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이름(5) : 본명(本名)
2025년 01월 28일 · 오전 6시 00분
1. 태어나 3개월이 되어 진짜 이름을 짓다 지난 회의 '아명(兒名)'편에서, 고대부터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생후 3개월에 진짜 이름, 곧 본명(本名)을 짓는다고 이야기했다. 3개월 째에 이름을 짓는 등의 의례는 다양한 문헌에 남아 있는데, 그 대표로 꼽히는 것이 여러 차례 언급한 《백호통의》이다.
왜 세 번째 달에 이름을 지을까? 사람이 태어나 석 달이 지나면, 三月名之何?人生三月, 눈빛이 온화하여 웃을 수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 대답을 주고 받을 수 있으니, 目煦亦能笑,與人相更答, 비로소 세상을 알 수 있기에 이름을 지었다. 故因其始有知而名之。 그러므로 《예복전(禮服傳)》에선, "아이가 태어나 석 달이 되면, 故《禮服傳》曰:「子生三月, 아버지가 조상을 모시는 사당에서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다. 則父名之於祖廟。」
《백호통의(白虎通義)》
후한 때의 《백호통의》는 아이의 발달 단계를 언급하며, 3개월 째에 비로소 이름을 짓던 문화를 잘 보여준다. 고대인들이 이미 아이의 발달을 꽤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면이다. 지난 연재에서 어릴 때의 '아명(兒名)'을 달리 '소명(小名, 작은 이름)'이라 부른다고 했다. 여기에 대비되어 '이름(名)'을 달리 부르는 말이 '대명(大名, 큰 이름)'이다. 무협지에 나오는 '존성대명(尊姓大名)'이란 높임말의 '대명(大名)'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2. 중국인의 작명 습관 중국사에서 가장 오래된 이름 관련 기록은, 기원전 17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 존재했던 상나라의 갑골문이다. 여기서 상나라의 왕과 귀족들은 태어난 날에 해당하는 천간(天干)―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을 이름이나 호칭으로 즐겨 지었다고 본다. 그 후의 기록에서 자주 일컬어지는 것은 춘추전국시대의 《예기》와 《춘추좌씨전》인데, 앞선 연재에서 인용했듯이 일월산천이나 관직 등의 이름을 사람의 이름으로 쓰지 말라는 금기가 언급된다. 피휘의 금기 역시 주나라 이후 천천히 강화되어 간다. 학자들은 이런 기록들을 보고서 이미 고대부터 작명을 할 때 특정한 습관이나 규칙, 목적, 바람, 선호 등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Shang_dynasty Map of Shang Dynasty from Bamboo Annals, by Lamassu Design Gurdjieff, CC BY-SA 3.0 상나라는 황하를 중심으로 한 초기 원시 국가다.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가 제대로 자리를 잡는 것은 기원전 3세기 한(漢)나라에 가서이며, 이름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였다.
흥미로운 점은 상고시대를 보면, 예컨대 가장 초기의 8대성(八大姓)은 어머니의 출신지를 따서 성(姓)을 지었고, 더 앞선 신화시대의 이름을 보면 지역이나 자연의 이름을 따서 작명하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아 보인다. 이를 통해 유추하건데, 아마도 가장 초기의 성씨나 이름들은 후대의 작명 금기와 관련 없이 지어졌으나, 시간이 흐르며 계급과 여러 가지 규칙, 금기 들이 생기면서 작명의 규칙도 엄격해져 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과 별로 다르지 않은 발상도 많이 보인다. 예컨대 노 환공(?-BC694)은 아들의 생일이 자신과 같았기 때문에 '동(同)'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공자의 이름은 태어났을 때 두상이 언덕처럼 보인다고 '구(丘)'가 됐으며, 공자의 아들은 태어났을 때 물고기를 선물 받았기 때문에 '리(鯉, 잉어)'가 됐다. 인간의 발상이란 게 어느 시대든 비슷하달까.
노 환공이나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인물로 아직 아명이나 자(字) 같은 요소들이 자리잡기 전 시대이다.
