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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란 무엇일까? (2)
 

불교 연재 2부입니다. 지난 번에 불교의 사상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오늘은 그 이후의 변화와 중국의 선종에 대해서 간단하게 다뤄보겠습니다.

- 기독교란 무엇일까?
- 불교란 무엇일까? (1)
- 불교란 무엇일까? (2) ◀
- 도교란 무엇일까? (1)
- 도교란 무엇일까? (2)
- 도교란 무엇일까? (3)



5. 나를 구하는 종교에서 중생을 구하는 종교로

인도에서 발생한 초기 불교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서 이 세상을 벗어나는 게 목표였다.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의 수행을 중심으로 여기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세상과 격리된 소수의 수행자들을 위한 종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점점 커지고 신도도 늘어났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가족과 생계가 있는데 "세상 모든 것은 다 허상이고 난 수행할 거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출가하지 않은 신도는 교리적으로 아무런 혜택을 보지 못한 채 일종의 착취의 대상처럼 되었는데, 석가모니가 부처가 된 이후 중생을 가엽게 여겨서 가르침을 행했다는 출발점, 그리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해석 등이 합쳐져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원해야 한다는 자정 운동이 일어난다. 이것이 기원전 1세기 전후로 발생한 대승 운동이다.



대승(大乘)이란 '큰 수레'라는 뜻으로 모든 사람을 다 싣겠다는 이야기이다. 대승 불교는 자기만을 구원하려는 기존의 부패한 승려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작은 수레라는 뜻의 소승(小乘)이란 단어를 썼다. 이렇게 등장한 대승불교는 후한 말 환제(桓帝, 재위 146-167) 때 중국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삼국지 시대의 시작인 황건의 난이 서기 184년이었으니 그 직전이다. 티베트로 전해져서 밀교의 뿌리가 된 것도 대승불교이다. 이렇게 인도에서 북쪽으로 이동한 것들을 북방불교라고 한다. 한편 소승불교는 남쪽으로 이동해서 스리랑카나 동남아 지역에서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있다.

※ 불교의 최초 중국 전파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기원전 2~1세기 경 실크로드 개척 때로 보기도 하고, 혹은 기원후 1세기 효명 황제 때로 보기도 한다. 위의 환제 때는 대승불교 전파 시기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불교는 신을 부정하고 자신의 안에서 구원을 찾는 종교인데, 어떻게 세상 모든 사람을 구한다는 걸까? 설법을 통해 많은 중생들을 교화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말 강력한 사상이 등장한다.




6. 정토사상 : 남의 힘으로 구원받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부처를 일종의 신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불교 역시 신을 부정하지만, 정토사상의 교리를 보면 신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부처의 힘으로 중생을 구원하자는 교리 때문이다. 어찌 보면 불교 교리의 근본적인 변질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당연하지만 모든 사람이 출가해서 수행하는 삶을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대승불교는 부처를 신실하게 믿으면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새로운 교리를 내세웠다. 그것이 정토신앙(淨土信仰)으로, 논리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사는 고통으로 찬 세상을 예토(穢土)라고 부른다. 해탈해서 부처가 되면 예토를 벗어나 자신만의 땅으로 가게 되는데, 부처가 사는 그 땅을 정토(淨土)라고 부른다. 그런데 중생을 불쌍히 여긴 몇몇 부처들은 자신의 땅에서 태어나기를 원하는 신실한 중생들에게 구원을 약속을 했다고 한다. 죽은 뒤에 윤회전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토에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 후로 정토에서 오랜 행복을 누리다가 먼 훗날에는 모두 부처가 될 것이란 것이 정토 사상이다.


이미지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Mahayana
아미타여래의 극락도.


