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간간이 건드리던 게임이 있는데, 영어권에선 상당히 유명한 '매스 이펙트(Mass Effect)' 시리즈입니다. 지난 주에 남았던 부분을 잡고서 다 클리어했네요.
매스 이펙트는 바이오웨어가 개발한 SF 장르의 롤플레잉 게임으로, 서양 RPG가 그렇듯 FPS 시스템과 유사한 실시간 총쏘는 RPG입니다. 일종의 초능력을 이용한 능력 사용이 가능하고요. 시점은 3인칭 배후 시점입니다.
처음부터 3부작으로 기획됐다고 하는데요. 2007년에 1편, 2010년에 2편, 2012년에 3편이 발매되어 완결되었습니다. 2021년에는 3편을 묶어서 Legendary Edition으로 발매됐는데, 제가 플레이한 것도 LE 버전입니다. 유저 한글화가 되었습니다.
워낙 유명했고 제가 SF 장르를 좋아하기 때문에 건드린 것이지 큰 기대는 없었는데요. 정말 재밌게 했습니다. 최종 엔딩이 아니었다면 인생 게임에 들어갔을 것 같아요.
스토리를 뺀 게임 플레이 부분만 보면 지금 와서는 그럭저럭 할 만은 하다 수준입니다. 아무래도 20년 전에 나왔다 보니 1편과 2편은 그럭저럭이고, 3편 게임 시스템은 지금 해도 훌륭해요. 하지만 게임 속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체험하는 서사는 단연 돋보입니다. 최종 엔딩이 이상한게 문제라서 그렇죠. (한숨)
2007년 당시만 해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연출로 유명했습니다만
이젠 그렇게까지 특별한 요소는 아니게 됐죠.
가볍게 소개하자면요. 요전에 [빛보다 빠르게 : 워프와 초공간 도약]에서 설명했듯이, 이 세상의 물리 법칙은 광속에 근접하는 속력 증가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빨라질수록 질량이 무한대를 향해 증가하거든요.
'매스 이펙트(Mass Effect)'의 '매스(mass)'는 말 그대로 '질량'을 의미합니다. '매스 이펙트'란 작중에서 '제0원소(Element Zero)'를 이용해서 질량을 자유롭게 증감시키는 장(field)을 만들어내는 효과를 이야기하죠. 이를 통해서 초광속 여행뿐만 아니라 무기나 보호막에까지 각종 기술 혁신을 가져온다는 설정입니다.
22세기에 인류는 엄청난 기술을 가진 외계 문명의 유물을 발견하게 되고, 그렇게 우주로 진출하여 지적 외계인들과 조우, 결국 외계 종족 커뮤니티에 합류하게 됩니다. 다양한 종족이 '평의회'를 중심으로 부대끼는 세상이죠.
플레이어는 인류가 '의회'에 정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2세기 말, '셰퍼드 소령(Commander Shepard)'이란 인물이 되어서 앞으로 닥칠 전 우주적인 위기를 알아채고 맞서 싸우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설정이나 서사가 아주 치밀하거나 놀랍지는 않지만, SF 팬들이 충분히 인정할 정도는 된다는 느낌이에요.
1편부터 3편에 걸쳐서 일관되게 이어지는 사건 속에 있고요. 그 안에 굵은 메인 스토리가 있고 짧은 서브 스토리가 산재해 있는 구조입니다. 일종의 오픈 월드처럼 서브 스토리를 플레이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선택인데요. 이 게임의 특징적인 매력을 들자면 이런 '서브 스토리'나 플레이어의 선택이 게임 속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2023년의 발더스 게이트 3는 플레이어가 게임 속 세상이나 인물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매우 현실적이고 높은 자유도로 표현해서 명성을 떨쳤죠. '게임 시스템'이란 건 게임에서 표현할 수 없는 '현실 세상'을 단순화 시키기 위한 목적이 큰데요. 시대가 흐르면서 과거에 컴퓨터의 성능 문제로 표현할 수 없었던 부분을 몇몇 뛰어난 게임들은 '현실적'으로 게임에 반영하는 데에 성공하죠.
