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을 말할 때 흔히 로마 제국을 '과거의 유산'으로 취급하지만, 실제로는 중세에도 로마가 존재했습니다. 동로마 제국은 로마에서 파생된 새로운 제국이 아니라 그냥 로마의 절반이었거든요.
로마 제국과 황제는 중세 시대에도 동로마 제국으로서, 그리고 부활한 서로마 제국으로서 계속 유지가 됩니다. 1부에서 이야기한, '유럽의 황제는 로마 제국에서 시작해서 로마 제국에서 끝난다'라는 말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3. 중세 : 서로마 제국과 황제를 부활시킨 기독교
(3-1) 로마 멸망 이후의 기독교
서로마 멸망 후 유럽은 게르만족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배 구도가 형성된다. 영국을 차지한 앵글로색슨족, 프랑스와 북부 이탈리아, 독일을 차지한 프랑크족 모두 게르만족이었으며, 이베리아 반도(스페인),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러시아 지역으로 게르만이 모두 뻗어나가며 새로운 나라를 세우거나, 큰 영향을 줬다. 게르만이 유럽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Migration_Period
초록색 훈족과 빨간색 게일족(Gaels) 빼고 나머진 전부 게르만족이다.
서로마 멸망의 기폭제가 되고 유럽 전체에 새로운 국가를 세운다.
한편 기독교는 4세기경 로마 제국의 국교로 지정됐었는데, 서로마 멸망 후엔 동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권력구도가 재편되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에 거점을 둔 로마 가톨릭 교회는 힘을 잃고서 동로마와 갈등을 빚었고, 주변의 위협에 전전긍긍하는 처지였다.
8세기에 로마 교회는 랑고바르드 왕국의 위협 속에 놓이는데 동로마에선 도움을 주지 않는다. 결국 로마 교황은 프랑크 왕국의 궁재(宮宰)였던 페펭과 손을 잡는다. 751년 페펭은 로마 교황의 허가를 받고서 킬데리크 3세를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그후 로마 교회와 동맹을 맺고 이탈리아 원정을 감행, 랑고바르드로부터 라벤나 지역을 탈환하여 로마 교회에 기증한다. 이 기증은 훗날 로마 교황령의 시작이 된다.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을 페펭이 로마 교회에 기증했다.
파랑이 랑고바르드 왕국 영토. 주황은 동로마 제국 영토.
빨간색 표시의 좌측 아래 주황이 로마 교회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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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교황령에 대한 보답으로 도유식(塗油式, 교회의 축성 의식)에서 페펭에게 직접 축성을 해주며 '로마의 귀족(Patricius Romanorum)'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이로써 기독교를 보호하는 권한이 프랑크 왕국에 공식적으로 부여되었고, 페펭은 이것을 기반으로 왕권을 확고하게 다진다.
(3-2) 서로마 황제의 부활
이후 페펭의 아들 샤를마뉴(카롤루스)는 왕이 된 후 유럽 대부분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프랑크 왕국 최대의 성세를 이룬다. 하지만 힘과 별개로 동로마 제국에 명분적으로 밀리는 처지였는데, 로마 제국은 유럽에서 전설이 되어 상징적인 위치를 가졌기 때문이다. 동로마는 서로마 멸망 이후 유일한 로마 제국이자 황제로서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유럽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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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마뉴 대제가 죽을 무렵의 프랑크 제국(Frankish Empire)의 영토.
교황은 자신들을 수호해 줄 뒷배를 원했고, 샤를마뉴는 로마 제국과 기독교의 권위를 원했다. 넓어진 영토를 안정시키고 동로마와 대등해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서기 800년, 로마 교황 레오 3세는 사를마뉴에게 서로마 제국의 황제의 관을 씌워준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교황이 멸망한 서로마 제국의 황제를 부활시켰을까?
대관식보다 조금 앞선 8세기 중엽, 로마 교회에서 '콘스탄티누스의 기증(Donatio Constantini)'이라는 중세 최대의 위조 문서가 만들어졌다. 먼 옛날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당대 교황에게 세례를 받고 나병이 치유된 보답으로 여러 권리를 선물했다는 내용이다. 원래 콘스탄티누스는 교황에게 황제위를 양위하려고 했지만, 교황은 사양하고서 황제의 관을 받았다가 다시 황제에게 돌려주었다. 그러자 황제는 로마 교회가 모든 교회의 우위에 있으며, 로마시와 여러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넘겨주고, 황제의 문장과 라테라노 궁을 기증한다고 문서를 써 주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다.
