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이름(1) : 동양의 이름과 주술적 신앙
2024년 12월 11일 · 오후 8시 00분
0. 들어가며... 동양편 연재의 메인은 카테고리의 주제인 '무협', 다시 말해 '중국'편이다. 하지만 또 다른 메인은 한국인의 성씨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한국인이니까. 한국인의 성명(姓名)은 삼국 시대와 고려 초기를 거치며 중국의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금의 중국편은 한국편의 선행 지식에 해당한다. 현대 한국 사회는 서구화 되어, 모두 청바지와 양복(suit)을 입고 서양의 전통 문화와 생활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런 변화가 우리의 가혹한 근현대사와 겹치면서, 옛 이름에 대한 많은 것을 잊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그 벽을 넘어서 동양의 옛 작명 문화를 알아 보면, 우리가 어렴풋이 알던 지식의 조각들이 이어지며 재미있는 문화가 펼쳐진다. 이름에 영혼과 존재에 얽힌 주술적 의미가 있다고 보고서, 본명을 사용하길 기피했던 재미있는 문화 말이다.
1. 중국인과 이름(名) 이름은 동물에겐 없는 인간의 발명품으로, 아마도 언어의 기원과 함께 누군가를 어떤 방식으로든 불렀을 것이다. 이름 '명(名)'자는 회의문자로, 허신(許愼, 30-124)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저녁(夕) 때 어두워서 눈으로 보기 어려우니 입(口)으로 부르는 풍습이 이름(名)이 되었다"고 名자의 기원을 설명한다.
갑골문의 이름 명(名)자. 회의(會意)란 둘 이상의 뜻(意)을 모아서(會) 만들었단 뜻이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의 시작을 도(道)의 '이름(名)'에 대한 이야기로 여는데, 이름을 통한 존재의 인식과 개념화, 그리고 구분은 아마도 인간의 문화가 가진 보편적인 성향일 것 같다. (사실 현대의 논문도 용어를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을 연다.) 오늘날까지도 중국에는 이런 말이 전해진다.
"자식에게 천금을 주는 것은 하나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 못하고, 赐子千金,不如教子一艺 자식에게 하나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이름을 지어주는 것만 못하다." 教子一艺,不如赐子一名。
중국인은 전통적으로 이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고, 그 안에는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소망과 함께 주술적 신앙이 깃들어 있었다. 좋은 이름을 갖고 싶다는 것, 혹은 좋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는 것은 인간 혹은 부모가 갖는 본능일 것 같다. 유럽에서 성인(聖人)이나 천사의 가호를 받기 위해 아이의 이름을 지었던 것처럼,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는 이름에 관한 주술적인 믿음이 있다. 심지어 2024년의 바로 오늘에도 사주팔자를 따져 작명을 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2. 이름에 깃든 신앙 동양에는 전통적으로, 말에 영혼이 깃들어 길흉화복과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언령(言靈)신앙과, 무생물에조차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정령신앙(animism)이 존재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이름'에 역시 힘이 깃들어서 소유주의 운명에 영향을 주며, '이름'이 알려지고 불리는 것으로 그 이름을 소유한 사람이나 사후 세계의 영혼에게까지도 길흉화복이 미칠 것이라고 보았다. 구체적으로는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면, 저승에 있는 영혼이 이승의 부름에 반응하여 서로가 상호작용을 한다고 믿었으니, 이것이 오늘날 만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진명(眞名, true name)의 개념이다. 이름이 존재의 본질을 대변하고 항구적인 연결을 갖고서 작용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름이 없으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으며, 이름을 저주함은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이고,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면 죽은 영혼이 불려온다고 믿었다.
점궤를 기록한 상나라의 갑골문.
고대의 인류는 매우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삶을 살았다. 갑골문은 뼈로 점을 친 흔적인데, 상(商, BC1600-BC1046)나라 때부터 상제(上帝)와 조상신들에게 점을 쳐서 길흉을 묻고 점궤를 따르는 것이 상식이었으니, 심지어 전쟁을 해서 승리하는 것조차도 점을 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여겼던 것 같다. 상나라는 왕이 곧 최고 주술사로서 직접 점을 치며 종교를 통해 나라와 개개인의 생사운명을 좌지우지했는데, 인간을 신과 귀신에게 바치는 인신공양과 종교에 치우친 면모가 지나쳐 큰 폐해를 낳았다. 훗날 춘추시대의 공자(BC551-BC479)는 상나라를 두고서 "신을 섬기면서 귀신을 우선시 하니, 백성의 폐해는 동요하여 안정되지 못하고 염치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세 번째 국가인 주(周, BC1046-BC256)나라는 상나라를 정벌하면서 '나쁜 전통과 믿음'을 중원에서 지우고 '예(禮)'와 '덕(德)'으로 통치하려 했는데, 이때부터 신과 귀신을 '숭배는 하지만 멀리 경원시'하는 문화로 바뀐다.
"귀신을 경외하되 멀리하라." 敬鬼神而遠之。
《논어(論語)》
이름 역시 여기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안에 담긴 주술성은 그대로 남은 채 이름을 회피하는 금기(禁忌)가 주나라 즈음 생겼으니, 훗날 동양의 작명법에 널리 퍼진 '피휘(避諱)'라는 개념이다.
