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멸균 우유를 먹어 보다
2025년 06월 18일 · 오전 12시 00분
※ 이 시음기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자 취향입니다. 필자는 우유 감별사 같은 게 아닌 평범한 사람입니다. 우유를 좋아하지만 우유 취향은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며, 서울우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 걸 미리 밝혀둡니다. 지난 번에 2개의 수입 멸균 우유―에쉬레와 믈레코비타―를 마셔 보고서 감상을 남겼는데, 그 과정에서 어디까지가 '외국 우유의 맛'이고 '멸균 우유의 특징'인지를 모르기에 정확한 판단이 어려워졌습니다. 왜냐하면 가열한 우유는 프림 같은 고소한 맛이 생기고 단맛이 강해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위의 두 우유 모두 매우 고소하고 단맛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전에는 멸균 우유를 마셔본 적이 없었죠. 결국 멸균 우유의 특징과 유럽 우유의 특징을 분리해내기 위해서 대조군이 필요했고, 대조군으로 선택된 것이 익숙한 국산 우유의 멸균 버전입니다. 오늘은 서울우유와 파스퇴르 우유의 멸균 버전 시음기입니다. 1. 서울우유(멸균)
서울우유 멸균 버전은 135도에서 3초 이상 가열해서 멸균했다고 써 있으며, 유지방은 3.4%로 보통 수준입니다.
컵에 부울 때 익숙한 묘한 투명한 감이 느껴집니다. 수입 우유가 불투명도가 높은 게 맞네요. 입에 넣으면 프림 같은 가열 우유 맛이 확실하게 나는 것이, 멸균 우유의 특징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울우유의 경우 특유의 비린 맛이 고소한 맛 뒤에 바로 강하게 따라 붙습니다. 개인적으로 서울우유의 비린내를 안 좋아하는 편인데, 멸균이 되어도 여전히 서울우유의 특징으로서 남아 있네요. 고소한 맛이 있긴 하지만, 앞서 마셨던 두 종류의 수입 멸균 우유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칠 수준입니다. 그리고 두 모금 째부터는 적응돼서인지 고소한 맛이 잘 안 느껴질 정도의 고소함이네요. 어찌보면 입에 남은 비린맛이 다음 번의 고소함을 중화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_-;; 수입 우유에서 느껴졌던 바닐라를 연상시키는 향신료 같은 향은 없습니다. 그 향이 우유만 마실 땐 괜찮은데 음식과 같이 마실 땐 서로 부딪히더군요. 어쩌면 어릴 때부터의 익숙해지는 적응의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결론적으로 서울우유(멸균)는 첫 모금에선 멸균 우유 특유의 프림 같은 고소함이 제법 느껴지지만, 수입 우유보단 훨씬 약하고 두 모금째부터는 개성으로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살균 우유에서 느껴지던 비린맛은 멸균이라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큰 개성 없이 비린 맛이 강한 일반적인 서울우유의 맛. 보통 마시는 살균 버전과 멸균 버전에 대단히 큰 차이는 없습니다. 생생한 느낌은 확실히 좀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브랜드 일관성 면에선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서울우유를 싫어하는 게 문제죠.
문득 인간의 입맛이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신기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접하지 못했던 종류의 음식은 잘 못 먹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전엔 회를 못 먹는 사람도 많았고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향신채 중 하나인 고수는 지금도 그렇죠. (물론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과 취향에 따라 성인이 돼서 먹을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때 어른들은 가난했던 시대에 우유를 먹지 못하고 자랐던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은 우유가 비려서 못 먹겠다고 그러시더라구요. 당시 전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우유가 급식으로 계속 제공됐고, 자연스럽게 서울우유를 계속 마시면서 자랐습니다. 아무런 거부감도 없었죠. 흥미로운 건 20대가 돼서 문득 우유란 게 정말로 '맛있는지'는 잘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계속 제공되고 건강에 좋다고 해서 관성처럼 먹어왔죠. 그러다가 일본에 가게 되었고 일본에서 다양한 우유를 마셔보면서, 우유란 게 정말 고소하고 맛있는 것이란 걸 처음 깨달았던 것 같아요. 일본은 우유 종류가 많은데 프리미엄급 중에선 확실히 맛있는 우유가 있거든요. 그 후 여행하며 서양 우유도 이것저것 마셔보고, 고지방 프리미엄 우유란 게 얼마나 맛있는지도 알게 되고... 그러면서 서울우유를 피하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 와선 서울우유를 마시면 확실히 비리다고 느낍니다. 어렸을 땐 잘 마셨고, 어렸을 땐 우유 못 마시는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물론 대안이 없으면 지금도 그냥 서울우유 마시고 그러기는 합니다만^^; 글을 쓰다가 문득 참 새삼스럽지만, 입맛이란 것도 살면서 계속 변하고 참으로 변덕스럽구나 싶어서 잡담을 끄적여 봅니다.
