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파심에 이야기합니다만, 이 연재에선 천명장수(賤名長壽) 사상을 언급합니다. 천명장수는 여러 논문이나 백과사전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그리고 중국과 일본 자료에서도 언급되는 개념입니다. 드물게 이 개념을 부정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곳에서는 관련된 반론을 듣지 않겠습니다. 반론이 있으시면 각 백과사전과 논문쪽에 의견을 보내어 내용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정설이 바뀔 경우 이 게시글에도 반영됩니다. 분쟁의 소지가 있는 글은 경고 없이 삭제합니다.
1. 전근대의 높은 유아 사망률 우리는 종종 전근대 사회의 평균 수명이 매우 낮았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사실 그건 과거의 사람들이 평균 30대에 죽었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일 때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전체의 '평균' 수명이 파격적으로 깎여나간 것이다. 전근대까지는 대략 5살이 되기 전에 둘 중 하나 이상이 죽었다고 보면 되며, 그 이후에도 성인이 되기 전에 죽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출산 자체가 산모와 아이 모두에게 매우 위험했고, 출산을 한 직후의 아이의 생존률 역시 너무 낮았기 때문에, 많은 고대 중국 문헌에서 '아이가 태어나서 3개월이 된 시기'를 언급한다.
※ 과거 장례 때 곡(哭)하며 우는 것을 말한다.
아이가 태어나 3개월 째의 의례가 《예기(禮記)》 등 다른 문헌들에서도 언급되니, 생후 3개월에 비로소 이름(本名)을 받는다. 그 전의 아이는 이름도 없이 사회적으로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높은 유아 사망률 때문에 아이에게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한 게 아닐까.
과거 생후 3개월까지 부모가 얼마나 노심초사 했을지 안타까울 뿐이다. 현대 한국에도 그 흔적이 '백일 잔치'란 형태로 남아 있다.
* 이미지 출처 : https://ja.wikipedia.org/wiki/%E7%99%BE%E6%97%A5%E7%A5%9D%E3%81%84
お食い初めの例, by katorisi, CC BY 3.0
생후 100일에 축하를 하는 것은 한중일 동양 3국에서 모두 내려오는 전통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서 존재하는데 아무런 호칭 없이는 부를 수가 없는 법이다. 그래서 진짜 이름인 본명(本名)을 지어주기 전에 임시로 지은 이름이 있으니, 바로 아명(兒名), 혹은 유명(乳名)이라고 불리는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선 '아이'라는 뜻의 '아(兒)'자를 쓰지만, 중국에선 보통 모유 수유 기간 동안 불렀다고 '젖 유(乳)'자를 써서 '유명(乳名)'이라고 한다. 본명 이전의 '작은 이름'이란 뜻에서 '소명(小名)'이라고도 말하고, '어릴 유(幼)'자를 써서 '유명(幼名)'이라고도 한다. 본 연재에선 우리에게 익숙한 '아명(兒名)'이란 단어를 쓰겠다.
2. 아명(兒名)을 짓던 방법들 아명(兒名)은 태어난 직후에 붙이고 본명이 지어지기 전까지 사용하던 이름이다. 실제로는 본명이 생겨도 가족 내부에서 성인 이전까지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으며, 간혹 아주 친밀한 관계에선 성인이 된 이후에도 별명처럼 부른 것 같다. 일반 서민들의 경우엔 많은 이들이 본명을 따로 짓지 않고 아명만 지어 평생 사용하기도 했다. 사극의 농촌 사람들 이름이 구수한 이유 중 하나다. (아마도 이건 서민들은 이름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만 지었는데, 그 방식이나 시기가 아명과 같았기 때문에 학자들이 이렇게 분류하는 것 같다.) 기록에서 아명이 처음 나타난 것은 진나라와 한나라 때라고 한다. 보통 가족과 친지들 사이에서만 사용되었다는데, 엄격하게 지켜진 것은 아마도 귀한 집에 한정된 이야기일 것 같다. (2-1) 천하게 지었던 아명 [중국인의 이름(1) : 동양의 이름과 주술적 신앙]에서 본 것처럼, 과거엔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으며, 이름을 불리는 것이 길흉화복과 연관된다고 생각했다. 아명과 관련되어 가장 흔하게 언급되는 것이 '천한 이름을 지으면 장수한다'는 천명장수(賤名長壽) 사상이다. 태어난 아이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면 귀신, 특히 역신(疫神)이 시샘해서 해를 입거나 죽게 된다는 동아시아에 널리 퍼진 믿음이었다. 이 때문에 아이일 때는 아명을 쓰고, 성인이 되면 예절 개념과 결합하여 자(字)와 호(號)를 사용하여, 본명이 언급되는 것을 피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사극을 보면 '개똥이', '도야지' 같은 이름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서민과 농민들은 저게 평생의 이름으로 남는 것이고, 양반 등은 후에 본명을 다시 지었던 것이다.
