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이름(6) : 애칭(昵稱)과 호칭법
2025년 02월 14일 · 오전 5시 00분
'중국인의 이름' 연재의 마지막 편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애칭' 정도에 해당하는 '닐칭(昵稱)'이다. 중국 소설이나 드라마 등을 보면 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 이름 중 한 글자를 따서 '아(阿)'나 '소(小, 샤오)' 같은 접두사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영웅본색」에서 장국영씨가 연기한 '송자걸(宋子傑)'은 '아걸(阿傑)'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중국식 애칭은 당연하지만 중국어이기에, 작품을 잘 들여다 보지 않으면 인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무협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여러 차례 접하셨을 것이며, 이 방식 중 일부는 굉장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먼저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아(阿)'라는 접두사를 살펴보자.

1. 접두사 '아(阿)'

중국의 가장 흔한 애칭은, 사람의 이름 한 글자에 '아(阿)'라는 접두사를 붙여서 친근하게 부르는 것이다. '아(阿)'는 굉장히 오래된 기원을 갖고 있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그 기원이 2000년보다도 더 이전인 춘추전국시대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다소 불확실한 기원설은 넘어가더라도, 삼국지의 초기 배경인 후한(後漢, 25-220) 때가 되면 '아(阿)'라는 글자를 사람에게 친근감 있게 쓰는 기록들이 등장한다. 유비의 아들인 유선의 아명이 아두(阿斗)였고, 조조의 소자(小字)가 아만(阿瞒)인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아(阿)'라는 글자는 꼭 애칭이 아니라도 사람의 본명이나 아명 등에도 자주 쓰이는 글자인데, 후한 때에 이미 이런 방식으로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정사 삼국지를 봐도 이 재미있는 호칭이 나온다. 오늘날까지 사자성어로 남은 '오하아몽(吳下阿蒙)'이란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오나라의 노숙(魯肅)은 여몽(呂蒙)을 '아몽(阿蒙)'이라고 일종의 애칭으로 부르고 있다. 오늘날의 애칭 접두사와 같은 용법이다.
여몽(呂蒙, 178-219). '오하아몽'은 또한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사자성어의 기원이기도 하다.
후한 말을 배경으로 하는 육조 시대(229-589) 초기의 작품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에는 형제 자매를 '아형(阿兄)'과 '아매(阿妹)'라고 부르고, 어머니를 '아모(阿母)'라고 부르는 구절이 등장한다. 가족 호칭에 '아(阿)'를 붙여서 친근하게 부르는 방식인데, 마찬가지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방식의 애칭이다. 정리하자면, 사람의 이름 중 한 글자를 따서 '아(阿)'를 붙이는 애칭이 오래토록 사용돼 왔으며, 가족이나 친척의 호칭에도 붙고, 아예 작명에 쓰이기도 한다. '아(阿)' 자체에는 특별한 뜻이 없이 주로 친근함을 표현한다. 무협의 객잔 점소이의 단골 이름인 '아삼(阿三)' 같은 것도 이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름인데, 본명일 수도 있고 별명일 수도 있다. 이미 언급했던 내용들이다.

2. 접두사 '소(小, 샤오)'와 '노(老, 라오)'

현대 중국에서 이름에 '샤오(小)', 즉 '소(小)'를 붙이는 호칭법은 흔하지만, 사실 소(小, 샤오)라는 접두사가 지금처럼 애칭으로 정착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본래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나, 적어도 20세기 초에 접두사 소(小)는 사회적 계급이 낮은 사람, 그러니까 하층민에게 붙이던 호칭이었다고 한다. 즉, 사람을 낮춰 부르거나 비하하는 호칭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이 공산화되는 과정에서 두 가지 요소가 영향을 끼쳤다는 것 같다. 하나는 중국 공산당의 옛 당군인 홍군(紅軍)인데, 군대 안에서 공산주의가 내세우는 이상인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계급이 아닌 다른 적절한 호칭이 있어야 했다. 이때 주로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혁명군들이 무난하게 서로를 부를 수 있는 호칭으로 선택된 게 '소(小, 샤오)'였다는 것이다. 마치 오늘날 무협지에서 '소형제'라고 서로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의 공산화가 성공한 후의 일이다. 군대에서 사용되던 용어가 공산당의 국영 공장 같은 일터로 이어졌는데, 이때 나이가 어리거나 낮은 직급의 노동자에게 '소(小, 샤오)'라는 접두사를 붙여서 불렀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사람의 성씨 앞에 '소(小, 샤오)'라는 접두사를 흔히 붙이게 됐고, 오늘날에 와서는 정착해서 친근한 애칭으로 변한 것이다. 예컨대 왕(王)씨 성의 젊은이를 '샤오왕(小王)'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소(小)'라는 접두사는 상대방의 나이나 직급에 민감하다고 한다. 직급이 높아지거나 나이가 들면 '소(小)'를 붙여서는 안 되며, '왕 과장'처럼 직급으로 부르거나, 아니면 노인 노(老, 라오) 자를 붙여서 '라오 왕(老王)' 같은 식으로 부르게 된다고 한다. 소(小)/노(老)의 구분은 기본적으론 나와 상대의 관계에 기반하며, 상대가 반드시 '노인'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선 노(老)를 쓰지 않으며, 반대로 너무 나이가 많으면 소(小)를 쓰진 않는다. 사실 한국 감성에서 '노인(老)'이란 글자는 애칭이라 하기엔 좀 미묘한 글자인데, 중국은 노자(老子)라거나 성리학이라거나 경로사상 등의 영향으로 작명에 노(老)를 친근하게 써 왔으니, 우리네랑은 감성이 좀 다르지 않은가 싶다. 오늘날 '아(阿)'와 '소(小)'는 중국인의 대표적인 애칭 접두사이며, 아(阿)는 역사와 함께 광동을 중심으로 하는 남쪽 지역에서 많이 쓰이게 됐고, 소(小)는 공산화와 함께 북쪽 지역에서 주로 쓰이게 됐다고 한다. 최근에는 미디어가 있기에 섞여 가는 것 같다.