3. 피휘(避諱) : 이름을 꺼리다 피휘(避諱)는 '피한다(避)'와 '꺼린다(諱)'라는 뜻이 합쳐진 단어다. 꺼리고 피한다. 무엇을? '이름'을 꺼리고 피한다. 주나라 사람들은 죽은 사람(특히 조상)의 이름을 부르면, 저승의 영혼이 이승의 부름에 반응하여 서로가 좋지 않게 된다 여겼다. 이에 따라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기를 꺼리게(諱)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휘(諱)'라는 한자는 곧 '죽은 사람의 이름'이라는 뜻이 되었다.
주공 단(周公 旦). 《주례(周禮)》와 《의례(儀禮)》를 저술했으며, 예악(禮樂)의 기초를 만들고, 《주역(周易)》을 해설하여 완성했다. 주공(周公)은 주나라 공작이란 뜻으로 그의 별명이기도 하다. 성(姓)은 희(姬) 씨(氏)는 주(周) 본명(名)은 단(旦)이다.
피휘(避諱)는 본래는 죽은 자의 이름을 피하는 관습이었지만, 기원전 2세기 춘추전국시대가 끝나고는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까지도 피하도록 변화한다. 주로 황제나 왕후장상이나, 조상이나 어른들의 이름 등에 대해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금기가 됐다. 중국에선 본명 외에도 별명이나 칭호들을 갖는 문화가 일찍이 자리 잡았는데, 주나라 땐 다 큰 성인(成人)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예의가 아니라 여겼다. 이런 요소들이 '피휘'라는 금기와 함께 하며 산 사람의 이름까지도 피하게 된 것 같다. 결국 죽은 자와 산 자의 이름을 모두 '휘(諱)'라고 부르게 되니, '휘(諱)'는 곧 '본명(本名/實名)'이란 뜻이며, 피휘(避諱)란 '본명을 피한다'라는 뜻이 됐다. 오늘날 한국에서 부모님의 이름 '김철수'를 말할 때, "김, 철 자, 수 자, 를 쓰십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본명을 직접 말하지 않는 피휘 예절의 연장선이라고 한다.
주나라는 종법(宗法)을 토대로 운영되었다. 왕가의 혈통을 중심으로 분봉을 하고 국가를 운영했으며, 신과 조상을 귀하게 여겨 모시되 멀리하는 방침을 세웠다.

4. 피휘의 보급과 예절 피휘는 근대까지의 동양 작명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예기》와 《춘추좌씨전》에서는 '육피(六避)'라고 하여 작명 시 피해야 할 여섯 요소를 언급했는데, 아마도 앞서 말한 이름과 존재의 본질이 연결되어 있다는 주술적 믿음 때문인 걸로 보인다.
"작명을 할 때는 해와 달, 산과 강의 이름, 관직의 이름, 병(隱疾)의 이름, 짐승의 이름, 기물이나 폐백(器幣)의 이름을 쓰지 않는다."
춘추전국시대에 이 피휘법을 어기고 관직과 강산의 이름을 이름에 쓴 사례가 있었으니, 그 결과 진(晉)과 송(宋)에선 사도(司徒)와 사공(司空)의 관직을 폐했으며, 심지어 산의 이름을 둘이나 바꿨다고 한다. 이후 진나라 진시황도 개명한 적이 있고, 심지어 신라 33대 성덕왕(?-737)은 당나라 현종과 이름이 겹쳤기에 개명을 했다. 후대로 가면서 피휘는 예절과 더 강하게 묶이며 더욱 엄격해지고 규칙도 바뀌어 갔다. 황실에서는 '용(龍), 천(天), 군(君), 왕(王), 제(帝), 성(聖), 황(皇)' 등의 글자를 백성들이 쓰지 못하게 제한하기도 했는데, 반면 역대 황제나 왕들은 백성의 불편을 덜기 위해 자주 쓰는 한자를 이름으로 쓰는 것을 피하기도 했다. 이것은 한반도도 마찬가지의 경향성을 갖는다.
중국 상고시대의 역사는 당대의 기록이 거의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춘추》, 《사기》, 《예기》 등 춘추전국시대 이후의 문헌들과 고고학 등을 기반으로 한 추측이 많이 들어가 있다.
이렇듯 서양에서는 조상의 이름을 자손이 물려받는 게 흔했던 것과 반대로, 동양에서는 조상 이름의 글자를 작명에 쓰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개인적으로 오래 전에 "중국인도 부모나 조상의 이름을 물려받는가?"란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제대로 답변을 해 주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상에서 이름을 적고 부를 때도, 피휘를 어기는 것은 지극한 무례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이름을 직접 부를 수 있는 이는 제왕이나 군주, 혹은 부모처럼 매우 가까운 윗사람에 한정되었다. 그리고 이조차도 피하는 편이라, 다 큰 성인을 부를 때는 군주도 신하의 본명을 피했다는 것 같다. 하지만 왕이 화가 나서 죄를 물을 때는 본명을 거침없이 불렀다고 하니 재미있다. 그런데 사람을 부를 때 '진짜 이름'을 쓰지 못했다면, 자연스럽게 '가짜 이름'이 있어야 한다. 이런 필요성에 따라 동양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것이 바로 '자(字)'와 '호(號)' 같은 또 다른 이름들이다.
▶[중국인의 이름(2) : 어른이 쓰는 격식이 있는 - 자(字)]로 이어집니다.◀
* 압축해서 한 편을 길게 쓰는 것보단 소주제별로 끊어서 여러 편을 올릴까 생각 중입니다.
이름과 성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