개똥이는 실제로 고종의 아명이었고,
도야지는 황희의 아명이었다.
중국에선 '천한 이름이 부귀를 부른다(贱名催富贵)'고 하여, 아이의 이름을 천하거나 아예 인간이 아닌 것으로 지었다. 귀신은 아이의 이름을 듣고서 더럽다고, 혹은 인간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지나칠 것이고, 그렇게 살아남은 아이가 장성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실제 예를 보면 '아돈(阿豬, 돼지)', '아구(阿狗, 개)', '소걸개(小乞丐, 작은 거지)' 같은 식이다. 좀 센 것(...)들로는 변두리 농촌 등을 중심으로 우뇨(牛尿, 소 오줌), 여분(驪糞, 말 똥), 구잉(狗剩, 개가 남긴 음식) 등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이런 이름들이 단순히 천한 의미만을 가진 건 아니었다고도 말한다. 개, 돼지 등은 과거엔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동물이었고, 키우는 과정에서 손이 많이 안 가며, 그럼에도 알아서 튼튼하게 잘 자란다는 특성이 있었다.
'철단(铁蛋)' 같은 이름들은 아마도 인간이 아닌 물체이면서도 튼튼하다는 특성을 가졌기에 선택되었을 것이다. '큰 소'를 의미하는 '대우(大牛)' 같은 이름도 농촌에서 선호되었다고 하는데, 소는 튼튼하고 힘이 세며 큰 재산이고 쓸모가 많았다.
(2-2) 좋은 의미의 아명
반면에, 천하지 않고 좋은 의미의 아명들도 있었다. 천한 아명은 주로 서민이 선호했고, 좋은 아명은 귀족층이 선호했는데, 추측해 보건데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을 때 위생이나 영양면에서 생존이 압도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상류층과 하류층의 유아 사망률에는 눈에 띄는 격차가 있었을 것이다.
중국 지배층은 길자소명(吉字小名), 즉 길하고 좋은 이름을 아명(兒名)으로 즐겨지었다. 예컨대 삼국지 조조의 아명은 '길리(吉利)'인데, 글자만 봐도 길(吉)하다.
조조(曹操, 155-220).
자(字)는 맹덕(孟德),
아명(兒名)은 길리(吉利),
소자(小字)는 아만(阿瞞).
그런데 흥미롭게도 조조는 '속이다(瞞)'라는 의미를 가진 '아만(阿瞞)'이란 소자(小字, 어릴 때 짓는 자)를 추가로 받는다. 속인다는 뜻이니 나쁜 뜻이다. 속설이 있긴 하지만, 추측컨대 상류층이라 해도 널리 퍼진 믿음을 무시하긴 어려웠던 게 아닐까?
참고로 어릴 때 짓는 소자(小字)는 모든 사람이 갖는 자(字)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경우 없거나 아마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2-3) 그 외의 방법들
아이가 태어난 순서를 이름에 반영하는 것도 흔했다. 예를 들어 한국 무협에도 자주 나오는 '아삼(阿三)'이나 '아사(阿四)' 같은 이름은 순서를 나타내는 것으로, '세 번째/네 번째 아이' 정도의 의미다. 이 방식 역시 (의외로) 동아시아에 널리 퍼져있다.
조선에선 '삼월이', '시월이'처럼 태어난 달을 아명으로 짓는 경우도 많았다. 주로 여성명이 그랬는데, 이 방식의 응용 역시 (아마) 타국에도 존재했던 것 같다.
부처나 도교 신선의 이름에서 기원한 이름을 짓기도 했다. 명나라의 정치인 왕수인(王守仁, 1472-1529)의 아명(兒名)은 '운(雲, 구름)'이었는데, 가족의 꿈에 운중송자(雲中送子, 송자낭랑送子娘娘은 아이를 점지해주는 신선이다)가 나왔기 때문이다. 종교가 아니라도 꿈에서 영감을 받아 아명을 짓는 경우가 제법 많다.
