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웹소설 읽다가 핵 관련 설정 오류가 심하길래 이 글을 처음 쓴 게 반 년보다도 전이었습니다만, 세상이 시끄럽길래 그냥 묻어뒀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읽은 좀비 아포칼립스물에서도 또 다시 전술핵과 전략핵을 구분을 못하길래 글을 다시 꺼냈네요. 정세와 무관하게... 그냥 지식이란 관점에서 올려보겠습니다.
이번 연재 이후에 핵에 대해 다시 이야기할 일도 없을 것 같아서 2부로 나누겠습니다. 1부에선 전술핵과 전략핵의 차이를 알아보고, 2부에선 핵이란 무기 자체에 대해서 조금만 더 파고 들겠습니다.
0. 들어가며 : 핵폭탄과 창작물
일견 핵폭탄은 판타지 소설과 별로 상관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여러 장르에서 핵폭탄, 혹은 핵폭탄과 비견되는 묘사가 종종 등장한다. 예를 들어 현대 지구적 요소가 등장하는 웹소설의 경우 핵이 꽤 자주 나온다. 아니면 SF가 섞인 판타지 소설에서도 핵을 이용한 묘사는 종종 등장한다. 그 외에도 주인공이 핵분열이나 핵융합 이론을 기반으로 한 마법이나 기술을 구현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주인공이 마법으로 산을 날려버리는 경우도 있고, 강력한 무공으로 산을 부수거나 한다. 한국식 웹소설은 인간을 한참이나 넘어선 강력함을 좋아하고, 그 궁극적인 골인 지점은 '신(God)이 되는 것', 혹은 '신을 죽이는 것'이 90% 이상이다. 그러다 보니 굉장히 강력한 위력이 자주 묘사된다.
그런데 꽤 많은 경우 핵에 대해서 고증 오류가 있거나, 핵의 효과에 대해 잘 모르는 거나, 핵이 얼마나 강한지도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어떨 땐 너무 강하다고 생각하고, 어떨 때는 너무 약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전술 핵 /전략 핵' 같은 단어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핵폭탄에 대해서 써 보겠다.
이미지 출처 : https://de.wikipedia.org/wiki/Kernwaffe
1. 전술 핵무기(Tactical Nuclear Weapon)와 전략 핵무기(Strategic Nuclear Weapon)
(1-1) 전술(tatic)과 전략(strategy)
아마 살면서 '전술핵'이란 말을 '전략핵'이란 말보다 더 많이 들어 보셨을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주로 등장하는 용어가 '전술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웹소설을 보면 '전술핵'이 강력한 핵무기인 줄 안다.
원래 전술(tatic)이란 말은 전투에서 사용하는 기술과 방법을 말한다. 전략에 비해 단기적이고 작은 것을 말하는데, 아주 간단히 말하면 전술은 큰 흐름이 아닌 '낱개'다. 숲과 나무 중에서 나무에 해당하는 것이 전술이다. 그에 비해 전략(strategy)이란 전쟁을 이끄는 방법이나 책략을 말한다. 전술에 비해서 장기적이고 큰 것이며, 전쟁 전체를 말한다. 숲과 나무 중 숲에 해당하는 말이 전략이다.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전쟁에서는 졌다"라는 표현이 있다. 예컨대 10번의 전투 중에서 8번을 이기면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가 아닌 실전에선 2번의 치명적 패배 때문에 전쟁에서 항복할 수도 있다. 이럴 때 8번의 전투는 이겼지만 전체적인 전쟁에선 진 것이 된다. 전술적으로는 8번 이겼지만 전략에서 진 것이다.
한 번의 전투는 전술이고 (좌, 토탈워 삼국지)
전투가 모여서 전쟁 전체의 흐름이 되면 전략이다. (우, Hearts of Iron IV)
흔히 '전술'이란 표현이 '전략'보다 자주 사용되면서, 전술 무기/전술 병기라는 말이 꽤 멋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전술 부대라는 건 일반 부대를 말한다. 한국 남자가 군대에 갔을 때 몸 담고 있는 전투부대가 다른 말로는 전술부대이다. 전술병기란 한 개의 작은 전투에서 사용되는 바주카포 같은 작은 규모의 병기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한편 '전략'이란 전쟁 전체에서 승리하기 위한 큰 개념이다. 전투가 하나하나의 승패가 아닌 궁극적 승리로 가는 방법을 말한다. 그래서 '전략'이란 수식어가 붙으면, 전쟁 전체의 흐름과 승패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대단한 무언가가 된다. 전략 병기란 그 병기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전쟁 전체의 흐름이 바뀌는 수준의 강력한 병기를 말한다. 마치 핵폭탄처럼 말이다.
