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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술 이야기 18 ▶ 아와모리(泡盛) : 오키나와의 소주
 

오키나와의 전통주인 아와모리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술입니다. 그래서 소개를 하지만 사실 다른 분들께 소개를 드릴 정도로 다양하게 마셔본 술은 아니기도 합니다. 그래도 대략 60종류 전후로는 마셔본 것 같기는 합니다만, 대부분은 몇몇 양조장의 제품군을 몰아서 마셔본 것이기 때문에 아주 폭넓게 마셔보진 못했습니다. 아와모리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제가 쓰러졌거든요. 하지만 아쉬운 대로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1. 류큐 왕국과 아와모리

오키나와(沖縄)는 일본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섬으로 대만의 옆에 있다. 15세기 무렵 통일 왕국인 류큐(琉球)가 건국되었는데, 약소국으로서 중국에 조공을 해야 했지만,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연결하는 무역로에 위치해 있었다.

1609년 일본의 사쓰마(薩摩) 번(藩)의 침략을 받은 후 내정 간섭을 받게 됐지만 명맥은 유지되었다.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에 청나라의 영향력이 상실되자, 1879년 일본제국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되었다. 사실 좀 민감한 얘기인데,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현 간의 감정의 골은 지금도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google.com/maps/


아와모리(泡盛)는 류큐(琉球) 왕국 시절에 등장한 오키나와의 전통 증류주이다. 중국의 증류 기술은 한자 문화권 전체로 확산되었는데, 14~15세기 무렵 태국을 통해서 오키나와로 증류주가 전해졌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설이다. 오키나와 지역은 벼농사에 적합하지 못했기에 오래 전부터 주로 태국에서 수입한 쌀로 술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류큐의 왕성(王城)을 중심으로 양조장이 건설되어 발전했으며, 15세기 말에는 아와모리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아와모리 제조 기술은 16세기 경 일본으로도 전해져서 일본 소주의 기원이 되기도 했다.

아와모리(泡盛)라는 이름은 증류한 술 방울이 떨어져내릴 때 거품(泡, 아와)이 솟아오르는(盛り上がる)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명하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설들이 있으며, 정확한 유래는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류큐(琉球)라는 단어는 지리적 표시를 뜻하는 단어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오키나와에서 생산된 아와모리만이 류큐 아와모리(琉球泡盛)라는 명칭을 표시할 수 있다.




🍸 2. 아와모리의 맛과 특징

아와모리는 쌀(주로 태국쌀)로 만든 소주이다. 도수는 낮게는 20도대부터 높게는 60도대 이상까지 넓게 분포한다. 일본 소주와 전혀 다르게 화려하면서도 깔끔한 맛과 향을 갖고 있다. 중국의 바이주가 진하고 화려하다면, 아와모리는 깔끔하고 화려하다. 서로의 맛과 향은 방향성이 다른데, 아와모리는 흑국(黑麴)이라는 특유의 누룩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오키나와는 적도와 가까운 덥고 습한 지역으로 음식이 쉽게 부패한다. 이 때문에 아와모리는 흑국이라는 누룩과 젠코지시코미(全麹仕込み)라는 두 가지 기술적 특징을 가진다. 흑국은 당화력이 높고 풍미가 뛰어나며 산을 많이 생성하기에 빠른 발효와 세균 번식 억제 능력이 뛰어나다. 젠코지시코미(全麹仕込み)라는 방법은 재료로 쓰이는 쌀 전체를 한 번에 누룩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아와모리는 누룩을 만들어서 쌀과 섞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쌀 전체를 누룩으로 만들고서 그대로 발효시킨 후 단식 증류한다. 이 방식은 세균 번식을 막아주고 풍미를 진하게 만들어준다.


아와모리는 한국 소주와 마찬가지로 쌀로 만든 소주이지만, 맛이 (비슷한 점도 있으나) 상당히 다르다. 아와모리의 향은 화려하며 맛은 진하지만 깔끔하고 곡물의 맛과 함께 단맛이 감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증류주 순위를 꼽자면 (1위) 바이주 (2위) 코냑 (3위) 아와모리 가 될 것 같다.

아와모리는 가성비도 정말 좋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꼭 드셔 보시면 좋겠다. 단점은 오키나와가 아니면 구하기가 힘들다. 참고로 필자는 한국에서 가격이 9배가 되어 판매되는 아와모리(정식 수입)도 본 적이 있으니, 국내에서 발견하실 경우 일본에서 얼마인지 꼭 찾아보시는 걸 추천한다. 일반적인 제품 라인은 원래 그리 비싸지 않다.




🍸 3. 쿠스(古酒)와 하나사키(花酒)

옛 고(古)자에 술 주(酒)자를 써서 쿠스(古酒, クース)라는 말이 붙은 아와모리가 있다. 쿠스는 3년 이상을 숙성시킨 아와모리를 말한다. 나무가 아닌 옹기에서 숙성하며, 블렌딩한 원액 중 가장 어린 원액의 숙성년수를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숙성할 때 증발량에 따라서 주기적으로 술을 추가해주는 특이한 방법을 사용한다. 자주는 아니고 최종적으로 2~4회 정도 추가되는 것 같다.