2. 파스퇴르 전용목장 멸균 우유
파스퇴르 멸균 우유는 135도 이상에서 2초 이상 멸균한 것으로, 유지방은 4%입니다. 사실 파스퇴르 우유의 가장 큰 매력은 저온살균을 했다는 것이라, 고온 멸균을 한 이 버전의 경우 본래의 장점을 많이 잃었을지도 모르겠더군요.
처음 마셔 보면 프림 같은 풍미가 확실히 생기긴 했으나 의외로 별로 고소하진 않습니다. 앞서 마셔 본 수입 멸균 우유 2개보단 압도적으로 덜 고소하고, 멸균 서울우유보다도 안 고소한 것 같기도 합니다. 멸균 우유 특유의 프림 풍미가 약간 느껴지지만 평범하고 플랫한 우유. 확실히 달달한 특유의 맛도 약간 생겼습니다. 이건 멸균 우유의 특징이 맞네요. 멸균우유 = 프림 같은 풍미 + 달달한 향과 맛. 단지 고소함+단맛이 우유 본래의 특성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생기는 건 아니네요. 평소에 마시는 살균 버전에 없는 수준의 강한 고소한 맛이나 단맛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멸균 우유라고 하더라도 고소함과 단맛은 대부분 가열 때문이 아닌 원래 그 우유 자체의 특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주 약간 더 고소해지고 달아질 뿐이죠. 파스퇴르답게 (서울우유와 달리) 비린 맛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파스퇴르 특유의 고소하고 풍부한 맛 역시 사라졌습니다. 멸균 가열을 해서 저온 살균의 장점을 잃어버린 느낌이군요.
흥미로운 건 그동안 파스퇴르 우유의 장점은 저온 살균법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멸균 버전을 서울우유와 비교해 보니 비린내는 대단한 차이가 나고 맛도 꽤 차이가 있었다는 겁니다. 이건 서울우유와 파스퇴르의 맛의 차이가 가열 공정 차이 때문만이 아니란 이야기죠. 결론적으로 파스퇴르 멸균 우유는 매우 무난하게 평탄한 맛의 우유이며, 기존 저온 살균 버전의 장점을 대부분 잃어버렸으나 비린 맛이 가장 적다는 장점은 유지되었기에 마시기 편합니다. 멸균 공정으로 인한 프림맛과 단맛이 확실히 존재하지만, 수입 우유만큼 그렇게 강하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고소함도 크지 않고요. 3. 결론 우리 인간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의 다섯 가지 맛을 느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단백질의 맛을 거의 느끼지 못하지만 아미노산이 일부 맛을 내고요. 가장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지방산의 맛(6번째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밝혀졌죠. 그 외의 우리가 느끼는 복잡한 맛(예컨대 고소한 맛)들은 코가 느끼는 향에서 오는 풍미입니다. 우유의 맛은 기본적으로 지방산과 유당의 맛에 단백질과 우유 자체의 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 같고요. 이론적으로 가열을 하게 되면 마이야르 반응과 지방 및 단백질의 변성, 그리고 유당의 열분해로 인해서 프림 같은 풍미가 생기고 단맛이 강해진다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결론은, 멸균 우유가 가열 처리에 의해서 프림 풍미가 생기고 단맛이 강해진다는 건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게 우유의 맛을 근본적으로 바꿀 정도로 강하진 않다고 느꼈습니다. 서울우유는 멸균을 해도 서울우유다웠고, 파스퇴르 우유는 (저온 살균이 아니었음에도) 나름 상대적으로 파스퇴르다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그 전에 마셨던 두 수입 멸균 우유의 폭력적인 고소한 맛과 바닐라틱한 묘한 풍미, 그리고 뒤에 강하게 치고 오는 단맛은 그 두 우유 본래의 특징이었다는 것일 겁니다. 멸균 우유라서 생긴 게 아니라요. 결국 수입 우유는 확실히 매우 고소합니다. 앞서 마신 두 우유는 맛이 좀 튀는 경향이 있어서 음식이랑 먹기엔 적응이 필요한 느낌이었는데, 다른 종류의 수입 우유도 더 마셔보면서 취향에 맞는 걸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아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게, 서양 사람은 빵과 우유를 같이 먹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듯한 기억이...? 우유를 빵과 같이 안 먹는다면 수입 우유가 확실히 더 맛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 입맛엔 말이죠.
우유를 마셔 봄
잡담... 2025-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