(1-2) 전략핵과 전술핵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핵폭탄'은 전략 핵 무기(Strategic Nuclear Weapon)를 말한다. 단 한 발의 위력으로 도시를 증발시키고, 전쟁이란 큰 그림을 좌우할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것이 전략핵이다. 이에 비해서 전술 핵 무기(Tactical Nuclear Weapon)는 위력을 엄청나게 줄여서 억제하고 작게 만든 핵폭탄을 말한다.
그런데 왜 '전술핵'이란 말이 더 자주 나올까? 이유는 전략핵은 너무 강력해서 가상의 시나리오에서조차도 등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흔히 헐리우드 영화에서 전술핵이 자주 나오는데, 보통 특수부대라거나 작은 목표를 무력화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전술 핵이 등장한다. 국가를 전복하거나 대규모 전쟁을 일으키는 게 목표가 아니니 말이다. 전략 핵이 등장한 대표적 영화는 터미네이터에서 세상이 멸망하는 장면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terminator.fandom.com/wiki/Judgment_Day
터미네이터3의 전 세계 핵폭격 장면.
전략 핵무기는 기본적으로 '니가 날 죽이면 나도 널 죽일 거야'라는 상호확증파괴(相互確證破壞)를 기반으로 삼는다.
쓰면 다 같이 죽으니까 아무도 쓰지 말자는 것.
'전술핵'에 비해 '전략핵'이란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핵폭탄'이란 건 기본적으로 전략 무기이기 때문이다. 핵이 전략 무기인 건 당연하기 때문에, 굳이 '전략핵'이라고 길게 부르지 않는다.
그에 비해 전술핵은 '특별히 약한 핵'을 따로 부르는 말이다 보니,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전술'이란 말을 더 자주 듣는다. 그래서 '전술'이란 말이 붙으면 뭔가 대단하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전술'이란 말이 붙으면 그냥 평범한 작은 전투용의 무언가를 말한다. '전략'이란 말이 붙으면 전쟁의 향방을 좌우하는 엄청난 무언가를 말한다.
2. 전략핵의 위력
1945년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히로시마에 세계 최초로 핵이 투하됐다. 리틀 보이(Little Boy)란 이름의 핵폭탄으로, 위력은 TNT 15킬로톤에 해당했다. TNT는 트라이나이트로톨루엔이란 폭발 물질의 약자로, 폭탄의 위력은 TNT를 얼마만큼 무게로 썼을 때와 같느냐로 말해진다.
15킬로톤은 15,000,000(천오백만)kg이다. 인류는 일본에 떨어진 핵의 위력과 여파에 경악했고, 그 이후로 지구 상에서 어떤 종류의 핵폭탄도 실전에서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리틀보이는 현재를 기준으로는 매우 약한 핵폭탄이다.
이미 냉전시대에 군비 경쟁을 거치면서 전략핵은 메가톤급 핵폭탄이 일종의 표준이 됐다. 냉전 종결 후 핵폭탄을 많이 해체하기도 했고 위력을 줄이는 것에도 합의를 봤다. 그래도 여전히 1메가톤을 기준으로 핵의 위력이 말해진다. 1메가톤은 1,000,000,000kg, 즉 TNT 10억 kg의 위력 말한다. 15킬로톤의 67배인데, 히로시마 원폭 사진을 보시면 이미 15킬로톤도 도시를 증발시킨 위력이었다. 현재 옆나라 중국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핵은 5메가톤급이라고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sar_Bomba
구름을 뚫고 성층권까지 올라간 차르 봄바의 버섯구름.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전략 핵 무기.
