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세 성(城)의 절정기
(1-1) 괜찮은 거주지가 된 성
유럽의 성은 중세(5~15세기) 기간 중 9세기 즈음 처음 등장했고, 11세기 무렵 본격적으로 보급이 시작되었다. 12~13세기에는 목조에서 돌을 재료로 전환이 되었으며, 단순한 탑 구조에서 더 복잡하고 개인 거주자를 위한 내부 구조로 바뀌어 갔다.
14세기가 되면 지금에 비하면 조악한 유리이지만 부유한 귀족을 중심으로 유리창이 보급이 되기 시작했고, 바닥에 지푸라기 대신 융단이 깔리기 시작했다. 방의 간이 목욕통이 아닌 성 내부에 목욕탕이 설치되었으며, 개인실, 화장실, 접견실, 귀빈실, 대기실 등 여러 기능을 가진 방들과 주탑 이외의 탑들도 생겨났다.
이미지 출처 : (우) https://en.wikipedia.org/wiki/Ch%C3%A2teau_de_Vincennes
Keep of the castle of Vincennes - Vincennes, France, by elbymay, CC BY-SA 3.0
14세기에 지어진 뱅센 성(Château de Vincennes).
우측이 뱅센 성의 돈존(donjon)이다.
성의 구조와 형태 역시 다양해졌고, 주거지가 탑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그레이트 홀의 기능은 점점 축소되었지만 아직 사라지진 않았다. 이렇게 중세의 성은 14세기 경에는 나름 사람이 살 만한 주거지가 되었다. 어디까지나 나름이지만.
(1-2) 하지만 여전히 살기 불편한 성
그럼에도 성은 그렇게 살기 좋은 공간은 아니었다. 두껍고 높은 돌탑 안에서 갇혀서 생활하는 꼴이며, 창문은 투사체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서 때로는 손을 내밀지도 못할 정도로 좁고 숫자도 적었다.
아무리 확장하고 예쁘게 꾸며도 두꺼운 석벽을 가진 춥고 어두운 군사 요새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오늘날로 따지면 핵 방공호 같은 벙커 안에서 사는 격이었다. 전기/수도나 현대적 개념의 난방도 없이 말이다.
그럼 왜 당시의 권력자들은 굳이 불편한 성 안에서 살았을까? 이미 주택이나 저택이란 개념은 수백 년 전부터 계속 존재해 왔는데 말이다.

첫 번째 이유는 안전이다. 중세는 사회가 안정되어 가는 말기 이전까지는 내부에서도 굉장히 전쟁과 싸움이 많았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전쟁의 위협과 함께, 그 외에도 근처에 적들과 대를 이은 원수들이 널려 있다는 것이다.
과거 사회는 유럽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지역에서 복수는 개인의 영역이자 의무였다. 법은 복수의 권리를 인정하고, 개인은 복수의 의무가 있었다. 혈육의 복수를 하지 않는 개인은 손가락질 당하는 시대였다.
그러다 보니 중세 시대에는 성 밖에 나갔다가 적과 원수, 혹은 도적들에게 습격 당해서 죽거나 납치 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자연스레 가족들은 외출을 잘 안 하게 되고, 나가더라도 호위와 함께 나갔다.
11세기 이래로 도시를 내려다 보며 역사의 중심이 된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
두 번째 이유는 돈과 권력이다. 13-14세기가 되면 권력자들은 상당한 부를 이룩했다. 그리고 그 부를 이용해서 성을 더욱 크고 화려하게 꾸몄다. 성이란 건 고지대에서 마을이나 도시 전체를 감시할 수 있는 입지에 있었고, 누가 봐도 한눈에 보이는 힘의 상징이었다. 점령지나 반란지에 성을 세워서 권위를 굳히는 경우는 흔했다.
오히려 성에 살지 못하는 영주들은 돈과 권력이 없었기 때문에 성을 갖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지난 연재에서 성을 갖기 위해선 원칙적으로 왕이나 황제의 허가가 있어야 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해 보라. 말하자면 당시 잘 나가는 권력자의 사회적 증명이 성이었던 셈이다.
2. 성(castle)의 쇠락
역사에서 시대를 나눌 때, 보통 로마가 멸망한 서기 476년부터 동로마가 멸망한 서기 1453년까지를 중세 시대라고 분류한다. 이유가 뭘까?
고대의 찬란한 로마가 멸망한 건 분명 중요한 분기점이었지만, '유럽의 역사'란 관점에서 볼 때 동로마 제국은 그렇게까지 조명 받는 지역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동로마 멸망이 중요한 상징이 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대포 때문이었다. 중세라는 시대와 함께 성이 쇠락한 이유들을 살펴보자.
※ 참고로 '중세 시대의 끝'이란 면에서 대포는 비교적 사소한 이유이고, 더 중요한 이유는 이슬람을 막아주던 방벽이 사라지면서 유럽이 이슬람과 직접 맞닿게 되었고, 실크로드가 막히면서 대항해시대가 열렸으며, 동로마의 피난민들로 인해서 그리스 문화 등이 유럽에서 꽃피며 르네상스를 가속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대의 분기점이 된 거죠.
(2-1) 성벽을 부수는 대포
성이 쇠락한 원인이 대포의 등장 하나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어느 서적에서나 매우 큰 이유로 꼽히는 건 대포이다.
