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감옥 (2) : 성(Castle)과 지하감옥과 던전(Dungeon)
2023년 07월 05일 · 오전 12시 00분
지난 연재에서 중세 시대의 감옥 개념과 형벌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이번 연재에서는 실제 성의 감옥과 던전을 보자.
1. 성 안의 감옥 우리는 [거주지로서의 중세 유럽의 성 (2) : 주거 공간과 그레이트 홀]에서 중세의 성이 어떻게 시작했고, 어떻게 내부 구조가 바뀌어 갔는지를 살펴 보았다. 성의 발전사를 보면 상식적으로 초기 성에는 감옥이란 시설이 들어가기 어려웠다. 성은 기본적으로 탑(tower)이었고, 특히나 초기엔 지하 시설이 없었다. 일단 한 번 생각해 보자. 탑 모양의 주거지가 있는데, 죄수를 가둬야 한다. 어디에 가두는 게 제일 좋을까? 중세 귀족들의 선택은 탑의 꼭대기였다.
라푼젤 등 옛날 이야기의 인물들이 탑에 갇혀 있는 것은 유럽의 성과 탑이 죄수를 가두는 데에 이용된 기억일 것이다.
중세의 성은 탑 구조였고, 방과 방들이 직접 연결된 구조였으며, 복도가 없었다. 꼭대기에 수감된 포로는 탈출하기 위해서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례로 여러 층의 방들을 거쳐서 방어 병력과 거주자들을 지나쳐야 했다. 높이 때문에 뛰어내리기 어려울 수도 있고, 낮더라도 애초에 성의 창문이 그 정도로 크지도 않았다. 감옥에 창문이 있었을지와 별개로 말이다. 초기 단순한 성의 구조에서 탑의 최상부를 감옥으로 쓴 것은 굉장히 상식적이고 영리한 선택이었다. 탑은 가장 방어력이 높은 중심 건물이었으며, 동시에 가장 빠져나가기 힘든 시설이었다. 지하 1층에 가둬봐야 한 층만 올라오면 바로 지상과 연결될 뿐이다.
2. 거주탑에서 분리되어 간 감옥 성의 구조가 점점 복잡해지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서, 12세기 무렵부터는 일부 성들은 죄수를 가둬두기 위한 공간을 설계에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세의 모든 성들에 감옥 시설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연재에서 말했듯, 중세의 감옥은 기본적으로 임시 유치장이었고, 모든 성에 반드시 필요한 시설은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성의 감옥은 거주탑의 꼭대기에서 별개의 공간으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면 성에 생긴 거주 탑 이외의 탑들, 즉 성문의 방어 병력이 주둔하는 탑이나, 아니면 성벽에 있는 감시 탑 같은 다른 탑으로 말이다. 성의 지하에도 역시 감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반대로 영주 가족이 더 편한 다른 건물로 이동하고 주탑은 감옥으로 남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 https://ordinaryphilosophy.com/2018/05/31/the-bell-tower-tower-of-london-thomas-more-elizabeth-i-and-other-histories-part-2/ "Upper cell of the Bell Tower, Tower of London, England" by amymcools, CC BY-NC-SA 4.0 타워 오브 런던의 벨 타워에 있는 감옥. 엘리자베스 1세가 공주 시절(1554) 수감되었던 방이다.
이런 감옥 공간은 성에 여러 군데가 존재할 수도 있었는데, 당연히 귀족을 가두는 공간과 재판을 기다리는 범죄자를 가두는 공간은 달랐다. 귀족을 가두는 공간은 평범한 방에 가까웠다. 상당한 넓이에 여러 종류의 가구와 편의 시설로 꾸며져 있고, 식사도 현대 감옥보다 훨씬 훌륭하게 제공되었다. 수감된 귀족이 원하면 산책이나 그 이상도 허용될 수도 있었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128081250@N08/34829929245/ by Marcin Latka, CC BY-SA 2.0 17세기 알폰수 6세가 연금되었던 포르투갈 신트라 궁전의 침실.
중세에는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성 자체가 감옥으로 설계된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12세기 후반에 건축된 일드프랑스 센에마른의 프로뱅에 있는 세자르 탑(Cesar Tower)은 처음부터 감옥으로 설계된 탑이다. 어찌 보면 시대를 앞서 간 시설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장기 수용을 위한 시설은 아니었다.
세자르 탑. 감옥이자 망루였다. 꼭대기의 지붕은 17세기에 개축된 것이다.

