人)이란 기원을 갖고 있다. 십상시(十常侍), 내시(內侍) 등의 직책명에 사용됐으며, 조선에서 시종은 궁내부 시종원의 관직이었고, 시녀는 내명부에서 왕족을 섬기는 직책이었다. 유럽의 귀족 출신 시종은 영어권에선 Gentleman-in-waiting이라고 부르고, 시녀는 Lady-in-waiting이라고 불렀다. 문자 그대로 곁에서 대기하는(waiting) 자들. 이 명칭은 정확한 직책명이 아니라 일반화 시킨 명칭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왕실별로 수직적으로 더 세분화된 직책명들이 따로 존재했다.
(좌) 헨리에타 마리아 왕비의 시녀였던 수잔 페일딩 백작부인(1583-1652) / (우) 「Mistress and Maid」, Johannes Vermeer, 17세기 작품. 좌측에 서 있는 쪽이 하녀이다.
한국어로는 비슷한 일을 하는 서로 다른 직책들이 한데 묶여 '시종'으로 번역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시종'으로 자주 번역되는 발레(Valet)의 경우 귀족이 아닌 하인이었다. Valet의 여성 버전인 레이디스 메이드(Lady's maid) 역시 귀족 여성의 전속 하인을 말한다. 참고로 Valet는 발레 파킹(Valet Parking)의 어원이 된 직책이기도 하다. 지난 번에 나온 체임버린도 자주 '시종'이라고 번역된다. 2. 유럽의 시종과 시녀 권력이 집중되고 군주권이 신성화되면서, 왕족과 접촉하는 자들은 고귀한 귀족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생겨났다. 그래서 초기에는 왕족의 수발을 하인들이 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귀족 출신의 시종으로 대체됐다. 그리고 대귀족들 역시 자기보다 낮은 귀족 출신의 시종을 두게 됐다. 유럽에서 시종과 시녀는 완전히 분리된 집단이었다. 시종은 왕(남편)의 가구(household)의 구성원이었고, 시녀는 왕비의 가구의 구성원이었다. 왕비가 독립된 자신의 가구를 가진 이유는 중세 왕족이나 귀족은 부부가 서로 떨어져서 살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기간도 길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진다. 앞선 연재에서처럼 '이동하는 가구'는 각자의 임무를 가지고서 주인을 따라다녔다. 만일 부인이 다른 곳에 남은 경우 부인은 자신의 가구 조직을 따로 가져야 했을 것이다.
시녀들에게 둘러싸인 외제니 황후, Franz Xaver Winterhalter, 1855. 그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보통 소설에서 생각하는 '궁정'의 모습은 18~19세기 정도의 것이다. 밖에선 기차가 신나게 달리고, 자동차가 있을 수도 있는 시대...
시종과 시녀 집단은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 위해서, 이론적으로는 성별의 구분을 명확하게 했다. 왕은 남자 시종을 뒀고, 왕비는 여자 시종(시녀)을 뒀다. 이 개념은 유럽 사회 전체에서 공유되어서, 먼 훗날의 19세기 상류층 가정에서도 남성 가장(家長)의 집사를 필두로 한 남성 하인 집단과, 부인 아래의 하녀장을 필두로 한 여성 하인 집단이 서로 다른 지휘 체계 하에 존재했다. 자료들을 보면 남자 버전에 해당하는 시종, 즉 Gentleman in waiting에 대해선 거의 다뤄지지 않는데, 이유는 아마도 남성, 특히 왕의 가구(Royal court, Royal household)의 멤버는 챈슬러, 콘스터블, 채임버린, 워드로브 등이 이미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시녀들은 동양과는 달리 왕비와 비교적 수평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그들은 비서이자 조언가이자 동반자이며, 신뢰할 수 있는 친구로서 기능했다. 옷을 갈아입히거나 목욕을 시키는 등, 왕족의 몸에 직접 손을 대는 시중도 들었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음악이나 노래를 연주하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규모는 동양에 비해서 작았다. 초기 왕실에선 10명도 되지 않는 작은 수의 시녀 집단이었고, 절대왕정 시기에 수가 크게 늘었을 때 40~50명 내외였다. 재미있게도 시녀들은 기본적으로 결혼을 해야 했다(그 후 결혼을 하지 않은 시녀 집단이 따로 생겨났다).
