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과학의 시대다. 과학이란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하며, 과학이란 말을 붙이기만 하면 모든 게 믿을 만해진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작 현대 과학이란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고대나 중세에 '과학'이 있었다고는 잘 말하지 않는다. 웹소설을 보면 과거의 미개한 인간들에게 현대 과학의 맛을 보여주며 과학이 없는 시대라고 단언한다. 대체 과학이 뭐길래 과거의 기술과 지식은 과학이 아니라고 말할까? 고대와 중세에도 당시의 기술과 기계 장치가 존재했는데 말이다.
1. 과학의 정의
과학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과학이란 자연을 관찰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 세계의 구조가 무엇인지, 이 세계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를 탐구하고, 나아가서 인간이나 우주가 왜 존재하는지 이 세상의 실체를 탐구한다.
그리고 '현대'의 과학은 여기에 중요한 단서가 하나 더 붙는다. 바로 실험을 통해서 증명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 글에서 말하는 과학은 자연과학과 그를 응용한 분야로 한정짓겠다.)
2. 과학과 기술
한국어에서 '과학'이라고 말하면 그건 곧 첨단 기술을 의미할 때가 많다.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과학 기술'이란 식의 단어가 등장할 때 테크놀로지(technology)라고 말하지 사이언스(science)라고 말하진 않는다. 아마 과학이란 단어가 늦게 들어와서 구분이 모호해진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순수과학을 등한시하는 풍조 때문이거나)
과학과 기술을 이야기할 때 가장 흔히 말하는 분류가 아래의 셋이다.
순수과학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고 정립하는 것까지만을 말한다. 응용과학은 순수과학의 지식을 실제로 인간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궁리한다. 그리고 기술은 그걸 구현한다. 응용과학이 순수과학과 기술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플레밍의 왼손법칙은 자기장과 전류, 그리고 물리적 힘의 방향 관계를 설명한다. 이건 자연계의 법칙으로 순수과학이다. 플레밍의 왼손법칙을 활용해서 전기 발전에 대한 이론이 탄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걸 기반으로 실제로 발전기나 발전소를 설계하고 만들어 낸다. 다른 예로는 생물학은 순수과학이고 의학은 일종의 응용과학 분야이다.
플레밍의 왼손법칙.
이것만 알면 원시시대에 가서도 누구나 발전기나 모터를 만들 수 있다.
그걸 제대로 제어하고 통제하는 건 별개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실 이 세 분야의 구분은 논란이 있는 편이다. 특히 응용과학/공학/기술의 경계에 대한 논란이 상당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자리에서는 과거의 과학과 기술을 논하고 있다. 과거엔 과학 지식이 없어도 기술만 존재할 수 있었다. 특히 과거 사회는 기술자를 천시하거나, 천시하지 않더라도 과학의 뿌리였던 자연철학자들과 연계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자연철학을 하는 귀족이 대장장이와 금속에 관한 지식을 논할 것 같지는 않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과거에는 '자연을 탐구하는 학문'과 '기술'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실상 당시의 자연에 대한 지식은 정확하지 않은 게 더 많아서 실용적인 기술에 적용할 수 없는 것도 많았고 말이다.
3. 현대 이전의 과학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SEP)에 올라와 있는 종교와 과학(Religion and Science)이란 게시글을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내용이 나온다. 종교와 과학이 오랜 분쟁을 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같은 분야를 다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교도 세상을 설명하려고 했고, 과학도 세상을 설명하려고 했다.
과학(science)이란 단어는 19세기가 되어서야 오늘날의 의미로 사용됐다. 본래는 그리스의 자연 철학에서 기원한 철학의 한 분야였다. 오늘날 우리가 철학자라고 인식하는 많은 인물들이 과학자로서 세상의 모습을 논하며 진리를 탐구했으며, 반대로 과학자라고 생각하는 많은 인물들이 당시엔 철학자라고 불렸다. 예를 들어서 뉴턴은 자연철학자였다.
(3-1) 고대~근세의 과학
과거의 자연에 대한 이해와 지식은 '철학적'인 게 많았다. 예컨대 기원전6~7세기 경의 자연철학자 탈레스는 세상의 본질이 물이라 여겼다. 아낙시메데스는 공기라고 이야기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라고 생각했다.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오늘날의 원자와는 좀 다르다)을 주장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엠페도클레스는 세상이 불/물/흙/공기의 4가지 원소로 이루어졌다는 4원소설을 주장했다.