대표적인 정토로 아미타불의 극락(極樂)이 있고, 정토에서 다시 태어남을 왕생(往生)이라 하니, 극락왕생이란 말이 여기서 나온다. 이렇게 스스로를 구원하는 게 아닌 남의 힘으로 구원받는 것을 타력신앙(他力信仰)이라고 부른다. 정토왕생을 약속한 대표적 부처로 아미타불, 미륵보살, 관세음보살 등이 있다. 참고로 무량수불은 아미타불의 다른 이름이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란 말은 '아미타 부처에게 귀의한다'는 뜻으로,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진심으로' 단 한 번만 제대로 읊으면 그것만으로 극락정토에 갈 수 있다고 말해진다. 관세음보살 역시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이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즉시 그 음(音)성을 관(觀)하고 해탈시켜 준다고 말해진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이 둘이 합쳐진 말이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민간신앙의 영역에서 특히나 이름을 떨쳤다. 조금 과장해서 과거엔 마을마다 길마다 지장보살상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모든 중생을 구원하기 전까지는 스스로도 부처가 되지 않겠다."라고 말한 유명한 보살이 바로 지장보살이다. 이 말이 사람들의 감성을 꿰뚫은 이유는, 모든 사람(지옥에 있는 사람까지도)을 구원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지장보살은 부처가 될 수 있음에도 중생을 위해서 영원히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이다. 그렇기에 지장은 모든 업보와 악행의 업을 무시하고 지옥까지도 찾아가서 중생을 구제하며, 무한한 용서를 기반으로 모든 벌을 사한다고 전해진다. 민간에서 널리 오래오래 사랑받을 만하다.


이미지 출처 : https://ja.wikipedia.org/wiki/%E5%9C%B0%E8%94%B5%E8%8F%A9%E8%96%A9

길가에 있는 이런 불상은 거의 대부분 지장보살이라고 보면 된다.




7. 대승불교의 이단아 : 선종(禪宗)과 소림사

대승불교는 기본적으로 남의 힘으로 구원받자는 타력신앙(他力信仰)이 우세하다. 그런데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하겠다는 자력신앙(自力信仰)이 대승의 안에서도 나왔으니 그것이 바로 선종(禪宗)이란 종파이다.

중국 선종의 초대 종사는 그 유명한 보리달마(Bodhi Dharma, 達磨)이다. 달마는 본래 남인도 지역의 왕자였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수행했다고 한다. 북위의 효문제는 495년에 숭산 소림사를 창건하여 인도에서 온 불타선사(佛陀禪師)에게 맡겼다. 약 30년 후 달마가 소림에 도착하여 9년 간의 면벽좌선을 하고 선종을 창시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훗날 가사와 깨달음을 제자인 혜가(慧可)에게 전수했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Bodhidharma

달마에게 팔을 바치는 혜가.


선종은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내세운다. 당시의 불교는 경전 공부와 강연을 중시했는데, 선종의 관점에선 깨달음을 얻는데 문자 공부는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좌선(座禪), 즉 앉아서 선(禪)을 행하는 것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했다. 여기서 선(禪)이란 '깊이 생각한다', '내적으로 직관한다', '고요히 관찰한다'는 의미이다. 경전의 공부 없이 참선으로 단번에 깨달을 수 있다는 돈오(頓悟)를 중시하며,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다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을 강조한다.

불교라고 하면 선문답(禪問答)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는데, 바로 선종의 수행법이다. 선문답(禪問答)이란 말이 동문서답을 하는 개념으로 잘못 인식되어 있는데, 본래는 선(禪)이란 수행을 제대로 이끌기 위해서 질문과 답변을 나누는 과정이다. 깨우친 수행승은 깨우치지 못한 수행승에게 화두를 던져주는데, 이건 답을 진짜로 찾으라기보다는 애매한 질문에 대해 끝없이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들여다 보고서 깨달음을 얻으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논리적이지 않아 보이는 괴상한 문답이 오가고 엉뚱해 보이는 것이다.

이렇듯 선종은 스스로의 수행을 중시하는데 왜 대승불교인 것일까? 선종의 교리에는 대승불교의 특징이 있다. 예컨대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불성이 깃들어 있어서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교리는 대승불교의 교리이다. 또한 요리나 청소, 밭일과 같은 작무(作務)를 수행의 일부로 보고 중시했는데, 이런 노동의 실천 역시 선종의 실천적 수행의 특징이다. 그래서 선종은 탁발을 부정적으로 보고 자급자족의 생활을 추구한다. (대승불교는 전체적으로 탁발을 잘 안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zh.wikipedia.org/wiki/%E5%B0%91%E6%9E%97%E5%AF%BA
소림사 평면도.