고주는 숙성된 만큼 맛과 향이 안정되고 풍부한 경우가 많다. 날카로운 맛이 사라지고 묵직한 숙성의 맛이 생겨난다. 일반적으로 향도 더 풍부해진다고 말해진다.



즈이센(瑞泉)의 오모로(おもろ) 10년 고주.
오모로는 대표적으로 필자가 추천하는 아와모리이다.
특히 21년 숙성품은 정말 맛있다.


꽃 화(花)자와 술 주(酒)자를 써서, 하나사키(花酒)라고 읽는 아와모리도 있다. 요나구니(与那国)섬에서 예외적으로 제조가 허용되는 술로, 60도가 넘는 초고도수 아와모리를 하나사키라고 부른다. 보통 약 18도 짜리 원주를 1회 증류해서 만든다고 한다. 당연히 맛도 진하고 맛있다. 참고로 술을 '사키'라고 읽는 것은 오키나와의 방언이다.



이리나미히라(入波平酒造)주조의 마이후나(舞富名) 하나사키 65도.
필자가 쓰러져서 아직 마셔보진 못했다.





🍸 4. 아와모리를 마시는 법

아와모리의 도수는 20도대부터 45도까지 다양한데, 보통 본토에서는 낮은 도수가 더 잘 팔리고, 오키나와에서는 본토보다 높은 도수가 주로 팔린다고 한다. 오늘날의 일본인은 전반적으로 높은 도수의 술을 싫어하고 술을 희석해서 마시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아와모리 역시 현재에는 다양한 음용법이 존재한다. 찬물을 섞기도 하고 따뜻한 물을 섞기도 하고, 차나 커피, 우유를 섞어서 마시는 경우도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얼음과 함께 마시는 온더락스 스타일인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바이주처럼 그대로,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게 가장 풍미를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왜 섞어서 마시는지 마셔 봐도 공감이 안 간다... 아와모리가 아니라 칵테일 개념이라면 차, 커피, 우유는 이해는 하겠는데... 뭐 어디까지나 취향 문제이긴 하다.



전통적인 아와모리를 마시는 술잔인 치부과(ちぶぐゎー).
(크기 비교를 위해 출연한 옛 휴대폰)


오키나와의 술잔이라고 하면 흔히 알록달록하고 거품이 들어 있는 류큐 가라스를 떠올리시겠지만, 원래 전통적으로 아와모리를 마시는 술잔은 도자기로 만든 치부과(ちぶぐゎー)라는 잔이다. 바이주 잔처럼 아주 작은 게 특징으로 필자의 취향을 저격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도자기로 만든 작은 술 주전자인 카라카라(カラカラ)와 세트로 많이 이야기한다.




🍸 5. 아와모리를 사려면...

사실 아와모리는 구하기가 애매한 술이다. 우리나라는 주세법 때문에 직구를 하더라도 수입 증류주에는 세금이 엄청나게 붙는다. 그래서 사려면 오키나와에 가는 게 가장 좋다. 오키나와가 아닌 일본 본토의 경우 아와모리를 다양하게 파는 곳을 찾는 건 상당히 힘들다. 개인적으론 오키나와까지 갈 만한 가치가 있는 술이라고 보지만 모두가 동의하진 않을 듯하다. 참고로 아와모리를 사기 위해 오키나와로 향하는 분들을 실제로 종종 볼 수 있다.



즈이센 주조에 직접 방문해서 사온 한정판 53도와 장출고주(蔵出古酒).
정말 맛있으니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와모리는 일본 본토에서도 파는 것을 많이 볼 수 있고, 오키나와에 가서도 국제 거리와 같은 관광지에서 판매점을 여럿 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오키나와까지 갔다면 양조장을 직접 찾아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즈이센(瑞泉) 주조는 한 번쯤 찾아갈 만 하다. 방문객을 위한 견학도 가능하고, 시음도 여럿 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즈이센의 아와모리는 전반적으로 맛있다. 그 옆의 사키모토(咲本) 주조는 찾아갈 수는 있는데 즈이센처럼 방문객 대응이 제대로 시스템화되진 않은 것 같다. 사키모토의 술도 맛있다.



사키모토의 술도 맛있긴 한데, 다른 곳에서 살 수 있다면 굳이 방문할 필요는 없다는 느낌.


일반 주류샵에서 살 경우, 잔파(残波)도 좋은 선택지이다. 잔파는 가장 많이 팔리는 종류의 아와모리이기도 하고 맛도 굉장히 좋은 편이다. 필자는 도쿄에서 아와모리를 마시고 실망했었는데, 후에 아와모리의 매력을 일깨워 줬던 브랜드가 잔파였다.



아와모리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이후, 박람회에서 잔파를 마시고 다시 관심이 생겼다.
나이가 지긋하신 직원분과 대화를 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오키나와 특유의 감성이 있었다.