3. 여성의 본명과 아명 역사에는 여성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건 과거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도 있지만, 실제로 여성에게 이름이 없었기 때문도 있다. 세부적인 사항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예컨대 이전 연재에서 본 '자(字)'의 경우, 중국은 여성도 계례 때 자(字)를 받았는데, 조선의 경우 남성만 자를 받았던 것 같다. 애당초 자(字)를 사용하는 계층이 상류층에 한정되긴 했지만 말이다.
손상향(孫尙香)으로 알려진 손씨 부인.
'손상향'은 후대의 경극에서 창작된 이름이다.
그녀는 손견의 딸이었고 유비의 부인이었지만
실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본명도 마찬가지여서, 여성은 본명을 받지 못하고 아명으로만 계속 불리는 경우도 많았다. 고대 중국에서 여성에겐 개인명이 보통 없었고, 대녀(大女), 이녀(二女), 삼녀(三女) 등의 아명으로 많이 불렸다. 이런 경우 '성(姓) + 아명(兒名)'이 이름처럼 된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는 "여성은 혼인하면 타인에게 불리는 것을 꺼려서 가졌던 아명도 버리고 이름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말한다.
물론 여성도 이름을 잘 지어놓고 공개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었다. 경우에 따라 자(字)와 호(號) 역시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 진출이 제한되고 남존여비 등의 문제로 기록 또한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아명만 지었던 것도 일정 부분 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양귀비는 현종의 귀비(貴妃)였기 때문에 '양 귀비'이며,
본명은 전해지지 않고 소자(小字)만이 '옥환(玉環)'이라 전해진다.
생각해 보면 유럽 연재에서 고대 로마의 여성명도 형식적으로 짧게 짓는다고 이야기했었다. 일찍부터 성씨가 발달하고 이름이 여러 종류가 있는 사회에서 저런 성향이 두드러지는 것일까. 중세 유럽은 어차피 이름 하나 밖에 없었으니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말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삼국지에 등장하는 알려진 여성 이름들은 대부분 일본 코에이에서 게임을 만들면서 어떻게든 이름 비슷한 것을 찾아서 퍼트린 것이 많다. 당대의 실제 이름들이 아니다.
4. 훈명(訓名)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사용한 이름인 '훈명(訓名)'까지 이야기하고 마무리 짓겠다. 과거에 세가나 문벌(門閥) 자제들은 학교에 들어갈 때 '훈명(訓名)'이란 이름을 받곤 했다. '훈(訓)'은 '가르친다'는 뜻으로, '학명(學名)'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나 집안 어른들, 스승, 혹은 명사 등이 지어주었으며, 원나라 때의 《송사(宋史)》에서 훈명이 언급된다. 훈명은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교육을 받을 때 사용되었으며, 스승이 제자를 부를 때도 훈명으로 불렀다. 훈명이 없는 경우는 아마 본명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일 때는 아직 존중 받을 자격이 없으니 본명을 불러도 사회적인 문제는 없었다. 조선의 경우에도 학교에선 본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 이미지 출처 : https://zh.wikipedia.org/wiki/%E7%A7%81%E5%A1%BE
金沙鎮山后聚落中的海珠堂學堂, by 寺人孟子, CC BY-SA 4.0
5. 마치며... 사실 아명 등 과거의 풍속은 고서의 기록에 의존하는데, 출처에 따라 내용이 다른 경우 등도 있어서 당대의 실상을 정말 정확히 아는 건 아니다.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양한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가 자라면서 치렀던 여러 단계의 의례가 여러 고서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아이의 성장에 따라 '유명(乳名)→초명(初名)→소명(小名)' 등으로도 불렀다고 하고, 어린 시절 '소자(小字)' 등을 지어 사용했다고도 하는데 필자도 아주 자세히는 모른다. 늘 생각하지만, 동양에 사는데도 동양 풍속의 디테일을 볼 신뢰도 높은 자료가 거의 없다는 건 참 아쉽다. 학자가 아닌 일반인 수준에서 말이다. 오히려 서양사가 더 쉽다. 아명(兒名)이나 소자(小字)는 성인이 되면 사용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으며, 기본적으로 성인이 된 사람을 아명으로 부르는 건 매우 무례한 행위었다. 