작명의 경향을 단순하게 볼 경우에는 발음이나 의미가 예쁘거나 좋은 글자가 언제나 선호되는 경향이 있으며, 남성적인 글자와 여성적인 글자를 나누기도 했다. 예컨대 용(勇), 무(武), 강(剛), 영(榮), 비(飛) 같은 글자는 남자 아이에게 선호되고, 혜(惠), 교(嬌), 소(素), 련(蓮), 화(華) 같은 글자는 여자 아이에게 선호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외에도 청(淸), 백(白), 광(光), 언(彦)처럼 풍격과 지조를 표현하기도 하고, 길(吉), 흥(興), 성(盛), 수(壽)처럼 길하고 좋은 글자를 넣기도 했다. 그런데 고대 중국의 이름을 보면 재미있는 특징이 보이는데, 바로 이름이 한 글자란 것이다.
3. 한 글자 이름과 두 글자 이름 우리는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을 뿐, 고대 중국인들의 이름이 주로 한 글자란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유비,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조, 순욱, 곽가, 가후, 정욱, 손권, 주유, 저수 등등등―을 보면 대부분의 이름이 한 글자다. 수치로 따지면 98% 이상이라고 한다. 이전 시대의 주나라 문왕의 본명은 창(昌)이고, 전국 시대 맹자의 본명은 가(軻)이며, 진시황의 본명은 정(政)이고, 한 고조와 그 숙적의 이름은 각각 '방(邦)'과 '적(籍)'이었다. 물론 두 글자 이름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드물었다. 상나라 때부터 한 글자 이름을 짓는 문화가 이어졌으니, 전에 어디선가 읽기로는 한 글자 이름이 더 좋은 것이라고 인식했다는 것 같다. (같은 자료를 다시 찾지를 못했다;_;)
과거로 갈수록 한 글자 이름의 인물이 많다. 웬만한 인물을 떠올리면 다 이름이 한 글자일 것이다.
피휘 금기가 영향을 끼쳤다고도 한다. 이름이 두 글자일 때보다 한 글자일 때 피휘를 지키기 쉽기 때문에, 금기가 강해진 진나라 이후로는 한 글자 이름이 더욱 선호됐단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 글자 이름이 더더욱 선호되게 만든 사건이 있었는데, 전한(BC202-AD8)과 후한(AD25-AD220) 사이에 반란을 일으켜서 15년 동안 존재했던 신(新)나라 때의 일이다. 황제가 된 왕망(王莽)은 그의 짧은 통치 기간(8-23) 동안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근거로 두 글자 이름을 없애라는 칙령을 내렸다. 그 후 두 글자 이름으로 강제 개명을 시키는 것이 신하를 모욕하는 수단이 되기까지 했으니, 이후 수백 년 간 한 글자 이름 선호도가 하늘을 찌르게 된다. 수치로 보면 전한 초기의 한 글자 이름 비율이 약 70%라면, 후한 때는 약 98%로 추정한다. 간혹 보이는 두 글자 이름은 주로 변방 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왕망(王莽, BC45-AD23). 신나라 유일의 황제.
약 400년이 흘러 남북조시대(386-589)가 돼서야 이민족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두 글자 이름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후 당송(618-1279) 시기에 들어서는 두 글자 이름이 주류로 변했고, 명나라(1368-1644) 때엔 거의 모든 이름이 두 글자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진다. 참고로 한반도는 삼국시대에 중국식 이름을 받아들였는데, 그때가 당나라 때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두 글자 이름이 주류였던 것 같다. 그 이전에는 순우리말(정확히 말하면 삼국시대의 언어)로 된 꽤 긴 이름이었다.