또한 한국에서 절에 다녀보신 분은 알겠지만, 선종이 개인 수행을 중시한다고 일반인에게 선을 딱 그은 종파도 아니다. 선종 역시 중생 구제를 중시했는데, 그게 아니라면 일반 대중 사이에 어떻게 선문답의 악명이 널리 퍼질 수 있었겠는가. (솔직히 대승/소승 같은 종파 구분은 학문적인 영역이라 실제 민간의 종교 생활에서 그렇게 중요할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선종은 중국에서 당나라 말에 매우 흥해서 불교 내의 지배적인 종파가 되었다. 한반도에는 8세기 말 신라에 전해진 이후 지금까지도 한국의 지배적 종파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조계종이 대표적인 선종 종파이다.




8. 마치며...

불교는 교리 얘기를 길게 할 수 밖에 없었어서, 못 다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것들을 간략하게 마무리짓겠다.

만(卍)자는 브라만이나 힌두교 같은 인도 계열 종교의 대표적 상징이다. 불교에서는 화엄경에서 부처의 가슴에 있는 문양이라고 말하며, '아름답고 착한 징조'라는 뜻의 길상, 혹은 길상해운(吉祥海雲)이라고 불린다. 법륜(法輪)이라는 수레바퀴 문양도 만(卍)자와 함께 불교의 양대 상징이다. 법륜은 불법의 완결함을 상징하는 원이며, 번뇌를 부수는 바퀴이고, 불법이 멈추지 않고 모든 중생에게 굴러간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B%B2%95%EB%A5%9C


인도 불교는 중국에 들어간 이후 유불도 삼교와 민간신앙이 서로 계속 교류를 하면서 다방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중국 전파 초기에 친밀한 접근을 위해 격의불교(格義佛敎)라는 수단을 썼는데, 도교나 유교, 민간신앙의 기존 개념을 불교의 설명에 차용해서 쓴 방법이었다. 초기 중국 불교는 부처를 노자와 동일시 했고, 그러다보니 도교의 신들이 불교의 부처로 들어가고, 노장사상의 무(無)의 개념이 불교의 공(空)을 설명하는 용어로 쓰이는 등, 중국의 기존 신앙과 섞이게 되었다.

지옥 개념의 변화도 재미있다. 원래 불교의 지옥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는 과정에서 죄업의 무게에 따라 자동적으로 업에 맞는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구조였다. 불교가 고통을 주제로 한 세계관인 만큼, 지옥도(地獄道)는 육도(六道)에서 고통이 가장 큰 세계이다. 여기엔 어떤 신적인 관리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법(法)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봤다.

그런데 중국에 들어간 후 민간 사상의 영향으로 염마가 염라대왕이 되어 지옥 왕의 포지션에 앉게 됐다. 불교에는 신의 존재가 없는데 책임자가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아미타여래 신앙의 극락과 함께 묶인 후 극락/지옥의 대비 구도가 돼서, 마치 극락과 지옥 사이에 인간 세계라는 중간 지점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 하지만 지옥도(地獄道)와 인간도(人間道) 모두 육도의 하나이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일 뿐 둘 다 벗어나야 할 고통의 바다임에는 다른 점이 없다. 물론 지옥과 인간 세상 중 고르라면 당연히 인간 세상에서 살겠지만...


이미지 출처 : https://zh.wikipedia.org/wiki/%E5%9C%B0%E7%8D%84_(%E4%BD%9B%E6%95%99)

지옥(地獄)은 나라카(नरक, naraka)가 중국어로 번역된 말이다. 음차해서 나락(那落/奈落)이라고도 부른다.
나락은 한국어의 일반 명사로도 정착했다. "나락으로 떨어지다"의 나락이 원래 지옥이란 뜻이다.


불교는 이 세상이 고통뿐인 곳이라 너무나 싫어서, 이 세상을 떠나고 다시는 이 세상에서 태어나지 않겠다는 교리를 가진 종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회전생과 업보의 개념이 있어서 자살을 금기시한다. 더욱 끔찍한 고통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시 낙원은 죽음 후에 오지만 자살은 신의 사랑과 믿음을 져 버리는 죄로 여기는 것이 재미있다. 이쯤 돼야 대중 종교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상식. 스님들은 왜 머리를 깎을까? 불교에서 머리카락은 끝없이 자라나는 번뇌의 상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초기 불교에는 머리를 미는 습관이 없었다고 한다.


2022-06-04 00:00:00 | [Comment(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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