군주의 아명을 입에 담았다가 처형 당한 사례도 역사 속에 존재한다. 극히 드물게 아명을 성인이 되어 이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의 이름 '백(白)'은 아명인데, 어머니가 꿈에서 빛나는 별을 보고 지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자(字)인 '태백(太白)'으로 아명의 글자가 이어졌고, '이태백'이란 호칭은 평생 동안 애용되고 역사에 남았다. 아명은 흥미롭게도 21세기 한국의 '태명(胎名)'과 제법 닮아 있다. 태명은 약 20년 전 쯤 한국에서 새로 생겨난 신생 문화인데, 기원은 아명과 매우 다르지만 은근히 비슷한 구석도 많다. 본명이 있기 전의 임시 이름이라거나, 사람이 연상되는 이름으로 잘 안 짓는다거나, 아이를 위해서 짓는다거나 하는 부분들이 말이다. (또한 '천한 이름'과 반대된단 것에서도 더욱 흥미롭다.) 자(字), 호(號), 아명(兒名), 훈명(訓名)... 거기에 직위나 작위, 시호 등등까지 있었으니, 과거 동양 사람들은 본명을 쓰지 않는 것에 정말 진심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선 이 습관을 '실명경피속(實名敬避俗)'이라고 부른다. 실명을 귀하게 여겨서 오히려 피하는 습속이란 뜻이다. 다음 연재에서는 처음에 잠시 다루고 미뤄두고 있었던 '본명'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아마도 '중국인의 이름' 연재는 총 7편이 될 것 같다.▶[중국인의 이름 (5) : 본명(本名)]으로 이어집니다.◀
1. 전근대의 높은 유아 사망률 우리는 종종 전근대 사회의 평균 수명이 매우 낮았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사실 그건 과거의 사람들이 평균 30대에 죽었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일 때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전체의 '평균' 수명이 파격적으로 깎여나간 것이다. 전근대까지는 대략 5살이 되기 전에 둘 중 하나 이상이 죽었다고 보면 되며, 그 이후에도 성인이 되기 전에 죽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출산 자체가 산모와 아이 모두에게 매우 위험했고, 출산을 한 직후의 아이의 생존률 역시 너무 낮았기 때문에, 많은 고대 중국 문헌에서 '아이가 태어나서 3개월이 된 시기'를 언급한다.
《의례(儀禮)》 |
* 이미지 출처 : https://ja.wikipedia.org/wiki/%E7%99%BE%E6%97%A5%E7%A5%9D%E3%81%84
お食い初めの例, by katorisi, CC BY 3.0
생후 100일에 축하를 하는 것은 한중일 동양 3국에서 모두 내려오는 전통이다.2. 아명(兒名)을 짓던 방법들 아명(兒名)은 태어난 직후에 붙이고 본명이 지어지기 전까지 사용하던 이름이다. 실제로는 본명이 생겨도 가족 내부에서 성인 이전까지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으며, 간혹 아주 친밀한 관계에선 성인이 된 이후에도 별명처럼 부른 것 같다. 일반 서민들의 경우엔 많은 이들이 본명을 따로 짓지 않고 아명만 지어 평생 사용하기도 했다. 사극의 농촌 사람들 이름이 구수한 이유 중 하나다. (아마도 이건 서민들은 이름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만 지었는데, 그 방식이나 시기가 아명과 같았기 때문에 학자들이 이렇게 분류하는 것 같다.) 기록에서 아명이 처음 나타난 것은 진나라와 한나라 때라고 한다. 보통 가족과 친지들 사이에서만 사용되었다는데, 엄격하게 지켜진 것은 아마도 귀한 집에 한정된 이야기일 것 같다. (2-1) 천하게 지었던 아명 [중국인의 이름(1) : 동양의 이름과 주술적 신앙]에서 본 것처럼, 과거엔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으며, 이름을 불리는 것이 길흉화복과 연관된다고 생각했다. 아명과 관련되어 가장 흔하게 언급되는 것이 '천한 이름을 지으면 장수한다'는 천명장수(賤名長壽) 사상이다. 태어난 아이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면 귀신, 특히 역신(疫神)이 시샘해서 해를 입거나 죽게 된다는 동아시아에 널리 퍼진 믿음이었다. 이 때문에 아이일 때는 아명을 쓰고, 성인이 되면 예절 개념과 결합하여 자(字)와 호(號)를 사용하여, 본명이 언급되는 것을 피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사극을 보면 '개똥이', '도야지' 같은 이름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서민과 농민들은 저게 평생의 이름으로 남는 것이고, 양반 등은 후에 본명을 다시 지었던 것이다.
개똥이는 실제로 고종의 아명이었고,
도야지는 황희의 아명이었다.
조조(曹操, 155-220).