3. 그 외의 애칭들

'아(儿, 얼)'는 '아이(兒)'의 간체자로, 가까운 사이에서 쓰이는 애칭 접미사다. 영웅문 사조영웅전의 여주인공의 이름은 황용(黃蓉)인데, 주인공에게 '용아(蓉儿)'라고 불리는 걸 볼 수 있다. 팬들에겐 정겨운 호칭일 것이다. 이름 한 글자를 연속으로 두 번 반복하는 패턴도 자주 쓰인다. '밍밍(明明)'처럼.
이미지 출처: 豆瓣电影, https://movie.douban.com/ * 문제가 될 경우 삭제합니다.
사조영웅전 2024의 황용(黄蓉).
무협에 자주 나오는 랑랑(娘娘)은 황후 같은 높은 귀비('마마'처럼)나, 여신, 선녀 등에 주로 쓰이는 표현이다. 그에 비해 마마(妈妈)는 기본적으로 '엄마' 등 기혼 여성을 부르는 종류의 말인데, 수호전에선 여자 포주를 말하기도 한다. 손윗남자 형제를 뜻하는 가(哥)나, 손윗여자 형제를 뜻하는 저(姐) 등은 그 자체로도 접미사로 쓰이지만, 두 번 반복이 되어서 훨씬 친밀하거나 귀여운 표현으로 바뀌기도 한다. 가가(哥哥)처럼.

4. 사람을 부르는 방법

6편의 연재에 걸쳐서 중국인의 이름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면서, 호칭법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 해 보겠다. 과거 동양인의 이름에는 본명(名) 외에도 자(字)와 호(號), 아명(兒名)과 같은 요소들이 있었다. 분류가 다소 애매한 별명(綽號)이나 세칭(世稱) 같은 것들도 있었다. 이렇게 사람을 부르는 방법 중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규칙은 사실 '직급이나 계급으로 부른다'이다.
이미지 출처: KOEI 삼국지 11 * 문제가 될 경우 삭제합니다.
예를 들어, 제갈량은 '제갈 공명'이란 호칭보다 '제갈 승상'이란 호칭으로 더 많이 불렸을 것이다. 당나라의 문관 유종원(柳宗元)은 유주(柳州)의 자사(刺史)를 지냈기에 '유유주(柳柳州)'라고도 불렸다. 직책에 따라서 '장군' 등의 호칭으로 불리는 건 매우 익숙한 방식이며, 가장 공적인 방법이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방식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공작(公爵)의 아들을 공자(公子)라는 칭호로 불렀고, 한나라 때는 '~공(公)'이라는 접미사가 공적인 존칭이 되었다. 장비를 '장공'이라고 부르는 건 매우 공적이고 무난하며 일반적인 호칭이었을 것이다. 사람을 '성씨 + 직위/계급'으로 부르는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통용되는 가장 공적인 호칭이다. 자(字)나 호(號)가 있었다고는 하나, 더 보편적으로 선호되던 방식이었을 것이다. 동양에는 또 다른 재미있는 방법이 있다. '모(某)'라는 표현이다. '아무개'라는 뜻인데, 무협지에서 장(張)씨 성을 가진 인물이 "저는 낙양에 사는 장모(張某)라고 합니다"라고 소개하는 방식을 분명히 보셨을 것이다. '모(某)'는 현대 한국에서도 간혹 쓰이는 아직 살아있는 표현법이다. 성씨와 함께 '모(某)'를 붙이는 호칭법은 다양한 장점이 있다. 우선 본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있고, 스스로를 낮춰서 겸양과 겸손을 표현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정보를 숨기는 익명성을 갖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자(字)와 호(號)나 계급이 없는 일반인들도 본명을 말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듯 기본적으로는 '성씨 + 직위/직책'이나 '아무개(某)'라고 표현하는 것이 매우 공적이고 무난한 호칭법이었다. 또한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 전통적인 미덕 혹은 예의였다.
이미지 출처: KOEI 삼국지 12 * 문제가 될 경우 삭제합니다.
굳이 이름을 불러야 할 때는 공적으로는 존경을 담아서 '자(字)'를 사용했으며,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존경을 표하는 건 오만한 일이기에 자(字)를 자칭(自稱)하진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가족들에게 아명(兒名)으로 자주 불렸다. 학교에 갈 나이에는 훈명(訓名)을 짓기도 했다. 아명은 성인이 되어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웃어른이나 스승, 왕에게는 본명(本名)으로 불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본명으로 부르는 건 가급적 회피하는 분위기였다. 때때로 본명과 족보에 올라가는 이름이 다르기도 했다. 이럴 경우 족보에 기록되는 이름을 보명(譜名)이라고 불렀다. 편한 자리에서는 호(號)를 사용했다. 호는 스스로 지을 수도 있고 남이 지을 수도 있으며, 여러 개를 가질 수도 있었다. 호(號)는 본래의 이름이나 신분을 숨기는 용도로도 사용됐다. 그 외에도 상대를 관계(형, 누나, 친척 등)로 부르기도 했으며, 애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아(阿)' 같은 경우엔 2천 년은 사용되어 온 애칭이다. 그리고, 이걸 다 지키는 건 사회 상류층 귀족에 한정된 이야기였을 것이다.