4. 이름의 글자 수와 기능, 그리고 항렬자 이름이 한 글자에서 두 글자로 된 것은 단순한 유행은 아니다. 한 글자일 때도 피휘나 편의성 같은 이유가 존재했을 것이고, 두 글자가 된 것에도 이민족 외의 다른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은 항렬자(돌림자)이다. 자(字)에 대해서 연재할 때, 이미 주나라 혹은 그 전부터 백중숙계 같은 시스템을 통해 가족 서열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학자들은 고대사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와 같은 이들의 이름에서 그들의 가족 구성 관계를 유추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명을 통해서도 '가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일찍부터 보인다. 후한 말 형주의 유표의 두 아들인 유기(劉琦)와 유종(劉琮)의 이름에는 옥(𤣩) 부수가 공통적으로 붙는다. 북송의 소식(蘇軾)과 소철(蘇轍) 형제 역시 차(車) 부수를 공유한다. 부수를 공유하는 것은 항렬자(=돌림자)의 초기 형태인데, 이름이 한 글자였기에 부수를 공유하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굳이 꼽자면 자식들의 이름을 매난국죽 시리즈처럼 연관성 있게 짓는 정도였다. 하지만 두 글자 이름의 시대가 되며 기능을 가진 글자를 붙일 수 있게 됐다. 남조 송의 황제 유유(363-422)의 아들들은 형제가 모두가 같은 '의(義)'자를 공유하기도 했다. 사실 오늘날엔 매우 익숙한 방식이다.
무황제(武皇帝) 유유(劉裕)의 아들들
유의부(劉義符) 유의진(劉義眞) 유의륭(劉義隆) 유의강(劉義康) 유의공(劉義恭) 유의선(劉義宣) 유의계(劉義季)
그러다가 송나라 무렵부터는 항렬자(行列字)가 제대로 도입되기 시작한다. 항렬자란 혈족의 상하 관계 순서를 표현하는 이름 글자다. 특정 순서의 글자 세트 중 하나를 각 세대마다 순서대로 이름 속에 넣으며, 같은 세대(형제자매 등)는 같은 돌림자를 공유한다. 다들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초기 형태는 당나라 황실에서도 보여지지만, 정확한 규칙이나 엄격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송나라 황실에 가서 규칙적인 항렬자가 자리를 잡았고, 명나라 때 완전히 정착하여 규격화된다. 족보가 그렇듯이 처음에는 황실과 명문가를 중심으로 점점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전근대 사회의 집성촌(集姓村)에선 모두 같은 성씨이자 핏줄이니 항렬을 중요시했다는 시각은 꽤 흥미롭다. 참고로 도교와 같은 일부 종교의 분파에서도 항렬자가 쓰였다. 무협지에 보면 도교 문파에 들어가서 도호(道號)를 받고서, "너는 운(雲)자 배 제자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항렬자는 중국어로 보통 행배자(行輩字)라고 부르는데, 배분(輩分)이란 단어에 들어간 배(輩)자가 행배(行輩)의 '배'자다. 서열/항렬/세대 같은 뜻을 갖고 있다. 한국 무협에선 모든 종교가 저런 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예컨대 같은 도교 안에서도― 일부 지파만이 갖고 있던 문화라고 한다.
* 이미지 출처 : 카카오페이지 https://page.kakao.com/ * 문제가 될 경우 삭제합니다. 문득 떠오른 건데 '화산파'만큼 중국과 아예 다르게 한국 오리지널로 개조되어서 널리 사랑받는 문파도 드문 것 같다.
그 외에도 인구가 늘어나면서 동명중복을 피한다는 이름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나, 더욱 복잡한 뜻을 나타낼 수 있다는 기능도 당연히 강화되었을 것이다.
5. 유행하는 이름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나 이름에는 유행이나 경향성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짧으면 몇 년 단위로, 길면 10년 단위로 이름에 자주 쓰이는 글자, 혹은 이름 전체가 유행한다. 이건 외국도, 그리고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춘추전국시대의 이름에는 지(之), 시(施), 부(不) 등의 글자가 들어가는 경우가 왕왕 보이는데, 이런 글자들은 신기하게도 이름 속에서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고 한다. 아마 이유가 있긴 했지만 실전됐을 것 같다. 시대를 건너 뛰어 동진(晉)의 왕희지(王羲之)의 이름에는 지(之)가 들어가는데, 이 당시에는 도교의 영향을 받은 이름에 지(之)자를 넣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건 피휘와도 무관했다고 한다. 왕희지의 다섯 아들의 이름에는 마찬가지로 모두 지(之)자가 들어가며, 손자의 이름에도 지(之)자가 들어갔다.