이 위조 문서는 이후 로마 교회가 동방 교회보다 우위에 있단 주장의 근거가 되며, 로마 황제 역시 교회의 아래에 있다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중세 내내 유용하게 사용되다가, 15세기에 위작설이 처음 등장하고 18세기에 위작임이 확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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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장의 등장으로 이탈리아의 로마 교회는 일약 유럽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이 권리에 대한 해석을 이용해서 '로마의 황제를 정할 수 있는 권리'를 발동시킨다. 다시 말해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는 명분상 '프랑크 제국의 황제'가 된 게 아니라 공석이었던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것이다.
그 후 샤를마뉴 대제는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불러오며 우리가 생각하는 중세 유럽의 기반을 만들어냈다. 비록 샤를 대제 사후에 프랑크 제국은 셋으로 찢어지고 다시는 회복되지 못했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후 황제 결정권과 우위권을 이용해서 중세 유럽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 성공한다.
4. 중세 유럽의 황제(Kaiser / Tsar / Emperor)
(4-1) 중세의 로마 : 신성로마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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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프랑크 왕국(843)
샤를마뉴 대제의 죽음(814) 이후에 프랑크 제국은 셋으로 쪼개졌고, 중세 유럽은 혼란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약 150년이 지난 962년, 오토 1세의 대관식과 함께 신성 로마 제국(962-1806)이 시작된다. 오토 1세(912-973)는 동프랑크의 왕으로 즉위한 후 내전에서 승리하고 끊임없이 영토 확장을 펼쳤다. 슬라브족과 마자르족을 격퇴하고, 이탈리아를 점령한 후 교황청을 구원하며 이탈리아의 왕이 됐다.
마침 프랑크 왕국을 잃어버린 로마 교회는 새로운 뒷배가 절실했고, 962년 로마 교황은 오토 1세에게 황제의 관을 씌운다. 이로써 재차 끊겼던 서로마 황제의 자리가 다시 부활했고, 이탈리아 왕국과 독일 왕국이 하나가 되어 중세의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했다. 신성로마제국은 13세기 이전에는 그냥 '로마 제국'이라고 불렸다. 이걸 진짜 로마 제국이라고 생각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명분을 가진 교회가 그렇다고 정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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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2년의 신성로마제국
신성로마제국은 (흔히 말하는) 중세 유럽 유일의 제국이었다. 봉건제 연합체였으며 투표로 황제를 선출하는 나라였다. 황제의 힘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로의 끊임없는 견제 때문에 중국의 황제처럼 절대권력을 휘두르지도 못했다.
여기서 지금까지 계속 얘기해 온 중세 유럽의 '황제'와 '제국'의 개념에 대해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유럽에서 '제국'이란 로마 제국 그 자체를 부르는 말이며, '황제'란 로마의 황제를 부르는 말이란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은 교황의 명분 하에 서로마 황제로 인정받았고,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강력한 제국이 갖추어야 할 그 이외의 요소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중세의 황제'는 로마의 뒤를 이은 명분상 가장 높은 지위였지만, 실질적인 면에서는 주변 왕국의 왕과 큰 차이가 없었다. 반대로, 주변 왕국에서도 자국이 강대해지더라도 황제라 칭할 수 없었다. 황제란 로마의 황제를 말하는 것이지 강력한 국가의 지배자를 부르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토 1세. 스트라스부르크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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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중세 이후의 황제 : 러시아와 나폴레옹
모스크바 대공국의 이반 4세는 1547년 대공의 위에 오르면서 러시아 최초로 공식 직함을 차르(Tsar)로 정했다. 차르는 앞서 말했듯 카이사르가 변형된 호칭이다. 이 호칭은 그의 조부 이반3세가 1472년에 동로마 마지막 황제의 조카딸인 소피아 팔레올로기나와 결혼한 것에 근거한 것이다. 결혼을 통해 멸망한 동로마의 정통성을 계승했고 그 손자인 자신은 동로마 황제(Tsar)라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인정받지는 못해서 결국 '러시아 차르국(Tsardom of Russia)'이라고 불렸으나, 이렇듯 황제 칭호와 제국의 이름은 로마의 후계자란 명분이 있어야 외쳐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후 모스크바의 동방 정교회가 독립하여 러시아 정교회가 되는 등 동로마의 뒤를 이으려는 움직임이 계속된다.
시간이 한참 지난 1804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신성로마제국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황제를 자칭했다. 이 무렵에는 황제=로마 황제란 개념이 흔들린 상태였고, 이후 제국주의 시대에는 제국이란 단어가 로마 제국이 아닌 여러 식민지 왕국을 거느린 거대 제국을 부르는 말로 바뀐다.