어린 마르가리타 왕녀와 시녀들. 1656년, Diego Velázquez 作. 그림에 나오는 시녀들은 결혼을 하지 않은 메이드 오브 어너(Maid of Honour)들이다.
이들은 따로 보수를 받을 수도, 받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가장 큰 목적은 왕족의 근처에 머물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고 권력을 등에 업는 것이었다. 왕족이 아닌 귀족의 시종의 경우, 반드시 섬기는 귀족보다 작위가 낮았다. 나라마다 모습이 꽤나 달랐다. 보통 생각하는 모습은 영국인데 일찍부터 왕권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중세 때는 전반적으로 왕권이 약했기 때문인지, 12세기 말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제대로 형태가 갖춰진 것은 15세기, 그리고 17세기가 되어서다. 신성로마제국 역시 16~17세기에 순방을 덜 하게 되면서 시종 집단이 생겨났다. 3. 위탁 양육과 페이지(page) 중세에 기사되는 방법에 대해서 들어보신 분도 계실 것이다. 7살에 다른 기사 가문에 시동(페이지)으로 들어가서, 14살에 견습 기사(스콰이어)가 되고, 20대가 되어 마침내 기사(나이트)가 된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건 기사만이 아니라 중세 귀족 사회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고대 게르만과 켈트 사회에는 아이를 다른 집에서 키우는 습관이 있었고, 이 전통은 중세 귀족 사회로 이어졌다. 귀족이나 기사는 대부분 아이가 7살이 되면 다른 집에 보내서 키웠다(왕족은 예외였다). 표면상의 이유는 진짜 부모보다 위탁 부모가 더 엄격하게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중세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실제론 더 복합적인 사정이 있는데, 일단은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살던 가신제도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주인이 가신을 가족으로서 부양하던 풍습은, 봉건사회가 되어 서로 떨어진 이후에도 이어졌다. 아이를 위탁 교육함으로써 서로를 끈끈하게 만들고 동맹을 맺었다. 가신들의 입장에선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며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전쟁에도 더 많이 참여할 수 있었다.
알로프 드 위냐쿠르와 그의 시종(page). 1608년, Caravaggio 作.
정치적 이유도 있었다. 바로 볼모였다. 너의 아이가 내 수중에 있으니 배신하지 말란 이야기다. 실제로 협박을 한 사례도 존재한다. 또한 봉신이나 경쟁자의 자식을 키움으로써, 원하는 교육과 사상을 주입하고 훗날 적이 되더라도 키워준 자신을 기억하리란 노림수도 있었다. 실리적인 목적도 있었다. 상급 귀족가에서 그들의 모습과 문화를 배우고 돌아오란 것이었다. 이것은 농민이 어릴 때 귀족가에 들어가 일을 하다가 독립할 때에도 발휘된 기능이었다. 그래서 귀족 가문에서 시종, 시동(侍童) 등으로 번역되는 '페이지(page)'란, 꼭 기사 지망생만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다른 가문에 위탁된 귀족 등의 자제들 역시 페이지라고 불리며 귀족과 전사로서의 교육을 받고, 시종이 하는 일을 했다. 이들은 약 14세가 되면 자신의 가문으로 돌아오거나, 혹은 남아서 기사나 가신이 되는 등 독립을 위한 길을 걸었다. 사실 우리가 '농민'이라고 부르는 계층에도 세분화 된 계급과 권력자들, 지역 유지들이 있었다. 그 중엔 시간이 흐르며 어설픈 귀족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성장한 자들도 있었는데, 영국의 젠트리(gentry)와 같은 계층이다. 기사 바로 아래의 비귀족층으로, 가문의 문장(紋章) 사용을 허가 받았으며, 훗날 향사(squier)나 젠틀맨(gentleman)이라고 불리게 된 사실상의 준귀족이었다.
17세기의 영국 젠틀맨.
이들은 귀족을 동경하며 적극적으로 모방을 했다. 고위 귀족이 아닌 일반 귀족들의 시종 역할을 했던 것도 주로 젠트리였다. 왕과 대제후의 아래에선 귀족이 일했고, 귀족의 아래에선 젠트리가, 젠트리의 아래에선 그 아래의 농민이 일한 것이다. 지난 연재에 나온 스튜어드나 마샬 등도 결국 이런 계층에 속했던 농민이다. 농민도 여러 계층이 있고 각자의 사는 방법이 있었지만, 이건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다루기로 하겠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