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전에 개봉한 슈퍼맨을 보고 왔습니다. 올해는 영화관에 다시 가기 시작한 해라고 기억에 남을 것 같군요.

총평
셋이 봤고 의견이 다 다른데 제가 제일 부정적이었습니다.
한 분은 정말 재미있었고 인간적인 가족 이야기가 있어서 좋았다고 말씀하셨고, 다른 한 분은 나름 재밌는 편이었고 요즘은 많이 없어진 전통적인 스타일의 영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미는 취향이니 다른 영역이지만, 슈퍼맨(2025)이 최근의 풍조인 '아주 비싼 돈을 들여 만든 영화화 된 TV 연속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엔 동의합니다.
감독과 각본가의 목표가 영화 속에서 잘 달성되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완성도가 있죠.
개인적인 의견
'슈퍼맨' 영화가 아닙니다. 지독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슈퍼 히어로 유행에 빠진 사람은 아니지만, 슈퍼맨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랐죠. 애정과 추억이 있는 사람인데요. 별 생각없이 슈퍼맨 영화를 보고 싶었던 건데, 감독과 각본가가 말하고 싶었던 건 '슈퍼맨'이 아니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이 영화에서 슈퍼맨을 다른 인물로 바꾸고, 메인 스토리와 설정을 아예 바꿔버려도, 껍질만 다른 똑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감독과 각본가가 말하고 싶었던 게 '슈퍼맨'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슈퍼맨은 감독의 메시지를 담기 위해 포장된 겉상자였을 뿐이죠.
일단 최종평을 요약하자면, 슈퍼맨의 껍질에 다른 메시지를 담은 영화란 걸 알고 볼 경우, 완성도가 괜찮은 영화란 건 인정합니다.
감독과 각본가의 메시지가 너무 한결 같고 너무 슈퍼맨 스토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계속 보여줘서, 중간부터는 설득돼서 그러려니 하고 봤습니다.
솔직히 슈퍼맨 영화가 아니었다면 더 재밌게 봤을 것 같긴 합니다만.
※ 경고 : 아래의 내용은 이 홈페이지에서 이례적일 정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각 요소를 분석합니다.
요즘 세상의 모습이 잘못되었다는 메시지가 가득한 사르카즘(sarcasm) 영화

이 영화는 시작부터 꽤 비범합니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도시가 파괴되고 인명의 위기가 있는 상황에서 포즈를 잡고 셀카를 찍는 장면이 등장하죠. 이 부분부터 이미 '요즘 젊은 층'을 '까고 있다(이 속된 표현을 이번 리뷰에선 사용하겠습니다)'는 것을 누구나 느끼게 됩니다.
그 다음에 클라크가 출근을 하는 장면에선 '부사를 하나도 안 쓴 기사'가 언급됩니다. 여기엔 설명이 필요하죠.
영어권에선 '좋은 글엔 부사를 써선 안 된다'는 글쓰기에 대한 규칙 같은 게 있는데요. 이유는 부사의 현란한 수식은 대부분의 경우 필요가 없으며 문장을 조잡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건 '작가'나 '기자' 같은 글쟁이들에 알려진 이야기로, 일반인들이 쓰는 채팅, 블로그나 SNS의 글 등은 예전부터 현란한 부사로 가득했습니다. 왜냐하면 정제된 글을 쓸 수 있기 전까진 부사가 감정 표현과 과장에 도움을 많이 주기 때문이죠.

문제는 요즘은 (웹소설 등) 작가나 기자도 부사로 가득한 '저질' 글을 양산하게 됐고요. 젊은이들이 그런 자극에 익숙해진 시대이기에, 클라크에게 "넌 왜 기사에 부사를 안 쓰는 거야?"라고서 조롱하는 대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제대로 쓴 글을 조롱하는 것이 일반화 된 세상을 조롱하는' 대사죠.
제가 왜 이런 매니악(?)한 내용을 길게 설명하냐면,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과 대사와 인물과 생물(...)이 거의 다 이런 목적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사' 언급이 되는 순간이 저 문제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정하고 세상을 까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하는 시그널이 되는 거죠.
'클라크의 출근 장면'에 이르기까지 지나치는 복도나 책상의 엑스트라들의 대사들 또한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자잘하지만 고도로 계산된 사르카즘들입니다. 그 이후로도 계속 그렇고요.