아주 단순하게 보면 '길을 가다가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있느냐' 같은 단순한 현실성에서부터, '플레이어의 행동들을 게임 속 캐릭터들이 일관되게 인지하느냐' 하는 복잡한 현실성까지도 크게 보면 이런 문제에 들어갑니다. 오픈 월드와 선형적 스토리 라인도 근본은 여기에 관련된 문제죠. 게임 속 세상을 플레이어가 현실적으로 납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요.
대부분의 선택지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매스 이펙트 시리즈의 가장 놀라운 매력은 한 마디로 하면 '선택'입니다. 플레이어가 하는 여러 선택들이 실제로 게임 속 세상이나 스토리에 반영이 되거든요. 플레이어의 선택이 세 편의 서사 속에서 이어지고 반영되는 강력함은 발더스 게이트 3보다도 높다고 느꼈을 정도입니다. 발더스 게이트 3는 그보다는 자유로운 행동이 더 놀라웠죠.
예컨대 매스 이펙트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서브 이벤트에서 어떤 인물을 죽였느냐 살렸느냐가, 3부작 트릴로지 전체에서의 이야기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 인물의 생사를 게임 세계 모두가 인지하고, 그로 인한 결과 역시 변하죠.
플레이어의 선택과 플레이 방식을 게임 속 인물들이 인지한다는 것은, 플레이어가 게임 속 세상에 실제로 속해서 살아간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것이 단순히 1편 안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 2편과 3편까지 이어져 가는 것을 잘 해낸 게임이 매스 이펙트 시리즈인 것 같아요.
대개의 후속작은 전작의 세이브 연동을 할 때 큰 의미없는 특전 정도를 주고 끝내지만, 매스 이펙트에선 정말 많은 것이 이어집니다.
1편에서 2편으로 세이브 연동을 할 때는, 전작에서 플레이어가 선택한 각 사건들의 결과나 동료나 연인과의 관계가 계승되며, 레벨과 재산에 따른 일정 비율의 경험치와 돈을 이어받게 됩니다.
2편에서 3편으로 갈 때는 1편과 2편의 각 사건의 선택과 결과들과 동료와 연인과의 관계가 계승되며, 2편의 모든 레벨과 수집품, 함선 업그레이드와 돈의 일부를 이어받게 됩니다.
특히 3편에선 2편 클리어 당시의 웬만한 걸 다 이어받는다는 게 파격적이에요. 2편 만렙이 30렙인데 3편에선 그 레벨을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만렙은 60렙이 되고요. 세이브 연동은 이렇게 돼야죠.
이렇게 전체의 흐름과 캐릭터가 3부작 게임에서 이어져 나가며, 메인 스토리의 정말 굵은 줄기까진 크게 변하지 않더라도 자잘한 세부 사항이나 등장인물은 꽤 극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당장 1부, 2부의 동료들을 모두 영입하느냐, 동료와 어떤 관계를 이루느냐가 인물간의 서사나 최종 결과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요. Legendary Edition엔 모두 포함되어 있긴 합니다만, 발매되었던 각 DLC 역시 충분한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요.
결국 SF 팬들이 납득할 만한 배경 설정과, 게임 안에서의 의미 있는 선택과 변화들, 그리고 의미 있는 세이브 데이터 연동은 3부작 트릴로지 안에서 플레이어가 세상의 일부로 활동했다는 충분히 주고요. 그게 이 게임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드문 게임이에요.
단지 이 게임의 가장 큰 단점이 여러 논란과 사연 속에서 망한 3편의 엔딩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용두사미 스토리란 점은 정말 아쉽습니다. 3부작의 모든 설정을 파괴하는 꿈도 희망도 없는 엔딩이거든요.
결국 3편의 마지막에서 모든 걸 비약하고 설정을 부수는 건 생물(Organics)과 그 피조물인 기계(Synthetic)는 영원히 서로 싸울 수 밖에 없다는 결론입니다만. 관련된 다양한 논란과 속사정에서도 드러났듯이 너무 깊이가 없이 급조된 엔딩입니다.