17세기까지 이어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원소설.
아니 판타지란 형태로 21세기에도 살아남긴 했나...
그 뒤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철학에 대해서 많은 의견을 남겼는데 그 영향력은 뉴턴 이전 시대까지 이어졌다. 4원소설을 완성해서 널리 퍼트리고, 천계를 이루고 있는 에테르(아이테르)가 제5원소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4원인론으로 자연학을 설명했고, 자연의 생성과 운동은 궁극적으로 모두 신의 뜻이라고 정의했다. 4원소설을 기반으로 의학 분야에서 근대까지도 영향을 발휘한 4체액설을 전파시켰다.
그리스의 자연철학은 이슬람 과학과 함께 중세까지도 당연한 지식으로 통용되었다. 특히 중세 시대에는 연금술이 퍼졌는데, 이 연금술의 궁극적 목표가 '세상의 진리와 본질'을 찾는 것이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오늘날의 과학자들(특히 물리학자들)이 추구하는 것과 같은 목표이기 때문이다.
고대와 중세의 과학이란 이런 영역이었다. 철학적 사고와 종교적 세계관이 합쳐져서, 오늘날 보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과학 지식의 발전은 관측 도구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3-2) 르네상스와 과학 혁명
중세에는 과학적으로 대단한 변화가 없었지만, 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르네상스가 되면서 기존과는 다른 움직임이 시작된다. (그렇다고 급변한 건 아니고 수백 년에 걸친 점진적 변화였다.)
특히 17세기에 들어서는 현대 과학의 출발점이라고 말해지는, 오늘날 과학 혁명이라고 부르는 움직임이 있었다.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실험을 통한 경험과 귀납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후로 실험 철학(experimental philosophy)이라는 분야가 생기면서 (오늘날에 비하면 미숙하지만) 실험을 통한 증명이 시작되었다. 철학이 발전하면서 데카르트 등을 중심으로 합리주의와 연역법이 발전했다. 당시엔 서로 대척점에 섰지만 연역법과 귀납법은 19세기 이후의 현대 과학의 중요한 근간이 되었다.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Francis_Bacon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자연철학자.
1561-1626
또한 수학이 과학의 언어로 채택되고, 국가적인 과학 학회가 설립되면서 근대 과학이 태동했다. 특히 아이작 뉴턴으로 대표되는 고전 물리학은 아인슈타인 이전까지의 과학적 기반을 닦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과학'이란 분야는 없었고, 당시의 과학을 '현대 과학'으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유가 뭘까?
4. 현대 과학과 과학적 방법
19세기가 되자 철학 대신 과학(science)이란 용어를 학문의 이름으로 삼고 비과학 분야와의 경계를 확정지었다. 철학자와 과학자도 구분됐다.
현대 과학이란 무엇이냐고 말하면 논쟁이 벌어지기 쉬운데, 논의의 범위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현대 과학'이란, 오늘날 우리가 '과학적'이고 '비과학적'이라고 말하는 것들의 구분에 대한 것이다. 뭐가 과학이고 뭐가 과학이 아닌가? 왜 옛날에 구축한 기술적/지식적 기반을 (현대적) 과학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연구 방법에 있어서의 결정적 차이가 뭘까?
그 기준은 바로 과학적 방법(Scientific method)이란 도구에 있다. 현대 과학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증명된 것들만을 이론으로 받아들인다. 과학적 방법이 뭘까?
① 자연을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뽑아낸 후, 데이터와 가설을 비교해서 결론을 낸다.
오늘날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이 방법이 19세기에 들어와서야 완성된 과학을 위한 도구이다(17-18세기엔 실험을 통제하는 것에 대해 잘 몰랐다.). 가설은 실제 실험을 통해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건 과학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초능력, 마법, 텔레파시 같은 것들 모두 실험을 통해서 경험되지 못했다. 그래서 과학이 아니다.
그럼 실험을 통해 증명하면 다 과학 지식이 될까? 아니다.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단서가 붙는다.
② 누구나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조건 하에서 실험했을 때 그 누구라도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여러 사람에게 검증되어야 한다.
재현할 수 없으면 과학이 아니다. 어느 한 사람이 실험에서 투시라는 능력을 입증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조건 하에서 실험을 모두 재현할 수 없다면 그건 과학이 아니다.
