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감옥 (3) : 중세 이후의 감옥과 징역(懲役) 제도
2023년 07월 08일 · 오전 12시 00분
1. 중세 이후 : 감옥이 된 성 [거주지로서의 중세 유럽의 성 (3) : 성(城)의 전성기와 쇠락]에서 이야기했듯이, 성은 중세가 끝나면서 장점을 잃고 쇠퇴해 간다. 통치자들은 성 밖으로 나와서 궁전과 저택에 살게 되었다. 남은 성은 관공서가 되기도 했지만, 일부는 감옥이 되기도 했다. 성은 튼튼한 석벽과 강철 문으로 지어졌을 뿐 아니라, 내부의 구조도 복잡하고 벽을 둘러서 외부 침입을 막은 견고한 방어 요새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반대로 안에 누군가를 가둘 경우 빠져나오는 것 역시 매우 힘들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ower_of_London_from_the_Shard_(8515883950).jpg Tower of London from the Shard, by It's No Game, CC BY 2.0 본래는 영국의 왕성이었으나 나중엔 감옥으로 악명을 떨친 타워 오브 런던.
특히 성이 재판소로 기능할 경우, 성에 죄수를 가둔다는 것은 재판정으로 죄수를 데려오기 아주 적절한 환경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부 성들은 감옥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여전히 '전문적인 교도소'가 아닌, 재판이나 형벌을 기다리는 자들을 가두는 구치소의 개념이었다. 혹은 귀족과 정치범을 수용해 두는 고급 연금 시설로서의 감옥이었다. 일반적인 형벌로서의 수감이란 개념은 아직 퍼지지 않았다.
2. 사형 반대와 감옥 개념의 변화 15세기 중반 성의 시대와 함께 중세가 저물었다. 그리고 근세와 르네상스와 절대왕정의 시대로 넘어가며 200년의 시간이 흘렀다. 17세기 프랜시스 베이컨 등 과학이 싹트던 시대, 근대적 학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시대, 그리고 시민 혁명의 시대가 됐다. 이 시대가 되어 대중들은 공개 처형과 형벌, 너무 잦은 사형에 거부감을 보이게 됐고, 기존 처벌 방식들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다. 학자들도 사회 문제나 범죄율 등에 대해서 더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어떤 식의 처벌을 해야 사회가 더 효과적으로 기능할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근대적 감옥'의 개념이 가장 먼저 탄생한 것은 미국이었다. 우선은 그 직전의 시대적 배경을 보자. 유럽에서 정확히 언제부터 범죄자를 '장기적으로 가두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대략 18세기를 전후로 해서 점진적으로 '감옥(prison)'의 개념이 생겨났다고 본다.
악명 높은 바스티유 감옥 역시, 원래는 방어 요새로서 세워진 성이었다.
15-17세기 대항해시대에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한 유럽 국가들은, 17세기부터 '형벌 식민지(Penal colony)'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범죄자 전용 식민지 구역을 만들어서, 본토 사회에서 범죄자를 영구히 추방하겠다는 개념이다. 18세기에 영국을 떠난 인구의 4분의 1이 유배를 간 범죄자일 정도였다. 간혹 호주를 '범죄자가 조상인 국가'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18세기 당시 감옥에 있는 사람의 숫자는 굉장히 많았는데, 산업혁명으로 도시에 인구가 몰리고 폭발적인 인구성장이 이루어지던 시대였다. 자연스럽게 범죄율도 엄청나게 올라갔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 성들이 거대한 감옥으로 개조되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랭커스터 성(Lancaster Castle)이 있다.
랭커스터 성은 이후에도 교도소로 계속 증/개축되다가 감옥으로서의 기능을 공식적으로 마친 것은 무려 2011년이 되어서이다.
감옥에는 범죄자뿐만 아니라 빚을 지고 갚지 못한 채무자들까지 전부 수감되었다. 시설 하나에 경범죄자부터 중범죄자까지 남녀노소를 모두 함께 수용시켰기에, 감옥이 곧 계층이 나뉜 지옥의 모습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18세기 말, 미국이 독립을 하면서 범죄자 추방에 애로사항이 생긴 영국의 감옥은 그야말로 사람이 미어터지게 된다.
3. 감옥의 과도기와 감옥 개혁 여기서 영국에서 근대적 감옥이 시작된 것은 19세기부터라는 것에 주목하자. 18세기 당시 영국의 감옥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감옥이었고, 재판 이전의 임시 감옥에 더 가까웠으며, 죄수들을 가두고 거의 방치하던 곳이었다. 국가에서 제대로 관리도 하지 않았고, 민간 운영 사업 시설로 두었으며, 뇌물과 부패가 판치는 매우 끔찍한 환경이었다. 감옥에는 위생 시설 자체가 없었고, 남녀노소와 병자가 모두 함께 수용되었기 때문에, 힘든 감옥 생활은 기본이고 전염병의 온상이 되었다. 이 때 생긴 발진티푸스의 다른 이름이 '감옥 열병(Jail Fever)'으로, 당시 여전히 많았던 사형으로 죽는 사람보다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감옥의 병이 도시로 번져 나가서 고위 정치인이 죽을 정도였다.