위의 사진은 소련이 만들었던 인류 역사상 최강의 핵인 차르 봄바의 실험 장면이다. 위력은 약 50~58메가톤으로 추정하고 있다. 폭발 지점에서 780km 떨어진 지점의 유리창이 박살났고, 55km 떨어진 마을의 모든 건물이 파괴됐다. 참고로 서울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의 길이가 36.78km다.
현재 이론적으로 기가톤급 핵폭탄도 만들 수 있지만, 누구도 인류 멸망을 바라진 않으니 실행에 옮기진 않는다.
3. 전술핵의 위력
전술 핵이 등장한 이유는 전략핵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다. 강대국 사이에서 전략 핵 무기가 날아다니면 인류 멸망으로 이어질 수준의 재앙이 된다. 그래서 아주아주아주 약하게 만든 핵무기가 전술 핵 무기이다. 전략핵은 다 같이 죽자고 국가 총력전을 하지 않는 이상, 쓸 수 있는 상황이 너무 제한되기 때문이다.
전술 핵 폭탄은 대략 100톤에서 1만 톤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다. 15킬로톤(=15000톤)이었던 리틀 보이보다도 약한 위력이다. 귀에 익숙해서 멋있어 보이는 전술 핵이란 이렇게 약한 폭탄이다. 웹소설에서 제대로 된 핵폭탄을 가리키며 전술 핵이란 용어를 쓰는 경우는 전부 오류라고 보면 된다. '전술'이란 말이 쓰이는 모든 대상은 '일반 전쟁 무기'를 말한다. 강한 무기가 아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ja.wikipedia.org/wiki/Mk_84_(%E7%88%86%E5%BC%BE)
미군의 세 번째로 강력한 Mk 84급 재래식 폭탄의 폭발 장면.
가옥 수십 채는 집어삼킬 규모의 폭발이란 걸 볼 수 있다.
물론 약한 핵이라고 해도 핵은 핵이다. 미군의 폭격기가 투하 하는 재래식 폭탄 중 세 번째로 강력한 GBU-31 JDAM의 위력은 고작 TNT 429kg 밖에 되지 않는다. 수류탄의 경우 TNT 300g도 되지 않는다. 전투기에서 발사하는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은 5kg이 되지 않는다.
가장 약한 급의 전술 핵이 십만kg 정도니 압도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약한 핵배낭 같은 휴대용 핵폭탄도 위력이 10톤(=1만kg)은 된다. 전술핵처럼 약한 핵을 굳이 만드는 이유는, 기존 재래식 폭탄으로 톤 단위 파괴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너무 부피와 무게가 커지기 때문이다. 쓰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 제국에 대한 두 발의 핵 투하 이후 전술 핵을 포함한 어떤 종류의 핵 무기도 실전에서 사용된 적은 없다고 한다. 아무리 약해도 핵은 핵이다. 특히 방사능 같은 부수적 오염과 엄청난 인명 피해가 따라오는 게 심각한 문제다.
사실 원론적으로 말할 때는 '전술핵'조차도 진정한 의미에선 전략무기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작은 핵이라도 사용되면 정국의 흐름에 반드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2부에서 계속...)
이미지 출처 : https://de.wikipedia.org/wiki/Kernwaffe
한 번의 전투는 전술이고 (좌, 토탈워 삼국지)
전투가 모여서 전쟁 전체의 흐름이 되면 전략이다. (우, Hearts of Iron IV)
이미지 출처 : https://terminator.fandom.com/wiki/Judgment_Day
터미네이터3의 전 세계 핵폭격 장면.
전략 핵무기는 기본적으로 '니가 날 죽이면 나도 널 죽일 거야'라는 상호확증파괴(相互確證破壞)를 기반으로 삼는다.
쓰면 다 같이 죽으니까 아무도 쓰지 말자는 것.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sar_Bomba
구름을 뚫고 성층권까지 올라간 차르 봄바의 버섯구름.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전략 핵 무기.
이미지 출처 : https://ja.wikipedia.org/wiki/Mk_84_(%E7%88%86%E5%BC%BE)
미군의 세 번째로 강력한 Mk 84급 재래식 폭탄의 폭발 장면.
가옥 수십 채는 집어삼킬 규모의 폭발이란 걸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