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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배주 40도
 

우리 술은 대부분 명맥이 끊겼고, 자연스럽게 유명하다고 전해지는 술도 이젠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술이라봐야 (최근에야 조금 알려지게 된) 조선 3대 명주라거나 한산 소곡주 정도이지요. 하지만 전통주를 좀 마시다보면 좋은 맛으로 이름을 떨치는 술 하나를 종종 듣게되는데 바로 문배주입니다.



문배 열매와 비슷한 향기로운 향을 지녔다하여 문배주라고 불리는 이 술은 본래 평양 지방의 술이라고 합니다. 기록상으로는 고려 때부터 나왔다고 하는데, 고난의 일제시대와 군사정권을 버티며 후손에게 비법을 전수하여 90년대에 부활했다고 문배주 홈페이지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강주는 실제로 배와 생강이 들어가서 향을 내지만, 문배주에는 문배 열매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수와 조와 밀이 그 재료라고 하는데 발효되는 과정에서 과실을 연상할 수 있는 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마셔보면 문배주는 맛이 참 예쁜 술입니다. 수수가 들어가서인지 고량주를 떠올리게 하는 향이 나는 것 같다가도, '문배향'이라고 표현하는 향긋한 냄새가 진하면서도 은은하게 퍼집니다. 조가 들어가서인지 고소리 술과 유사한 곡식의 구수함과 수수 때문인지 고량주의 풍미가 섞여있다는 느낌입니다. 40도임에도 부드럽고 깔끔하며 깨끗한 느낌을 주더군요.

첫 향은 향긋하면서 술의 단맛이 살짝 도는데, 쓴 맛과 구수한 맛이 뒤에 깔립니다. 목에서는 높은 도수의 술 특유의 뜨거운 느낌이 나는데 뒷맛은 상당히 깔끔하면서 씁쓸한 맛이 납니다. 최근에 쌀이 원료로 된 우리 소주를 마실 때도 이런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게 재료 때문인지 아니면 증류하는 방법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전통주를 마시면서 앞으로 생각할 과제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향이 강해서 한 번에 두 세잔 이상은 마시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술이기도 합니다. 제가 보통 술을 안주 없이 마셔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그 이상 마시면 술 기운이 강하게 돌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달까 묘한 거부감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많이 마시면 중국술 보다는 (초록병) 소주랑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기도 하더군요. 음식도 고량주는 한국 음식이랑은 좀 애매한데, 문배주는 한국 음식과 잘 맞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선 한국인에겐 고량주보다 더 취향에 맞는 술일지도 모르겠는데, 저 느낌을 정확히 표현하기가 좀 힘든 것 같습니다. 초록병 소주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술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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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7 추가 :
오늘 배우고 공부한 것에 의하면, 현존하는 전통 소주 뒤에 나는 저 특유의 쓴 맛은 증류 과정에서 생기게 되는 '화근내(화독내)'라는 맛인 것 같습니다. 전통주 연구소 박록담 소장님의 옛 인터뷰를 보면 화근내가 밀주 시절에 술을 급조하게 되면서 생긴 부작용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부분은 아직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단지 이 맛은 잘 조절하면 특정한 경우엔 매력이 될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문배주(를 포함한 많은 전통 소주) 뒤에 느끼는 약간의 거부감은 저 화근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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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렇게 시음 노트를 올릴 때는 예전에 마시면서 쓴 시음 노트와 비교하며 다시 한 번 술을 마셔봅니다만, 오늘의 경우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옛 시음기와 기억만으로 글을 씁니다. 문배주는 분명 우리 술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좋은 술입니다. 단지 보급을 위해 나온 20도 정도의 버전은 정말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거의 일반적으로 희석된 버전의 술은 훨씬 맛이 없어지며, 특히 우리나라는 아직 그 희석 기술이 떨어지는 것 같더군요. 마지막으로 문배주는 증류주의 맛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썩 맛있는 술은 아닐 것입니다.


2015-09-06 06:00:00 | [Comme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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