현시점의 과학은 인간을 유기물로 이루어진 기계에 가깝게 봅니다. 그리고 컴퓨터 공학을 아신다면 아마 오랜 시간과 초고성능 컴퓨터가 있다면 인간의 지능과 성격과 행동을 언젠간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것도 느끼셨을 겁니다.
인간이 자유 의지를 갖고 있다고 흔히 말하지만, 인간을 비롯한 생물은 프로그래밍된 대로 살아갑니다. 고통은 싫고 쾌락은 좋아하고요. 생물의 기본 행동 원리인 보상회로죠. 욕망은 행동의 동기가 되고요.
배고플 땐 먹어야 하고 피곤할 땐 쉬어야 하고 졸릴 땐 자야 합니다. 달고 맛있고 편한 걸 더 원하고, 썩고 냄새나고 힘든 건 피하도록 설정되어 있죠. 모든 인간이 사랑을 굉장히 중요한 가치로 두도록 만들어졌단 건 모든 분야에 걸쳐서 나타납니다. 인간은 유전자의 본능에 따라 프로그램되어 있고, 단지 그것들이 엄청나게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기계가 진화한 생명체와 기존의 생물 사이에는 사실상 차이가 없을 수 있습니다. 기원의 차이일 뿐이랄까요. 이 게임이 SF란 장르를 표방했다면 분명 이 부분을 매우 진지하게 고려했어야만 해요.
사실 매스 이펙트3의 엔딩에서 나온 저 주제는 '생물 vs 기계'보다는 '창조자 vs 피조물' 혹은 '부모 vs 아이'의 구도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신화학(Mythology)에선 아버지를 아들이 죽이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그 테마를 다룬 것이죠. 예컨대 크로노스와 우라노스, 우라노스와 제우스 같은 이야기 말이죠. 그 중심엔 권력이 있고요.
그리고 그 모든 걸 감안했을 때도 작중 최대의 적인 리퍼에 대한 결론은 대충 편하게 끝내자 이상의 무언가론 생각되지가 않네요. 차라리 기존 신화의 전형적 모티프를 차용하는 게 더 납득이 갔을 것 같습니다.
SF임에도 너무 과학이나 신화와 문학을 모르고 쓴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너무 아쉽습니다. 오랜만에 정말 재밌게 했는데 말이죠... 인생 게임 중 하나가 될 뻔 했는데...ㅠㅜ
내가 이걸 보려고 160시간 동안 플레이를 했나...
그래서 찾아보니 유저가 만든 '해피엔딩 모드'가 있길래, MOD를 깔고서 다시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공식 엔딩은 기억에서 지우기로 했고요. 참고로 3편의 경우 2회차에 1회차의 모든 무기나 자원, 레벨업 등을 그대로 이어받기에 편합니다. 종종 건드려 봐야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게임 자체는 정말 추천 드리지만, 3편 엔딩은 진짜 좀 아니라서 각오를 하시거나 모드를 까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혹시 모드를 까실 경우, 1편부터의 '무한 달리기'나, 1편의 '행성 자원 표시'나, 2편의 '행성 자원 한 번에 채취'는 같이 까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바닐라로 노가다 해도 별 거 없더라구요 저건. 3편의 '스캔 한 번에 하기'도 처음부터 깔아도 나쁘지 않습니다. 텍스처 모드는 안 깔아봐서 모르겠군요.
플레이 한 게임에 대해서 소감을 남기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인데, 지난 주에 쉬는 중에 게임을 많이 한 것도 있고, 다음 번에 쓸 글의 주제가 이 게임 때문에 나온 거라서 그냥 끄적여 봤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게임 이야기는 아니지만, 결말에서 언급됐던 '유기체(Organics)'와 같은 표현을 은근히 잘못 쓰는 창작물이 많기 때문에 관련 글을 써 보겠습니다.
일단 매스 이펙트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해피 엔딩 모드를 클리어하면 다시 한번 언급을 할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