아마도 필자가 화려하고 진한 맛을 좋아하는 취향 때문인 것 같은데, 일본 본토에서 주로 파는 것들이나 주류샵에서 자주 보이는 아와모리는 대부분 실망스러웠다. 굉장히 유명하고 많이 팔리는 브랜드인 쿠메센(久米仙)이나 키쿠노츠유(菊之露)의 경우에는 뭘 마셔도 개인적으로는 입에 맞지 않았다. 아마 필자처럼 화려하고 농밀한 맛을 좋아하는 분이나 단맛이 있거나 맛이 풍부한 술을 좋아하시는 분은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다.


※ 참고로 글을 쓰면서 보니까 기존의 쿠메센이나 잔파 이외에도 즈이센이나 도난과 같은 브랜드가 최근에 정식 수입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단지 한국 주세가 엄청 비싸니 가격은 한 번 잘 보자. 오키나와에 직접 가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하다고 여기신다면 하나의 선택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필자도 현재의 국내 판매 상황은 정확히 모르겠다.




🍸 6. 아와모리의 고난의 역사

근현대의 역사를 보면 아와모리는 한국 소주와 다소 비슷한 고난을 겪었다. 2차 대전 때 오키나와는 미군과의 주 격전지가 되면서 일본 본토의 군대가 슈리성(류큐의 왕성)과 같은 주요 시설을 점거했다. 원래 슈리성에는 류큐 시절부터 보관되어 있던 오래된 아와모리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 시설을 점거한 일본제국군의 소비와 오키나와에 대한 폭격으로 인해서 보존되어 있던 거의 모든 아와모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자 오키나와의 거의 모든 양조 시설은 파괴된 상태였고, 종전 후의 식량난으로 아와모리 제조가 불가능했다. 또한 종전 후 아와모리를 처음 만들려고 할 때는 양조의 핵심인 흑국균이 유실되었다. 하지만 많은 양조 관계자와 대학 교수들의 노력으로 폐허속에서 흑국균을 찾아내고 복원하여 다시 아와모리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전후 초기에 양조가 금지되었을 때는 몰래 숨어서 밀주를 빚었다. 그 후엔 미군 부대에서 나온 조악한 재료로 술을 만들어 미군이 버린 맥주병에 아와모리를 담았던 역사도 있었다. 그 전통이 이어져서 지금도 갈색 병에 아와모리를 병입하는 경우도 있다. 1970년대에 오키나와 밖에서 소주 기술이 들어오기도 하고, 1980년대에는 법적으로 아와모리라는 표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맥이 끊길 수도 있었던 아와모리가 다시 만들어지게 되었다.



오키나와 특산품인 류큐 가라스의 알록달록하고 거품이 들어 있는 특징은
전후에 미군이 버린 콜라병 등을 재활용했던 것에서 기원했다.
이걸 보면 부대찌개가 떠오르며 묘한 감정이 든다.


사실 오키나와에 직접 가 보면 특히 고연령층의 주민들이 일본 본토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다양한 방면에서 (본토에게) 차별 당하는 감정이 표출되는데, 아와모리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도 그런 부분이 드러났었다. 수백 년 된 고주가 일본군에 의해 다 사라졌다는 이야기라거나, 지금 이야기할 아와모리의 도수에 대한 것도 그렇다. 아와모리는 원래 더 높은 도수도 있었는데 일본 본토의 법 때문에 45도를 넘으면 아와모리라고 부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참 흥미로운 게, 필자가 말이 통하는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현지인분들이 본토에 대한 분노를 은근히 자주 터트렸다.

필자가 잘은 모르지만, 아와모리는 오랫동안 세금 감면 혜택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일본 주세법이 아와모리를 탄압했다는 말이 맞는지는 애매한 것 같다. 단지 오키나와가 역사적으로 본토에 의해 차별을 많이 당한 것은 맞기 때문에 쌓인 것들이 종합적으로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필자가 일본에 있을 때는 오키나와 주민의 미군 기지 관련 반대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지기도 했다.

참고로 2020년 3월을 기점으로 46도 이상의 오키나와 소주도 아와모리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 오키나와에 갈 때가 기대된다.




🍸 7. 마치며...

어째 술 외의 다른 이야기도 많이 한 것 같지만, 오키나와에 가서 현지민들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런 인상을 굉장히 자주 받게 되어서 그냥 같이 적어보았다.

오키나와는 아와모리가 아니라도 매우 좋은 곳이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다녀오시는 걸 추천한다. 말이 통할 경우 일본 본토와는 꽤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다. 노년층부터 젊은층까지 외지인을 살갑게 맞으면서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데, 마치 인심 좋은 마을에 가서 사람들과 조곤조곤 대화하면서 포근함을 느끼는 그런 이야기랑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일본 본토도 도시에 따라서 분위기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오키나와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튼 아와모리는 매우 매력적인 술이고, 다시 가서 잔뜩 사올 날을 기대 중이다. 45도 제한이 풀렸으면 더 높은 술도 나왔을까? 빨리 가서 사오고 싶다! 생각해 보니 술을 못 마시는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오고 싶다!


여기까지 해서 동양의 소주 시리즈는 일단 끝을 내겠다. 일본 소주도 이론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타인에게 설명할 만큼의 경험을 쌓진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젠가 훗날을 기약하겠다.


2022-06-22 00:00:00 | [Comme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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