이후의 '원숭이 수준의 댓글 부대'도 그렇고요.
SNS의 근거 없는 비난을 보자마자 눈 앞에서 방금 나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을 욕하고 손가락질 하는 대중이라거나.
언론의 본질과 부패와 이득을 위해서 언제나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모습. 그것에 휘둘리는 '어리석은' 대중들.
거기에 더불어서 정부의 발표와 기업과의 커넥션 등등...
말 그대로 모든 요소가 하나도 빠짐없이 세상을 까기 위해서입니다.

'까기 위해서'가 아닐 수도 있지 않냐는 생각이 드시겠지만, 영화를 보시면 모든 의도가 저기에 집중 된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가끔 하나가 따로 등장할 때와 달라요.
감독과 각본가의 도구일 뿐인 '죽어 있는' 인물들
잘 만든 이야기를 표현할 때 "인물들 하나하나가 살아 있고, 그 세계 자체가 실제 존재하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씁니다. 슈퍼맨(2025)은 이것과 정확히 반대입니다.
주연부터 엑스트라까지 모든 인물은 세상을 까기 위한 도구이며, 모든 대사가 그렇습니다. 예외는 아주 조금뿐입니다.
예컨대 작중 최대 빌런인 렉스 루터를 보죠.
그는 '근거 없이 누군가를 증오하며, 증오하기 위해서 한없이 악랄해질 수 있는' 인터넷 키보드 워리어를 대표합니다. 기존의 인간 중심주의의 극한을 다룬 루터는 없어요.

슈퍼맨(2025)에서의 렉스 루터는 '내가 최고고 제일 똑똑하며 남에게 주목 받아야 하는데, 슈퍼맨이 그걸 가로챘고 증오스럽다'고 일차원적으로 외치는 인물입니다. 슈퍼맨에게 패배해서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미디어에 자신의 악행이 까발려져서 평판이 추락했을 때 눈물을 흘리는 인물이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서 세상과 타인을 '게임하듯 남 얘기하듯' 바라보면서 조롱하고 괴롭히고 공격할 수 있는 인물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15살쯤 된 극악한 성향의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가 있다면 그게 렉스 루터일 겁니다. 현 시대의 워리어들을 까기 위한 상징물이죠.
루터의 비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납득할 사유를 갖고서 푼수 짓을 하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SNS에서 남 보여주기용 셀카를 찍는 골빈 인간을 대표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행동은 죽어 있어요. 기능을 가진 도구일 뿐이죠. 후반부의 핵심인 '셀카를 통한 보안 노출'조차도 영화의 메인 스토리 실마리가 아니라 세상을 까기 위해서입니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슈퍼맨을 괴롭히던 메타 휴먼?
'어쩔 수 없이 그랬다'라고 핑계를 대는 일반인의 대표입니다. 그가 우는 장면 혹은 뒤에서 후회하는 '과장된' 대사가 그걸 알려주죠. (이런 장면들은 저들은 단순히 '비판'하는 건 아닙니다. 저런 모순적 면모를 관객에게 던져버리는 거죠.)
그 외의 모든 대중과 엑스트라들, 그린 랜턴조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마지막에 슈퍼맨의 깃발을 들어올리는 '약자들'조차도, 그 이전에 슈퍼맨을 욕하던 것을 떠올리면 비꼬는 장치가 들어가 있음을 예상할 수 있죠.
제가 위의 내용들이 '비정상적'이라고 말한 이유는, 저게 극단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입체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데, 이 영화는 그걸 무시하고 감독의 의도를 위해서 단편적인 기능만을 강조했어요.
그래서 이 영화의 인물들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표현을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 자리를 누가 대체해도 본질적으론 아무 상관이 없죠.
사실상 의미가 없는 메인 스토리와 중요 장면들
클라크와 로이스, 그리고 클라크의 부모님은 이 영화에서 거의 몇 없는 정상적인 캐릭터인데요.
그나마도 클라크는 (그럼에도 가장 고결한) 이상주의자를 비꼬기 위함이고, 로이스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대사가 현 젊은 세대의 관계를 풍자하는 것으로 보이는 건 이 영화의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예컨대 슈퍼맨과 로이스가 두 번째로 방에서 얘기하는 장면을 보죠. 뒤에서 정신없이 괴물과 싸우고 있어서 집중이 안 되는 그 장면 말입니다.
이 장면의 '정신 없음'은 의도되었음이 분명합니다. 현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일(스마트폰을 본다거나)을 동시에 하다가 망하는 것과 함께, 고결한 슈퍼맨조차도 나의 사적인 일이 있을 때는 밖에서 목숨을 걸고 괴물과 싸우든 말든 중요하지 않다는 인간의 면모를 풍자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로이스와 슈퍼맨이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이 장면에서는 뒷배경에서 난리법석을 떠는 괴물과 그린랜턴이 끊임없이 시선을 빼앗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감독과 각본가의 풍자야말로 영화의 본질이며, '슈퍼맨'이란 인물과 그들의 메인 스토리는 곁다리란 얘기입니다.