영국 베드퍼드에 있는 존 하워드의 동상. 최초의 감옥 개혁가이다.
이런 상황의 18세기 말, 영국 베드페드셔 주장관이었던 존 하워드는 7년 전쟁 때 프랑스군의 포로가 되었던 경험에서 수백 개의 감옥을 직접 방문하고 그 문제를 분석했다. 그리고 1777년 『The State of the Prisons』을 출판해서 감옥의 끔찍한 위생과 생활상을 대중에게 알렸다. 그 결과 1779년엔 교도소법(Penitentiary Act)이 통과되며 남녀의 수감 분리와 위생 시설 개선을 명시했고, 감옥 개혁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 네덜란드의 경우, 16세기에 남녀 수감을 분리시키긴 했지만 단기 구류 목적이었다.) 하지만 법이 도입되어도 현실은 바로 바뀌지 못했고, 영국 최초의 근대적 교도소가 등장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른 1816년이다. 참고로 세계 최초이자 미국 최초의 근대 교도소는 1785년이었다.
4. 현대적 감옥과 징역 제도 19세기 초가 되어 드디어 '사람을 감옥에 장기간 가두는 제도'가 세상에 퍼져 나갔다. 교도소가 생기고 보급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중세 판타지 소설에서 징역이 나오는 건 굉장히 현대적인 오류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징역형(懲役刑)'은 단순히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형벌이 아니란 것이다. 징역(懲役)이란 글자를 보면 징(懲)은 '벌을 내린다'는 뜻이고 역(役)은 '일을 시킨다'는 뜻이다. 노역(勞役), 군역(軍役), 병역(兵役) 같은 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역(役)이라는 건 부과된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식 감옥 제도는 초기부터 상당한 강도의 노역을 시키면서 죄수를 교화하고자 했다. 이렇게 노역을 시키는 역사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18세기 갤리선 노역형이나, 조금 더 이른 영국의 구빈원 노역과 연관이 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현대에는 교화와 사회 훈련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논란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변해가지 않을까 싶다.
뱃밥을 만드는 죄수들. 19세기 Coldbath Fields 교도소.
현대 한국의 법에서 사람을 가두는 형벌은 금고(禁錮)형과 징역(懲役)형으로 나뉘는데, 이쯤 되면 다들 유추하시겠지만 사람을 단순히 가두는 벌은 금고형이다. 징역형은 가두고서 노동을 시키는 벌이다. 이 둘을 구분한 것은 죄의 경중을 나누기 위해서인 것 같다. 서양은 이 구분이 한국이나 일본과는 약간 다른 것 같다. 일본쪽 자료를 보면 '일본의 법은 서양과 달리 징역형과 금고형을 구분한다'라고 나와 있다. 서양의 경우 근대 교도소가 도입된 시점에서 '노동을 통한 교화'를 표방했고, 감옥에 가두는 형벌은 기본적으로 징역의 의미를 포함한 것 같다. 이걸 제대로 보려면 여러 국가의 법에 대해 더 자세히 공부해야 하는데, 이 글에서는 그냥 한국법을 기준으로 징역형과 금고형이 다르다는 것까지만 다루겠다. 참고로 '교도소(矯導所)'란 단어는 '바로 잡고(矯) 이끄는(導) 장소(所)'라는 뜻이다. 현대 감옥(prison)과 징역형의 목적을 한국에선 저렇게 해석하고 번역한 것 같다. 일본에서는 형무소(刑務所)라고 한다.
5. 마치며... 성(castle)에서 시작해서 감옥으로, 그리고 징역까지 이야기했다. 뒷부분은 성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지만, 의외로 저 부분이 소설에서 잘못 쓰이는 걸 자주 봤기 때문에 그냥 마지막까지 이야기했다. 중세에는 범죄자를 가두는 형벌이 기본적으론 없었고, 성의 감옥은 던전이 아니었으며, 전통적으로는 탑 위에 구금했다. 사회는 계속 변화한다. 아무리 지금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도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을 할 때가 많으며, 아마 미래에는 지금과 또 매우 다를 것이다. 그 변화에는 항상 원인과 결과가 있으며, 사회의 모든 요소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이 모든 걸 감안해야 창작물 안에서도 생생한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방식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잔혹했고, 현대식으로 사람을 가두는 형벌은 이제 불과 2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한반도에 처음 징역형이 들어선 건 1905년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조선 시대의 장기 수감 교도소 같은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의외로 높은 강도의 강제 노역형은 과거 사회에는 거의 없었다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북한에서 아오지 탄광에 보내서 시키는 그런 것 말이다. 형벌로서의 강제 중노동은 근대 쯤 와서 생긴 개념이고, 그 이전 시대에는 의외로 없는 것 같은데 필자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아는 건 아니니 여기까지만 하겠다. 이제 '중세 성(castle)의 생활'이란 연재는 1차적으로는 끝났다.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은 틈틈이 이야기하거나, 내년의 중세의 전쟁 이야기 이후에 다룰 것 같다. 다음 연재는 몇 주 쉰 후에 '중세 유럽의 이름과 성씨'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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