대포 자체는 의외로 중세가 끝나기 전에 이미 등장해서 보급됐다. 14세기 초에는 대포가 널리 사용되고 각 시나 성에서 대포를 주문해서 무장한 기록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초기의 대포는 그렇게까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화약 무기와 금속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대포 또한 발전했고, 결국 철옹성을 자랑하던 동로마 수도의 3중 성벽을 함락시킬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게 됐다. 1453년 동로마 함락은 대포가 성벽을 이기는 시대가 된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이미 14세기 말이 되면 대포가 성벽을 본격적으로 무너트리기 시작했고, 15세기에 들어서면 그 전까지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무적의 요새들이 함락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어와 안전을 위해서 굳이 불편한 성에 살 필요성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15세기 오를레앙 포위전에서 볼 수 있는 대포.
아직은 중세다.
(2-2) 왕권과 도시의 발달
9세기 프랑크 왕국 몰락 후 외적의 침입과 함께 형성된 중세 봉건제도는, 12세기 사회가 안정되면서 서서히 내부 권력 구도가 재편되기 시작했고, 14세기 무렵 부와 권력이 모이고 용병의 시대가 도래하며 봉건 귀족은 왕의 군대로서의 기능을 잃어갔다.
한편 국내 사정이 정리된 후, 국가 내부의 영지 간의 다툼보다 국가간의 전쟁이 격렬해졌으며, 이 시기에 처음으로 '애국심'이란 개념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영지와 마을만이 내 고향인 게 아니라, 국가를 지킨다는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도시가 성장하면서 성을 중심으로 했던 각자도생하던 영지의 시대가 저물면서, 대도시와 무역이 떠오르는 새 시대가 열렸다. 더불어서 중앙 권력이 강화되고 지방의 권력이 정리되어 가면서, 영지 간의 내전 역시 거의 사라졌다.
16세기 경의 파리.
이런 배경 때문에 [중세의 가구 : 시녀와 메이드 (2)]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중세가 끝난 후엔 왕을 중심으로 국가 권력이 집중되어 갔고, 귀족의 가구는 축소되고 왕실의 규모는 커졌다. 귀족들은 왕이 기거하는 수도의 근처에 저택을 마련해서 머물기 시작했고, 중세까지 가장 중요했던 자신의 영지와 성은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줄어 갔다.
이런 여러 가지 흐름과 함께, 귀족들은 불편한 성 밖으로 나왔다. 성 옆에 저택이나 궁전을 짓고서 기거하기 시작했고, 재판이나 사무 같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성에 들르게 되었다. 이런 새 시대의 상징이 되는 건물이 바로 베르사이유 궁전이다. 우리가 떠올리는 화려한 궁정 생활은 성이 아니라 이후의 궁전과 대저택의 삶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fr.wikipedia.org/wiki/Ch%C3%A2teau_de_Versailles
Vue aérienne du château en 2013, by ToucanWings, CC BY-SA 3.0
17-18세기에 걸쳐 세워진 베르사이유 궁전(Palace of Versailles).
3. 환상과 낭만이 된 성(castle)
이후로 성은 몇 가지 길을 걷게 되는데, 하나는 군사 요새로서 살아남아서 근대까지 계속 발전을 한 것이다. 이건 내년쯤 '군사 요새로서의 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다시 다루겠다. 하지만 군사 요새로서 살아남았다고 해도, 중세처럼 지배자가 기거하는 개인 주거지로서의 성은 더 이상 아니게 됐다.
다른 하나는 살아남아서 다른 용도, 예컨대 재판정이나 감옥 같은 용도로 전환된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전쟁과 함께 파괴된 후 그대로 폐허가 된 것이었다.
어느쪽이든 주거지로서의 성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시간이 흐르며 16세기 무렵이 되면 유럽인들은 성의 원래 모습에 대해서 잊어갔다. 과거는 현대처럼 문화재와 전통 보존이나 역사와 기록을 중요시하던 시대가 아니었고 말이다.
19세기에 폐허가 된 옛 성터에 재건한 호엔촐레른 성(Hohenzollern Castle).
그러다가 18세기 말부터 낭만주의 시대가 열렸다. 옛 시대를 낭만적으로 다시 바라보던 이 시대에 중세는 꿈과 판타지의 로망이 있던 시대였다.
19세기 초 아직 고증이나 학문적 연구가 미미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은 귀족의 후손이나 부유한 자본가들에 의해서 리모델링되고 재건축되기 시작했다. 고증을 잊어버린 부족한 부분은 상상 속의 기사도와 낭만으로 채워넣었다. 성은 낭만과 기사도와 공포와 유령과 신화와 전설의 무대였다.
우리가 오늘날 떠올리는 로맨틱한 '중세 성'의 이미지는 사실 이 시대에 상당수 만들어진 것이다. 1편에서 보았던 노이슈반슈타인 성처럼 말이다.
주거지로서의 중세 성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는 여기가 끝이다. 다음 편에서는 부록으로, 다루지 못한 이야기와 중세 이후의 홀(hall)과 방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하겠다. 그 다음에는 성(城)과 감옥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성(城) 이후의 거주지 : 저택]으로 이어집니다.◀
이미지 출처 : (우) https://en.wikipedia.org/wiki/Ch%C3%A2teau_de_Vincennes
Keep of the castle of Vincennes - Vincennes, France, by elbymay, CC BY-SA 3.0
14세기에 지어진 뱅센 성(Château de Vincennes).
우측이 뱅센 성의 돈존(donjon)이다. 
11세기 이래로 도시를 내려다 보며 역사의 중심이 된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
15세기 오를레앙 포위전에서 볼 수 있는 대포.
아직은 중세다.
16세기 경의 파리.
이미지 출처 : https://fr.wikipedia.org/wiki/Ch%C3%A2teau_de_Versailles
Vue aérienne du château en 2013, by ToucanWings, CC BY-SA 3.0
17-18세기에 걸쳐 세워진 베르사이유 궁전(Palace of Versailles).
19세기에 폐허가 된 옛 성터에 재건한 호엔촐레른 성(Hohenzollern Cas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