현대에 과학이라고 부르는 지식은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고, 누구라도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지식을 말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인류가 이 기준을 정립할 때까지 1만 년(혹은 30만 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걸렸다. 오늘날 현대 과학이라고 부르는 지식과 법칙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검증된 것이고, 과학적 방법을 통과하지 못한 모든 것들은 과학이 아니다(혹은 일부는 알지만 아직 잘 모른다고 표현한다.). 과거의 지식을 현대적 의미에서 과학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5. 현대 과학에 대한 오해
(5-1)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미신이다. : 사실이 아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없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없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만큼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신의 존재는 현재의 과학에선 유무 자체를 증명할 수 없다. 신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인 대답이 뭘까? '알 수 없다'이다.
(5-2) 과학 이론과 법칙은 절대적이다. : 그렇지 않다. 현재의 과학 지식이란 건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얻은 지식과 비슷하다. 코끼리(자연)라는 거대한 진리 앞에서, 과학자란 장님들이 관측과 실험이란 수단을 통해서 부분적인 형태를 측정해 보고 추측한다. 건드려 본 부위의 모양이 증명되면 법칙화한다. 하지만 이건 진리를 직접 본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실험 조건이 보완되거나 관측 도구가 발전하면 더 자세히 형태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기술력과 관측 도구로 측정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과가 검증되더라도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검증한 것일 뿐 그게 진짜 진리인지는 알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자가 물질의 최소단위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원자보다 작은 물질을 많이 알고 있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은 다시 쿼크로 이루어진다. 소립자의 세계가 있고, 초끈 이론은 그보다도 아랫 단계를 이론적으로 다룬다. 뉴턴은 지구 상의 운동을 방정식으로 증명했지만, 아인슈타인 이후 부정확한 방정식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상대성 원리는 불변일까? 모른다. 우리가 쌓은 과학 지식은 미래에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수준까지만 보고서 그 한계 안에서 규칙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게 잘못된 헛된 과정은 아니다. "그 조건에서 그 방법으로 측정할 때는 그 결과가 나온다"라는 사실은 검증된 것이니까. 훗날 이 지식이 잘못된 것이라 밝혀지더라도, 그 이전에 쌓은 지식이 있었기에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21세기에 가능한 기술 수준에서 최선을 다 하면 된다.
(5-3) 현대 과학은 대부분의 것을 알게 되었고, 미정복지는 이제 조금 밖에 없다. : 모르는 부분이 압도적으로 많다. 밀림 속이나 바닷속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다. 뇌처럼 복잡한 기관이 아니라도 우리 몸의 생리에 대해서 여전히 많은 부분을 모른다. 진화와 유전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지진 같은 자연 현상에 대한 것도 잘 모른다. 우리가 4대 기본 힘이라고 말하는 중력도 뭔지 정확히 모른다. 웜홀과 평행세계까지 갈 것도 없이, 우주를 가득 채운다는 암흑 물질이란 것도 존재할지 확신이 없다. 말하자면 정말 끝도 없다. 영혼 같은 개념이 나오면 더욱 심각해진다. 있다고도 없다고도 증명이 불가능하다.
(5-4) 논문이 있으니 이 말은 맞다. : 논문 한 편은 그저 연구자가 가설을 검증하고 결과를 쓴 것에 불과하다. 과학은 '재현성' 즉 많은 사람이 똑같은 결과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100명이 100번의 같은 결과를 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수정되어야 하고, 최소한 잘 모름을 인정해야 한다. 논문 몇 편이 자극적인 말을 한다고 그 말이 맞는 건 아니다. 연구자도 사람이라 틀릴 수 있다. 특히 연구는 투자자의 의도를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연구도 직업이니까. 기업에서 돈을 대준 연구 결과가 완전 중립적일까? 거짓말은 안하겠지만 특정한 부분만 보여주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6. 현대 과학 : 현대의 가장 거대한 종교
2017년부터 방영했던 '아메리칸 갓 (American Gods)'이란 미국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에서 참 인상적인 신이 나와서 아주 유쾌했는데, 바로 첨단 기술의 신(God of Technology)이다. 이 드라마를 계속 못 봤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는데, 현대인의 종교인 '과학'을 잘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했다.
아메리칸 갓의 기술의 신.
사실 이 드라마는 처음 몇 화 보고 안 보긴 했는데, 기술의 신이 나왔을 때
"그래 현대의 과학과 기술에 대한 맹신은 종교지."하면서 아주 유쾌해 했던 기억이 남는다.
21세기 오늘날 '과학'이란 말은 '믿음'과 동격에 가깝고 종교적인 측면이 있다. 21세기 현대 최대의 종교가 바로 '과학교'랄까.