자(字)는 맹덕(孟德),
아명(兒名)은 길리(吉利),
소자(小字)는 아만(阿瞞). 3. 여성의 본명과 아명 역사에는 여성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건 과거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도 있지만, 실제로 여성에게 이름이 없었기 때문도 있다. 세부적인 사항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예컨대 이전 연재에서 본 '자(字)'의 경우, 중국은 여성도 계례 때 자(字)를 받았는데, 조선의 경우 남성만 자를 받았던 것 같다. 애당초 자(字)를 사용하는 계층이 상류층에 한정되긴 했지만 말이다.
손상향(孫尙香)으로 알려진 손씨 부인.
'손상향'은 후대의 경극에서 창작된 이름이다.
그녀는 손견의 딸이었고 유비의 부인이었지만
실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양귀비는 현종의 귀비(貴妃)였기 때문에 '양 귀비'이며,
본명은 전해지지 않고 소자(小字)만이 '옥환(玉環)'이라 전해진다. 4. 훈명(訓名)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사용한 이름인 '훈명(訓名)'까지 이야기하고 마무리 짓겠다. 과거에 세가나 문벌(門閥) 자제들은 학교에 들어갈 때 '훈명(訓名)'이란 이름을 받곤 했다. '훈(訓)'은 '가르친다'는 뜻으로, '학명(學名)'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나 집안 어른들, 스승, 혹은 명사 등이 지어주었으며, 원나라 때의 《송사(宋史)》에서 훈명이 언급된다. 훈명은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교육을 받을 때 사용되었으며, 스승이 제자를 부를 때도 훈명으로 불렀다. 훈명이 없는 경우는 아마 본명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일 때는 아직 존중 받을 자격이 없으니 본명을 불러도 사회적인 문제는 없었다. 조선의 경우에도 학교에선 본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 이미지 출처 : https://zh.wikipedia.org/wiki/%E7%A7%81%E5%A1%BE
金沙鎮山后聚落中的海珠堂學堂, by 寺人孟子, CC BY-SA 4.05. 마치며... 사실 아명 등 과거의 풍속은 고서의 기록에 의존하는데, 출처에 따라 내용이 다른 경우 등도 있어서 당대의 실상을 정말 정확히 아는 건 아니다.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양한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가 자라면서 치렀던 여러 단계의 의례가 여러 고서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아이의 성장에 따라 '유명(乳名)→초명(初名)→소명(小名)' 등으로도 불렀다고 하고, 어린 시절 '소자(小字)' 등을 지어 사용했다고도 하는데 필자도 아주 자세히는 모른다. 늘 생각하지만, 동양에 사는데도 동양 풍속의 디테일을 볼 신뢰도 높은 자료가 거의 없다는 건 참 아쉽다. 학자가 아닌 일반인 수준에서 말이다. 오히려 서양사가 더 쉽다. 아명(兒名)이나 소자(小字)는 성인이 되면 사용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으며, 기본적으로 성인이 된 사람을 아명으로 부르는 건 매우 무례한 행위었다. 군주의 아명을 입에 담았다가 처형 당한 사례도 역사 속에 존재한다. 극히 드물게 아명을 성인이 되어 이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의 이름 '백(白)'은 아명인데, 어머니가 꿈에서 빛나는 별을 보고 지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자(字)인 '태백(太白)'으로 아명의 글자가 이어졌고, '이태백'이란 호칭은 평생 동안 애용되고 역사에 남았다. 아명은 흥미롭게도 21세기 한국의 '태명(胎名)'과 제법 닮아 있다. 태명은 약 20년 전 쯤 한국에서 새로 생겨난 신생 문화인데, 기원은 아명과 매우 다르지만 은근히 비슷한 구석도 많다. 본명이 있기 전의 임시 이름이라거나, 사람이 연상되는 이름으로 잘 안 짓는다거나, 아이를 위해서 짓는다거나 하는 부분들이 말이다. (또한 '천한 이름'과 반대된단 것에서도 더욱 흥미롭다.) 자(字), 호(號), 아명(兒名), 훈명(訓名)... 거기에 직위나 작위, 시호 등등까지 있었으니, 과거 동양 사람들은 본명을 쓰지 않는 것에 정말 진심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선 이 습관을 '실명경피속(實名敬避俗)'이라고 부른다. 실명을 귀하게 여겨서 오히려 피하는 습속이란 뜻이다. 다음 연재에서는 처음에 잠시 다루고 미뤄두고 있었던 '본명'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아마도 '중국인의 이름' 연재는 총 7편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