다른 모든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슈퍼맨 이야기는 껍질일 뿐이고, 전혀 다른 캐릭터와 전혀 다른 메인 스토리를 갖다가 붙여도 감독과 작가의 메시지는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저는 '슈퍼맨'을 보러 영화관에 간 사람이고요.
이게 정말 아쉬운 다른 이유는, 이 영화가 설령 2편이 나온다 하더라도 이미 이런 식으로 만들어 버린 캐릭터를 재활용하는 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차기작에 나오더라도 1편의 단편적이고 도구였던 면모는 계속 기억에 남을 겁니다. 루터는 2편에서도 증오 키보드 워리어일 뿐이죠. DC가 슈퍼맨을 왜 이렇게 다시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가요.
이 영화가 좀 산만한 것 같다는 평을 관람 전에 보았는데, 초반부에 "확실히 산만하다"고 느꼈지만, 조금 지나서부터는 그 산만함조차 계산된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일정 부분의 산만함은 분명히 요즘 젊은 세대가 (스마트폰 등의 이유로) 세상을 산만하게 사는 것을 풍자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개와 애호가에 대한 풍자
제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슈퍼 개'인 크립토 때문입니다.
세상에 슈퍼 개라니! 영화에 나온다니!

문제는 이 개는 막말로 하자면 '미친 개'입니다. 슈퍼맨의 힘을 휘두르는데 흔히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똑똑하지도 않고 난장판을 벌이며 무언가를 물고 부수는' 개죠.
이 개에게 문제가 있다는 건 처음부터 등장하지만, 작가가 이 '문제견'을 개그 코드로 쓰고 싶어 했단 건 다들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미 사르카즘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크립토 역시 순수하게 개그로 볼 수 없게 되는 게 문제죠. 또 다른 비꼼의 심볼일 뿐.
개가 날뛰는 장면 자체도 그렇지만, 작가가 더욱 넣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그런 개를 옹호하는 대사들'일 겁니다. "개가 좀 그러면 어때?" 같은 의도를 가진 대사들 말이죠.
영화의 원래 버전에선 크립토가 얻어맞는 장면이 있었는데 반응이 너무 안 좋아서 삭제했다는 것 같습니다. 이 비하인드 스토리는, 개는 무조건 옳고 개가 사람보다 중요하다는 식의 풍조와 영화 속의 풍자를 그대로 반영하는 사건이기도 할 겁니다. 사람은 얻어터져도 되지만, 개는 맞으면 안 되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냥 순수하게 슈퍼 개를 보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풍자를 보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그럼에도 높은 완성도
그럼에도 이 영화가 높은 완성도를 가졌다는 건 인정하며, '슈퍼맨' 영화가 아니라고 칠 경우 감독과 각본가는 자신들의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했다고 생각됩니다.
확실히 요즘 세상은 디지털 기기가 인간의 성장 과정에 직접 개입하면서 단순한 세대 차이 이상으로 이상해졌을 지도 모릅니다.
단지 저는 슈퍼맨 영화를 보고 싶었던 거였기에..., 모든 장면과 대사에서 펼쳐지는 사르카즘의 폭풍 속에서 처음엔 정말 힘들고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중간의 어느 시점부터 "이 정도의 일관성과 계속된 메시지"를 보고 있자니 설득이 되었기에 분노를 내려놓고 편하게 영화를 봤습니다. 작가가 어디까지 하는지 보고 싶었고, 마지막까지 했죠.