왕희지(王羲之, 303-361).
종교적 이름 글자는 여러 형태로 꾸준히 유행했는데, 예컨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경우 승(僧)자를 가족의 이름에 넣기도 하고, 도(道)나 담(曇), 영(靈) 같은 종교적인 글자가 유행하기도 했다. 송나라 때는 성리학과 경로사상의 유행으로 노(老), 수(叟 , 늙은이), 옹(翁) 같은 글자가 유행하기도 했다. 혼란했던 당나라 말과 오대십국시대에는 천하태평을 갈망하며 선비 언(彦)자를 많이 쓰기도 했으며, 이민족의 침략으로 핍박받던 요와 금나라 때는 비천한 뜻인 노(奴), 가(哥)와 같은 글자가 많이 쓰였다. 송나라와 원나라 때는 재미있게도 숫자로 된 이름이 유행했는데, 유명한 예로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본명은 주중팔(朱重八)이다. 그의 아버지의 본명은 주오사(朱五四)이고, 할아버지는 주초일(朱初一), 증조 할아버지는 주사구(朱四九)다. 숫자 이름은 당시에 폭넓게 지어졌다고 하는데, 그 이유에는 여러 이견이 있어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유행과는 반대로 한나라 이후 황실에서 사용하는 용(龍), 천(天), 군(君), 왕(王), 제(帝), 성(聖), 황(皇) 등을 백성들의 이름에 사용하지 못 하게 하기도 했다. 전부 무협에서 정말 좋아하는 글자들이다(...).
6. 마치며... 이번 연재까지 중국인의 성씨(姓氏)와 아명(兒名), 자(字), 호(號), 본명(本名)을 다루었다. 상나라와 주나라 때의 산 자와 죽은 자에 대한 관습이 체계화되어, 진나라와 한나라 때에 이르러 성씨와 이름, 아명, 자(字)라는 형태가 완성되었고, 당나라 무렵이 되어서는 호(號)라는 요소가 추가되어 동양에 널리 퍼졌다. 한나라 때는 피휘라는 금기가 자리잡아서 '이름을 이어받지 않는 관습'이 생겼으니, 서양과 확실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이름을 아껴서 호칭을 여러 개 갖고 본명을 잘 사용하지 않은 것 또한 동양 문화의 특색일 것이다. 뭐, 서양도 근대로 가면서 결국 이름이 점점 늘어났지만 말이다. 한 글자였던 이름은 시대가 흐르며 두 글자로 변했으며, 당-송-명을 거치며 핏줄의 서열을 표시하는 항렬(行列)과 같은 기능이 들어가게 됐다. 인간은 장기적으론 더 편한 쪽을 선호하는데도 두 글자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필요에 의해서였을 것 같다. 꼭 항렬이 아니라도 동명중복 문제라거나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중국식 이름'이 결격사유 없이 완성되는 건 명나라이니, 확실히 명나라쯤 가야지 익숙하달까, 시간적으로 더 멀어지면 이질감이 강해지는 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어느 나라의 대중문화든 과거로 거슬러 갈수록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중국인은 대략 명나라, 한국인은 조선 중후기, 일본은 에도, 서양인은 부르주아 혁명 정도까지... 뭐랄까 인류의 지식과 문화가 이런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나 묘한 느낌이 든다.
이름의 이런 모든 요소들은 중국과 한반도에서 전근대까지 널리 쓰였던 것들이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졌는데, 중국은 문화대혁명 때 스스로 모든 걸 파괴했고, 한반도는 일제의 식민 침략에 의해서 파괴당했으니, 중국보다는 우리가 더 아쉬워 할 일인 것 같다. 원래 이번 연재에 포함된 '항렬자' 등을 다음 연재에서 따로 다루려고 했으나 합쳤다. 다음 연재는 '중국인의 이름'의 마지막 편인 '중국식 애칭'에 대해서 다루겠다. 넓게 다룰 건 아니고, 호칭 앞에 '아(阿)' 같은 게 붙는 문화에 대해서다.
▶[중국인의 이름 (6) : 애칭(愛稱)]으로 이어집니다.◀
이름과 성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