5. 중국인의 이름 연재를 마치며...

지금까지 중국인, 나아가서 동아시아인의 기본적인 이름 체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원래는 내용을 훨씬 압축해서 쓸 생각이었는데, 단순하게 설명하는 방식은 이미 인터넷에 널려 있기 때문에, 역사와 변천 과정 등을 전해지는 기록과 함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쪽이 쓰기에 더 재미있기도 했다. 연재에서 다룬 동양인의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사실 따로 찾아보지 않으면 정확히 알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필자도 예전에 처음 찾아봤을 때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다시 정리하면서도 새로 알게 된 것들도 있다. 역시 설명을 하기 위해선 배우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시리즈, https://series.naver.com/ * 문제가 될 경우 삭제합니다.
아쉬운 점은 동양인의 전통적인 이름 체계는 솔직히 한국 무협지에는 도입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은 현대에 와서 저런 개념을 많이 잊어버렸는데도 드라마에서 자(字)와 호(號)와 애칭을 잘 활용하는데, 아마도 어릴 때부터 느껴온 분위기가 이질감을 줄여주는 걸까? 반면 한국 무협에서 캐릭터 하나가 호칭을 대여섯 개 이상 가지면 독자들이 처음에 적응하기 매우 어려울 것 같다. 흠. 잘 쓰면 재밌을 것 같은데 어느 작가분이 시도 안 해주려나^^; --------------------------------- 이후 '한국인의 이름'과 '일본인의 이름' 연재를 기획했었지만, 일단은 한 달 이상 연재 등은 쉴 예정입니다. 예상보다 연재가 길어져서 글을 너무 열심히(...) 쓴 것 같네요. 그 다음에 '한국인의 이름'을 바로 연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한국인의 이름'편은 당초에는 중국편처럼 써 나가려고 했지만, 막상 써 보니 중복되는 게 너무 많아서 짧게 쓸 것 같습니다. 이미 설명한 요소는 대부분 넘기고, 삼국시대부터 현대로 이어지는 대략의 변천사 위주로 가급적 간단하게 다룰까 생각 중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역사는 민감해서 더 다루기가 어렵네요. 일본의 경우엔 섬나라이다보니 독자적으로 변형시키는 걸 참 좋아합니다. 일본인의 이름은 중국인의 이름과 굉장히 달라서, 제대로 연재를 하면 꽤 길어질 것 같습니다. 오히려 유럽과 유사한 점도 많고, 흔히 알고 있는 상식과 정말 많이 달라요. 일단은 나중의 일이고, 연재 계획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썼던 중국편이 누군가에겐 재미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긴 연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 노파심에서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만, 본 홈페이지에서 특정 국가나 민족 비하를 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 놈의 문화대혁명." 정도의 댓글은 상관없습니다만, 본격적인 비방을 위한 댓글은 경고 없이 삭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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