온갖 증명되지 않은 건강 제품이 '과학'과 '실험'의 거짓 탈을 쓰고서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간다. 우유를 먹으면 죽는다는 소문이 돌고, 감기약을 먹으면 감기가 늦게 낫는다는 말이 돌아다닌다. 모두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심지어 강입자 충돌기를 돌린다고 하면 블랙홀 지구 멸망설이 등장한다. 일상에서도 그렇다. 언쟁을 하다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과학'이란 수식어가 붙으면 뭔가 더 말하기 어려워진다. 왠지 모르게 그건 맞는 말처럼 들리니까.
현대의 우리는 스스로 합리적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인간은 육체와 본능에 종속된 동물이고 중세나 현대나 변한 것이 없는 똑같은 사람이다. 1999년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근거로 한 세계 종말론은 전 세계에 정말 엄청난 공포를 안겨주었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종말이 오기 전에 집단 자살을 했고, 심지어 한국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 현대인이라고 뭐가 다른 게 아니다. 마야 달력이고 어쩌고... 과학, 실험, 증거 같은 단어는 이런 미신에 붙기만 하면 강한 설득력을 준다.
7. 마치며...
인류는 오랫동안 기술을 발전시키고 자연을 탐구했지만, 과학이란 분야가 현대적 의미로 등장한 것은 19세기부터다. 현대 과학은 과학적 방법이란 도구를 사용한다. 실험을 통해서 가설을 검증하고, 그걸 누구나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과학=기술 이란 건 틀린 개념이다.
'SF' 카테고리에서 첫 글로 과학에 대해 이야기해 봤다. 창작물에서는 많은 과학적인 부분들과 비과학적인 부분을 다룬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작가가 생각하는 '과학적'인 개념이 너무나 21세기 지구에 맞추어져 있어서, 창작된 가상 세계 안에서 그게 '과학'인지 '미신'인지 작가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해 한 번 얘기해 보고 싶었다.
언젠가 미래에는 과학을 정의하는 기준이 또 달라질지도 모른다. 상상은 잘 안 가는데 영원한 건 없으니 오히려 변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사족인데, 사실 비전문가가 과학적으로 뭔가를 구분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온갖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데, 그게 오히려 옳은 것을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온갖 과장 광고가 날뛰고 언론도 거기에 한 손을 얹는다. 자극적인 게 잘 팔리니까. 인터넷은 그런 과장과 소문을 끝없이 재생산하고 증폭시켜서 퍼트린다.
대표적으로 최근 유행했던 새우 기름 식품을 보면, 몸 밖에서 하는 실험이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증명이 절대 될 수 없음에도, 광고의 실험은 마치 진짜인 것처럼 보인다. 실험 환경과 조건, 그리고 생물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없으면 착각하기 쉽다. 인지질은 일종의 계면활성제이고 몸 밖에서 실험하면 당연히 기름이 녹으니까. 하지만 그걸 먹었다고 혈관에 새우 기름이 펑펑 돌면 그건 고지혈증이겠지. 소화라는 과정이 있고 몸의 항상성이 있는데도 그러면 어딘가 망가진 거다. 애초에 인지질은 세포막의 기본 성분으로 우리 몸이 언제든지 합성할 수 있는 물질이고, 기름을 녹이는 계면활성제는 일상적으로 먹는 많은 종류의 식품에 잔뜩 들어 있다. 그걸 따로 추출해서 몸 밖에서 실험해 보면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 새우 기름은 공식적으로도 효능이 입증되지 못해서 건강 식품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 식용유와 똑같은 일반 식품이다.
우리가 배운 과학 지식 중 가장 중립적인 건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이다. 그것에 반하는 지식은 그런 측면이 있을 수도 있지만 굉장히 특이한 경우일 확률이 높다. 자극적 지식은 대개의 경우 예외적이거나 혹은 양면적이다. 지식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과 의견을 모두 종합적으로 봐야 하고, 무엇보다 전문가의 공식적인 의견을 보는 게 중요하다. 그런 걸 보더라도 혼자 공부하고 판단을 하려면 꽤나 오랫동안 깊이 공부를 해야만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해진다. 전문가 개인의 의견도 치우쳐 있을 때가 많으니까.
언제나처럼 얘기가 샜는데, 현대인은 과학 기술이란 단어를 너무 추종하고 있는 것 같다. 20세기 이후 이룩해낸 눈부신 모습에 반해 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