결말을 어떻게 지을지 궁금했는데, 과연 왕도의 결말입니다.
"앞에서 무슨 메시지를 던졌든, 무슨 일이 있었든, 사랑하면 다 해결된다. 해피엔딩."
실제로 같이 보신 분이 이 엔딩에 만족하셨고, 모든 걸 무지성으로 감쌀 수 있으니 왕도의 클리셰입니다.
거의 모든 장치가 다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었고 그렇기에 잘 만든 영화입니다. 슈퍼맨 영화가 아니어도 되었단 게 문제지만요.
어쩌면 제가 이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봐서, 분석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런 거에 더 민감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에 비해서 말이죠. 나이를 먹을수록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결론
"슈퍼맨 영화지만, 슈퍼맨 영화가 아닌, 가짜 슈퍼맨 영화"
"하지만 완성도는 확실히 높고 감독과 작가의 목표가 달성되었다"
그 안에서 어디까지 공감하고 어디까지 분석하며 어떤 재미를 느낄지는 각자 취향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리 이런 영화란 걸 알았다면 실망하지 않았을 텐데, 그냥 어린 시절 추억의 슈퍼맨을 보고만 싶었던 저에겐 좀 힘든 영화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같이 본 셋 중 둘은 재밌게 봤다고 합니다. 별로 동의가 되진 않습니다만 취향이니(?).
어릴 때 TV에서 본 추억의 다이아몬드 씬
어쩌면 감독과 각본가는 슈퍼맨 메인 스토리를 버릴 생각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르카즘과 슈퍼맨을 병행해서 성공시키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적어도 DC는 그랬을 테고요.
개인적으로는 둘 다 살리는 건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작품 속에는 그 작품의 의도와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의도와 메시지는 명백하게 풍자였고, 나머지는 도구였다는 것이 제 평가입니다. '진지해야만 하는 장면'을 방해하는 것에서 그게 드러나죠.
사르카즘의 폭풍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를 못해서 과학적으로 너무 말이 안 되는 오류들이 사소하게 느껴졌을 정도입니다. 예컨대 슈퍼맨이 반양성자의 밀집체 속에 빠졌는데 멀쩡해요.
반(反)양성자―반물질의 한 형태로 물질과 만나면 쌍소멸하며 폭발함―가 뭔지 작가가 몰랐나 봅니다.

아, 그리고 번역 얘길 하나 하고 싶은데, 이젠 번역가들조차 '사살(射殺)'이란 단어가 뭔지 모르게 되었다 보더라구요.
'사살(射殺)'이란 단어는 '쏴서(射) 죽인다(殺)'는 뜻으로, 총이나 활로 쏴서 죽였단 뜻입니다. 웹소설 작가들도 많이 그런데, '사살'을 단순히 '죽이다'라는 뜻으로 알고 있더라구요.
참살/척살/추살/독살/교살/타살/격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죽이는' 단어들이 있고, 그냥 무난하게 격파/격퇴/퇴치/진압 등의 단어를 써도 되었을 텐데 말이죠. 한자 교육을 없앤 부작용이 정말...
제가 영화 보고 웬만해서 이 정도까지 분석하며 비평은 잘 안 하는데, 충격이 컸네요. 6년 만에 다시 가기 시작한 영화관이라 그런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영화에 작가의 메시지가 잘 담겼단 점에서 완성도가 있음은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정말 못 만든 영화'를 욕하고 나온 것은 아니라서 셋이 기분 좋게 잘 봤습니다. 영화 음악도 추억이 잘 살아 있어서 좋았네요.
혹시 추천을 하느냐 안 하느냐로 묻는다면, 하나를 꼭 골라야 한다면 추천하진 않겠습니다.
쏟아지는 작가의 장치들 속에서 정신이 혼미한 채로 봐서, 언젠가 나중에 다시 한번 보면서 정리를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과연 다시 봐도 똑같이 느낄지는 좀 궁금하네요-_-;











어릴 때 TV에서 본 추억의 다이아몬드 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