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연재로 좀 달렸기에 오늘은 편하게 가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글이 연재보다 압박을 주는군요. 편하게 쓰자는 건 이미 정해뒀는데 말이죠. 비축해 둔 글이 있느냐 기한이 임박해서 쓰느냐의 문제이긴 합니다만... 중세 감옥 연재는 한 번에 3편을 다 쓰고 수정만 조금씩 한 거라 마음이 편했거든요. 비축분의 중요성!
환경이 바뀌고 안정이 아직 되지 않은 상태라, 연재가 작년보다 여전히 부담스럽긴 합니다. 작년에 잡아둔 큰 개요는 있는데 디테일은 잊어버린 것들도 있고요. 마음이 떠나서 원래 쓰려던 주제가 (심적으로) 멀어진 것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원래 중세 연재는 성의 생활과 이름과 성씨 두 편만 다루고 쉴 생각이었는데, 계속 새로운 것들이 떠올라서 쓰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사실 지금 쓰는 연재들에 대한 초심은 잃었습니다. 원래 초심은 위기감에서 시작했어요. 그냥 제가 좋아했고 알게 되었고 공부해 나가던 지식들이 저라는 사람과 함께 그대로 없어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위기감에서 쓰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지금은 그런 위기감을 많이 덜 느낍니다.
그래도 연재는 쓰기를 잘 했던 것 같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인간이 일생 동안 쌓는 것들 중에서 다른 요소들보다 지식이나 창작물을 더 중요시하는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선 자기 자신보다도 말이죠. 제가 가수보다 가수의 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종종 말하는 것도 그런 의미죠.
어차피 살면서 언젠가는 저런 위기감을 가졌을 겁니다. 그런데 판타지 연재는 이제 2년 차, 정확히는 1년 반이 되었는데도 아직 도입부란 느낌입니다. 취미의 영역을 넘어선 속도로 부담스럽게 글을 쓰고 있는데도 그러네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중에 말년에 가서 아는 것을 정리해서 연재나 해볼까? 하고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간 절반도 못 쓰고 늙고 병들어서 죽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듭니다. 최소한 수 년에서 어쩌면 10년 이상 걸릴 작업이니까요. 술 연재만 해도 벌써 4년 차니까요. 또 연재를 하지 않았다면 제가 가진 지식도 지금보다 정리도 덜 되고 빠져 있는 구멍도 있는 상태일 테니 잘 한 것 같아요.
초심을 잃었단 생각은 종종 들지만 그래서 후회가 되진 않는 것 같습니다. 페이스는 좀 더 조절하고 싶은데 쓸 때는 또 재밌어서 계속 쓰게 되니 그게 참 문제네요.
예. 아무튼 잡담이었습니다. 빨리 판타지 연재 휴재 상태로 들어가고 싶은데 계속 쓰고 싶은 게 생기는 것도 문제로군요. 문득 든 생각인데 20대까지 그림을 그리면서 느끼던 즐거움을 요즘은 이런 형태로 느끼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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