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글을 올려 놓고서 보니 단일 게시물로서의 길이가 너무 긴 것 같아서 둘로 나눕니다. 가독성을 위해 분량을 둘로 나눴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하는 김에 1편 [중세의 가구 : 시녀와 메이드 (1)]의 링크도 붙여두겠습니다.
4. 중세가 끝난 이후의 변화
이런 모습은 중세부터 수백 년 간 유지되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변화는 확실했다. 원래 하인들은 주인과 같은 방에서 자고 같이 음식을 먹었지만, 귀족으로서의 권위가 커지고 프라이버시란 개념이 생기며 공간이 분리되었다. 특히 화폐로 봉급을 주게 되면서 한 가족이었던 관계는 돈을 주고 받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로 변해갔다.
16~17세기 근세가 되고, 절대왕정 시대에 왕실에 권력이 집중되며 (떡고물이 적은) 귀족 가구의 규모는 이제 축소되어 갔다. 17세기 무렵의 귀족은 왕실이라면 모를까, 남의 집에서는 더 이상 일하지 않게 됐다. 더불어서 17~18세기에는 혁명의 바람이 불어, 새로운 시민사회가 열렸다.
한편 15세기부터 대량생산과 도시화가 시작되면서, 농촌이 서서히 해체되고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 18세기 말의 산업혁명과 농업혁명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일자리를 잃은 농민과 수공업자들이 우르르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엄청난 수의 신흥 중산층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서 부를 거머쥐었다.
산업혁명과 공장화.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아직까진 '공동체'의 모습을 유지라도 하고 있던 전통적인 가구(household)는 완전히 분해됐다. 여유 있는 집안은 '돈'을 써서 '혈연'들이 편하게 지내는 걸 중시하게 되었고, 사용인은 가족 공동체의 밖으로 내보내졌다. '하인', 즉 가사노동자와 주인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가족(family)'이란 단어에서 사용인은 완전히 제외됐다.
급격히 부자가 된 중산층들은 마치 '상류층처럼'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부릴 수 있게 됐다. 18세기에 이것은 성공한 집안의 사회적 상징이었다. 그 결과 집안에 사용인을 고용하는 문화가 사회 전체로 급격히 퍼졌고, 본래는 농촌이나 가족 공동체에 속해 있던 여성들이 밖으로 몰려 나와 직업 하녀(maid)로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녀는 여성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일이었다. 공장 노동자는 거칠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반대로 중산층에게도 여성 가사 노동자는 인기가 높았다. 일단 임금이 '매우 저렴'했고, 당시 여성 노동자의 약했던 입지는 '순종적이고 힘 없는 하인'으로 그들을 대하게 만들었다. 결국 사회에 참여하고 돈을 만져야 권리를 주장이라도 할 수 있는 거니까. 이런 폭발적인 메이드 시장은 계속 성장해서 20세기 초에 최대 전성기를 이룬다. 사용인이 거의 없어진 건 정말 불과 몇십 년 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특히 1777년부터 '남자 사용인 세금(Male Servants Tax)'이 영국에서 부과되면서, '부유한 가정의 흉내'를 내려는 중산층들은 더욱 여성 노동자를 선호하게 됐다. 반대로 남성 사용인/하인의 가치는 엄청나게 올라가서, 남성 사용인을 고용한 가정은 '진정한 상류층의 상징'이 되었다. 남자 하인으로만 구성된 저택을 방문한 손님들은 부러움과 감탄을 흘렸다고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Breeches
Nederlands: Koninklijk Koetsier, by Koninklijk Koetsier, CC BY-SA 2.5
같은 남자 하인 중에서도 키 크고 다리가 예쁜 하인이
봉급도 (훨씬) 더 많이 받았다는 사실.
한마디로 (명분상의) 고위 귀족이나 상류층의 경우, 중세나 근대나 남자 시종과 하인이 주를 이뤘으며, 오늘날 창작물에서 나오는 여성으로 가득한 시종/하인 집단은 전부 일본 만화의 영향을 받은 남성 판타지라고 할 수 있겠다. 중세 때 남성 하인이 주를 이룬 이유는 '전투 집단'이란 중세 가구의 기본 특성 때문이다.
5. 메이드,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
'메이드(maid)'란 단어는 중세 때부터 이미 있던 말이다. 원래의 뜻은 '결혼하지 않은 소녀'를 가리키지만, 단순히 하녀란 뜻도 된다. 중세 때에도 가사 노동을 하는 하녀는 많이 있었다. 그들은 성인까지 일을 하고 독립하려는 농민일 수도 있고, 영주에게 고용된 예속민일 수도 있었으며, 혹은 영주가 (충성심을 노리고) 거두어 들인 고아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메이드복'은 없었다.
과거 사회에서 '옷'이란 실부터 손으로 잣는 완전한 수제품이었다. 그야말로 노동의 집약체인 '옷'이란 엄청난 고가품이었다. 또한 중세 때만 해도 비귀족은 귀족의 옷을 입는 게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귀족이 아니란 걸 한눈에 알 수 있어야 했다. 이 관습은 중세 이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런데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공장이 돌아가면서 분위기가 변했다. 옷은 값싼 공산품이 되었고, '누구나 좋은 옷을 입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세상은 '이론적'으로는 평등한 시민사회가 된 지 오래였다. 산업혁명 이후 누구나 좋은 옷을 입을 수 있게 되면서 상류층과 나머지 계층, 즉 노동자와 중산층의 (외견상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상류 사회는 이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특히나 손님이 주인과 하인을 한눈에 구분하지 못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됐다. 주인과 하인은 다른 사람이란 걸 옷차림만으로 표현해야 했다. 그렇게 메이드복(하녀복)을 비롯한 하인복이 탄생했다. 그럼에도 메이드복은 농촌 소녀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노동자 여성들은 모두 메이드가 되길 원하고, 수많은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 메이드들이 바글거리며, 그 모두가 메이드복이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재미있는 시대가 열렸다. 이때가 바야흐로 빅토리아 시대.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의 기간이다. 메이드는 2차 대전 이전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풍조였다.