5. 제국주의 시대와 근현대의 학문
오늘날 '황제'는 제국의 통치자란 뜻으로, '제국'은 여러 영토와 민족으로 구성된 정치 집합체란 뜻으로 사용된다. 흔히 판타지 소설에서 사용되는 뜻도 이것에 가까우며, 제국에 '속국'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이런 정의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 속의 역사적 고증을 따질 때는 시대에 따른 단어의 뜻의 변화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국을 의미하는 empire란 단어의 형성 과정을 보면, 14세기 중엽에 생긴 영어 단어로 원래는 '황제(emperor)가 통치하는 영토'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는 곧 신성로마제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18세기 말이 되면 '정치 연합체'라는 뜻으로 처음 사용된 기록이 등장한다. empire가 로마 제국만을 부르는 단어에서 시간이 흐르며 다른 뜻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나폴레옹 이후 더욱 가속되고, 19세기 말부터는 제국주의(Imperialism)라는 말까지 등장하게 된다. 이후 식민주의(colonialism)와 의미가 혼용되면서 지금의 '제국'의 의미로 정착한 걸로 보인다.
또한 근현대에 이르러서 여러 학문이 체계적으로 정립되면서, 역사학 또한 여러 용어를 정의하고 전세계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국가는 [씨족사회 → 부족 → 국가 → 제국]의 발전 순서를 따른다. 인간 사회는 언제나 더 작은 집단을 집어 삼키면서 커졌다. 한자문화권이나 유럽이 아니라도, 예컨대 이슬람권의 '샤한샤'나 '파디샤' 같은 개념도 뜻을 보면 '왕중의 왕'이며 주변을 잡아먹고 커졌다.
학문적으로 '제국'이란 용어를 오늘날의 뜻으로 정의한 학자들을 봐도 20세기 이후의 학자들이다. 전세계의 역사를 보면서 보편적 개념을 정립하고 용어를 정의하다 보니 과거의 단어와는 뜻이 바뀐 게 아닐까? 이건 마치 '민족'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정의한 게 19세기 이후인 것과 유사하다. '종교' 같은 단어도 중세와 지금은 뜻은 다르다.
동양은 어떨까? 제국(帝國)이란 단어는 원래 동양에는 없던 단어였다. 우리가 중국의 과거 왕조들을 '제국'이라고 부르는 건 근대에 와서 사용하게 된 말이다. '제국'이란 단어는 19세기에 일본이 empire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단어가 중국에 적용되어서 '대청제국(大清帝国)'이라고 부른 것도 일본이 처음으로 부른 것이라고 한다.
이런 개념들이 뒤섞이며 오늘날 '제국'과 '황제'는 한 세트가 된 개념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이것은 오랜 세월과 함께 단어에 여러 뜻이 누적되고 변형되었으며, 훗날 여러 지역에서 쓰는 말이 상호번역되고 통합되면서 나온 결과이다. 이러다 보니 특정 시대를 말하려고 하면 오늘날의 일반적인 개념과 충돌하면서 혼란이 발생하고 고증적 오류가 생겨난다.
6. 동양 VS 서양의 황제
과거의 다른 두 지역을 비교하니 계속 번역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우리가 지금 쓰는 말, 현대와 과거의 말, 서로 다른 지역의 말의 의미가 다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은 고증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번역어라는 게 일상에서는 편리하지만 이렇게 보면 꽤나 혼란스럽다. 서로 다른 개념을 동일시하기 쉬운 것 같다.
7. 마치며...
판타지의 황제와 제국은 사실상 중국의 황제와 매우 비슷하며, 식민지나 왕국을 세력 하에 둘 경우 제국주의 시대와 유사한 개념이 된다. 중세 유럽의 황제와는 매우 다르다. 그럼 이게 문제가 될까? 작가의 창작의 세계이니만큼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가 '유럽'이라는 비유를 쓰면 그때부턴 문제가 된다. 고증이 들어가니까.
요는 작가가 설정을 만들어 낼 때 개념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그리고 작품 안에서 유럽과 직접적인 비교/비유를 하는지, 제국이란 개념이 만들어지는 역사적 배경이 말이 되는지 같은 부분 정도는 생각해 볼만 하달까?
판타지 물을 보면 유독 한국에서 나오는 판타지에 황제가 자주 나온다. 일본쪽 판타지는 보면 생각 외로 왕이 많이 나온다. 황제라고 하면 멋있다. 최고로 높다는 느낌이 드니까. 그런데 이게 중국을 동경한 한자 문화권의 영향이나 제국주의 시대의 강렬한 인상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대부분의 스토리는 왕이라고만 해도 되지 않나. 한국 판타지에 나오는 황제란 일종의 옛 시절의 여러 문화와 개념이 축적된 환상의 존재같다. 그런 의미에서는 중세 유럽에서 전설로 취급된 로마 제국과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