3. 지하감옥 : 던전(Dungeon) 오늘날 '던전(dungeon)'은 지하 감옥이란 뜻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깊은 지하에 방치된 어두운 죽음의 공간. 하지만 이 개념은 사실 잘못 알려진 환상이다. 성의 '던전(dungeon)'은 어느 정도 논쟁의 대상이다. 몇몇 성들은 지하의 굴이나 으슥한 공간을 관광객에게 '지하 감옥(dungeon)'을 소개하곤 한다. 하지만 프랑스 고고학회 회장을 역임한 장 메스키(Jean Mesqui)는 그의 저서 『성채 : 전쟁에서 평화까지』(김주경 역, 시공사, 2015)에서 '지하 감옥은 허구'라고 단언한다. 이 부분은 자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던전'이라고 알려진 시설들은 대개는 창고, 저장소, 변소 등이었으며, 나머지 역시 정확히는 알 수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한다. 물론 실제로 여러 성의 지하에 감옥이 생겼지만, 그 감옥이 흔히 알려진 '던전'처럼 온갖 괴담에 둘러싸인 채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공간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나치게 좁은 과장된 던전은 대부분 저장고가 오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 감옥으로 알려진 이런 종류의 구멍은 거의 다 저장고이다.
고문실이 중세의 던전으로 알려지기도 하는데, 중세에는 의외로 고문이 드문 편이었다. 그러다가 중세 말인 13세기 즈음부터 고문이 퍼져 나가는데, 아무렇게나 하는 건 아니고 (원칙적으론) 고문의 승인이 나야지만 고문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세에는 고문이 상당히 심해지다가 17세기가 되어서야 줄어들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마녀사냥의 전성기와 쇠퇴와도 시기가 비슷한 것 같다. 아무튼 중세의 성과 고문실, 그리고 던전은 의외로 큰 연관성은 없는 편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39698489@N00/142079890/ by Ioan Sameli, CC BY-SA 2.0 16세기 프랑수아 보니바르가 갇혔던 스위스의 시옹 성(Chillon Castle)의 감옥.
그럼 왜 중세 성에 '던전'이 있다고 알려졌을까? [거주지로서의 중세 유럽의 성 (3) : 성(城)의 전성기와 쇠락]에서 이야기한 19세기 낭만주의와 관련이 있다. 19세기에 낭만주의와 고딕 열풍이 불면서 중세를 '낭만과 판타지와 잔혹함과 괴기함'으로 포장하고서, 고증과 별개로 상상의 중세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갔다. 이 때 성에 남아 있던 으스스한 공간은 '죽음과 고문으로 점철된 지하 감옥'으로 묘사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한 맺인 유령이 나오기도 참 좋고 말이다. 문제는 유럽인들은 이미 중세의 모습을 거의 완전히 잊은 상태였고, 근대적 학문 역시 아직 제대로 발달을 못해서 연구가 미흡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판타지가 세상을 주도하게 되었고, 이게 비교적 가까운 시기인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swampa/8051540271/ by Steve Collis, CC BY 2.0 관광지로서 자극적으로 꾸며진 뱀버러 성(Bamburgh Castle)의 감옥.
문헌에서 '던전(dungeon)'이란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는 1819년의 소설이라고 한다. 아마도 원래 프랑스 성의 거주탑인 돈존(donjon)에 죄수를 가두던 것을, 시대가 흐르며 디테일을 잊으면서 새로운 단어로 만들어 낸 것 같다. 이후 던전이란 단어가 지금까지 널리 이어지니, 판타지 소설의 용어를 작가들이 공유하면서 설정을 확장하는 것과 참으로 흡사하다. 흥미롭게도 학자들의 주장과 별개로, 관광지로서의 성들은 19세기에 만들어진 '잔혹한 던전'을 지금도 꾸며놓고 관광객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왜냐하면 관광객들이 그걸 더 좋아하고 돈이 되니까!
이런 수준의 감옥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중세가 상당히 인도주의적이었던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비귀족 범죄자가 들어가는 감옥은 상당히 열악했고, 변소도 있었지만 매우 좁고 더러웠다. 또한 중세의 법은 잔혹했기 때문에, 평민이 일단 감옥에 들어갔다면 재판 후 사지 멀쩡하게 풀려나긴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현대처럼 '무죄 추정의 원칙' 같은 게 있던 시대도 아니고 말이다. 단지 그게 19세기에 만들어진 '던전'이란 괴기스러운 개념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중세는 사람을 가둬 두는 것에 그리 관심이 없었다.
▶[중세의 감옥 (3) : 중세 이후의 감옥과 징역(懲役) 제도]으로 이어집니다.◀
주말부터.. 2026-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