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연재에 대해서, 글쓰기에 대해서...
2022년 12월 14일 · 오전 12시 00분
매주 연재하는 요일에 무슨 연재를 할지 보통 한 달 쯤 전에 대략 계획을 짜고 제목을 적어둡니다. 뭐 대부분 쓰다보면 바뀌기는 합니다만. 그리고 오늘 쓸 글은 제목으로 '창작물 연재에 대해서...'라고 제가 계획표에 적어뒀더군요. 솔직히 뭘 쓰려고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납니다(...). 2022년 결산은 연말에 올릴 거고 23년 계획은 연초에 올릴 건데 대체 오늘은 뭘 쓰려고 했었던 걸까요.
이런 식으로 대략 4~5주의 계획을 잡아둡니다. 물론 거의 항상 변하게 되지만요.
잡담을 좀 해 보자면, 올해에는 글을 정말 많이 썼습니다. 제법 열심히 썼고요. 생각해 보면 석사 논문 이후로 이 정도로 공을 들여서 글을 써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지금 쓰는 글들을 논문과 비교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제 기분 상으로는 15년만의 글쓰기입니다. 무엇보다도 1년 이상에 걸쳐 계획적이고 장기적인 글을 쓰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술 연재가 2020년 말에 시작되어서 사실상 2년 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창작물 연재가 시작된 올해부터는 정말 본격적이었죠. 1년 이상 글쓰기에 지속적인 압박을 받는 게 논문 때랑 비슷한 면도 있습니다-_-;;
2020년 10월에 시작된 술 연재와, 2022년 2월에 시작된 창작물 연재.
이미 아는 내용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저에게 배움을 주고 또 배움을 강요하기도 하는지를, 정말로 절절하게 실감했습니다. 사실 '술'이란 분야는 제가 마실 때부터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파고 들었던 분야였거든요. 그걸 글로 옮기는 압박은 별로 없었어요. 내용이 가벼운 연재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중세에 관한 건 정말로 취미의 영역이었고 내용도 더 깊게 쓰다 보니까, 부정확하거나 대충이거나 드문드문 빠져 있는 지식을 재확인하고 채워넣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취미로 아는 것과 글을 쓰는 건 많이 다르더군요. 덕분에 그동안 나이를 먹어서 머리가 굳었다고 생각했는데, 압박 속에 공부를 하다 보니(?) 그게 좀 풀어진 것 같습니다. 아직은 공부할 수 있는 나이란 생각이 들어서 기뻤네요.
글 쓰기란 건 참 뭐랄까. 매우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거의 모르는 분야였습니다. 단순히 생각과 지식을 풀어놓는 거랑 글을 쓰는 건 완전히 다른 것이더군요. 되는대로 지식을 뱉어내는 것과, 읽는 사람을 생각하고 글의 전체 분위기와 짜임, 어조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건 뭔가가 다릅니다. 논문과도 다릅니다. 논문은 굳이 말하면 나를 변호하기 위한 글이지 남을 배려하는 글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걸 상대가 알아듣게 만드는 건 중요하지만, 논문의 어조는 무미건조하며 상대의 기분을 배려할 필요는 없죠. 그런데 연재로 쓰는 글은 제 말투가 상대를 기분 나쁘지 않게 하면 좋겠고, 가능하면 재미있게 읽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담깁니다. 그렇게 쓰려고 하면 완전히 다른 글이 되더군요. 솔직히 이런 것들을 생각해서 쓴 문장과 생각하지 않은 문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잘 하지도 못하고요. 그럼에도 확실히 다릅니다. 퇴고를 제대로 못할 때의 아쉬움도 이 부분이 크죠. 계획을 잘 잡고 퇴고를 오래 할수록 더 정제된, 읽기 좋은 글이 나오거든요. 크게는 짜임새부터 작게는 문장과 어투까지도 뭔가 많은 게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글을 쓰면서 이런 걸 계속 깨닫고 배우지만, 글을 쓰다 보면 이걸 또 잊어버립니다. 다시 잡았던 마음을 잃고서, 어느 순간 글에 파묻혀서 제 욕망에 휘둘리는 걸 보고서 좌절감을 느끼죠. 말하자면 아마추어 작가 비스무리한 게 되어서 그 시행 착오를 겪는 느낌입니다. 이런 면에선 창작이란 분야가 공유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만화와 그림을 그릴 때도 당장은 자신의 세계에 파묻혀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다가, 시간이 몇 주에서 몇 달쯤 지나면 전에 안 보이던 (부족했던) 부분들이 잘 보이게 되었거든요. 글도 그렇더군요.
100만 년 만에...는 아니고, 10년 정도 만에 올리는 낙서. 예전에 그림 그릴 때 유명했던, 자기가 자기 그림의 비례와 대칭을 알아보기 위한 방법! 좌우로 그림을 돌려서 반대로 봤을 때도 얼굴이 안 이상하면 대칭이 맞는 것이다라는... 다른 말로 하면 저런 걸 해 볼 만큼 자기 그림을 제대로 보기가 힘들단 이야기입니다. 위의 그림은 대칭은 대충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지나서, 일주일 지나서, 1년 지나서 봤을 때 제 눈에 보이는 게 다를 겁니다. 그래서 결국 지우고 수정하고 하는 거죠. 근데 솔직히 이런 얘기를 하려고 10년 만에 그림을 그려서 올릴 줄이야... (심지어 그리자마자!)
더불어서 20년 동안 홈페이지를 운영했는데 글을 이것 밖에 못 쓴다니 싶은 심정도 있습니다. 어렸을 때 대충 휘갈긴 잡담들은 글쓰기랑은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많이 했어도 대충 하고 넘어갔던 것은 제대로 된 경험과 실력을 쌓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죠. 아무튼 이런 초보 글쟁이(?)의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점점 더 나은 글을 써서 한 2~5년 쯤 후엔 저럴 때도 있었다면서 병아리 시절을 추억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사실 글을 여유를 갖고 쓰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서... 글을 좀 줄이긴 해야겠습니다. 최근엔 취미로 글을 쓴다는 선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 긴 잡담은 이걸로 줄이겠습니다. 남은 연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 뱀발: 참고로 제가 한창 그림을 그릴 때는 디지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림 그린 종이를 뒷면으로 돌리고서 빛에 비춰서 반대로 봤답니다! 그땐 그랬죠 >_<;
근황 보고 2023-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