사실 19세기 메이드의 대우는 좋지 않았다. 애매한 중산층 가정은 부자를 따라서 메이드를 고용한 후 '뽕을 뽑기 위해서' 엄청난 노동을 시켰다. 메이드를 선호하는 것이 '애매한 중산층'이었던 만큼, 메이드들은 자신이 입을 메이드 복을 스스로 구입해야 했고, 결국 메이드가 되기 위해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모아야 하는 경우조차 비일비재했다. 일터에서도 고용주의 마음에 들지 못하면 '추천장'을 써 주지 않았고, '추천장'이 없이는 이직조차 힘들었다.
오늘날 일본을 중심으로 만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이드는 3D 직종이었다(사실 만화에서도 3D이긴 한데 별 거 아니게 지나간다). 하지만 그조차도 당시 여성들에겐 좋은 직장이었고, 메이드를 하며 돈을 모은 여성들은 (대부분은) 일을 그만 두고 결혼을 했다.
사고 나서 한 번도 안 펼쳐 본 화보집을
20년이 지나서 중세 연재 때문에 펼치게 될 줄이야...
이런 여성의 사회 참여는 시작은 미미했지만, 앞으로 뻗어나갈 여성 인권 신장의 신호탄이었다. 메이드란 형태로라도 사회 참여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고, 의무교육과 함께 여성의 평균 학력도 올라갔다. 그 후 1, 2차 세계대전과 함께 들이닥친 엄청난 수의 (본래 남성의 것이었던) 일자리는,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왔을 때 여성을 다시 밀어낼 수 없게 만들었다.
6. 마치며...
메이드는 시대가 20세기까지 올라오는 만큼 시리즈의 마지막에 연재하려고 했지만, 어쩌다 보니 순서가 뒤바뀌면서 여러 시대의 내용이 다소 뒤섞이게 됐다. 글이라는 게 참 쓰다 보면 원래 계획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서, 계획을 다 세워두어도 전부 새로 기획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오는 것 같다.
귀족 가구 안에서 일하던 자들의 이야기는 아마도(?) 여기서 끝이다. 사실 중세의 귀족과 기사와 거의 모든 사회 계층은, 근본적으로는 대부분 가정 안의 하인에서 출발한 신분들이다. 게르만 전사 가족의 전투원이자 하인들이었던 자들이, 지위가 높아지고 영지를 얻어서 독립을 하니 귀족이 되었고, 기사가 되었고, 혹은 농민에 머문 것이다.
중세 봉건 사회를 통틀어서 왕에서부터 농노에까지 이어지는 충성 서약의 네트워크는, 누가 먼저 나와서 기득권을 잡았냐의 차이이지 본질적으로는 거의 비슷한 성질의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중세 1000년은 이 변화의 과정이었다.

귀족의 위탁 양육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 귀족, 도시민, 농민 들은 각자 양육을 하는 목적도, 그 이유도 달랐지만, 흥미롭게도 결국 자식을 한 번은 남의 집에 보내서 키우는 형태가 전체적으로 퍼져 있었다. 이건 나중에 길드에 대한 이야기나, 농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다시 해 보겠다. 그리고 농촌 사회 내부에도 그곳만의 권력 사회가 있었어서,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불쌍하고 선량하고 온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현대 한국에서조차 마을 이장이 왕처럼 구는 걸 보면 이해가 가실 것 같다.
메이드에 관한 상식(?)을 몇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사실 우리가 아는 '메이드복'은 오후용 하녀복으로, 오전용 작업복과 오후용 하녀복은 다른 옷이었다. 메이드란 직책은 다시 굉장히 세분화되어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메이드 직책으로 불렸다. 더불어서 '유모'의 역할 역시 빅토리아 시대엔 메이드가 맡았다.
19~20세기 근대, 빅토리아 시대의 상류층 가정에서, 메이드와 하인들은 '가족'이었을까? 그들은 서로를 '가족'이라고 말하고 싶어했고, 가족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인도 하인들도, 더 이상 진정한 가족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현 시대의 고용주와 피고용주가 가족이 아니라고 딱 끊어서 말하는 것에 비해서는 분명한 정서적 차이가 존재했다.
무라카미 리코 著, 『영국 메이드의 일상』, 조아라 譯, AK 커뮤니케이션즈, 2017.
'A HAPPY FAMILY'
▶[중세의 가족 (1) : 가족제도의 변화와 방랑 기사]로 이어집니다.◀
산업혁명과 공장화.
https://en.wikipedia.org/wiki/Breeches
Nederlands: Koninklijk Koetsier, by Koninklijk Koetsier, CC BY-SA 2.5
같은 남자 하인 중에서도 키 크고 다리가 예쁜 하인이
봉급도 (훨씬) 더 많이 받았다는 사실. 
사고 나서 한 번도 안 펼쳐 본 화보집을
20년이 지나서 중세 연재 때문에 펼치게 될 줄이야...
무라카미 리코 著, 『영국 메이드의 일상』, 조아라 譯, AK 커뮤니케이션즈, 2017.
'A HAPPY FAM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